[인터뷰/박정욱 명창]나는 이야기꾼, 내가 잘하는 것 찾아 ‘질마재 신화’ 준비했다.
[인터뷰/박정욱 명창]나는 이야기꾼, 내가 잘하는 것 찾아 ‘질마재 신화’ 준비했다.
  • 인터뷰·정리/이은영 편집국장/강지원 인턴 기자
  • 승인 2016.02.0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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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점 맞아, '나다운'이것 저것 해보는 중, 모두 즐거워,3일~오는 26일까지대학로예술극장3관에서 질마재로 '소리굿판' 펼쳐

- ‘질마재 신화’의 고향 이야기 마실 문화, 재담답게 풀어내면 딱 맞는다는 생각 들어

- 소리 인생 삼십 여년 이제 내 것을 찾고 싶었다. 방송, 공연, 한복 집 모두 재미있어.

▲박정욱 명창

서도소리 31년, 이제 쉰하나를 맞는 박정욱 명창은 그 누구보다도 바쁜 삶을 보내고 있는 국악인이다. 현재 라디오,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가례헌이라는 국악 공연 공간에서 손님도 맞는다. 게다가 감각적인 솜씨로 한복집도 운영 중이다.

박정욱 명창은 쉰을 넘어가면서 새로운 것에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이번에는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신화’를 가지고 공연도 준비했다. 공연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말 잘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박정욱 명창의 재담이라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쉰을 넘자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박정욱 명창. 백 세 인생이라는 노래가 유행하듯이 우리의 기대 수명은 길어졌다. 그렇다면 쉰은 아직 젊은 나이가 아닐까? 박정욱 명창은 서도소리의 맥도 훌륭하게 이어왔지만 이제 자신만의 것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가 해온 길들과 현재 그의 에너지를 생각해본다면, 앞으로의 오십 년이 더 기대되는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 3일부터 26일까지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를 가지고 공연(대학로예술극장3관) 을 한다. 배우 박정자, 손숙, 안석환, 정경순과 방송인 전유성, 개그우먼 박수림, 아나운서 박영주, 성기영 등 호화로운 게스트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그의 열정에 공연을 앞둔 며칠 전에 만났다.

질마재 신화, 그 시골의 이야기가 좋았다.

지난 100주년 기념 공연 참여에 이어 이번 공연은 아예 서정주 시인의 질마재 신화에 대한 공연이다. 왜 하필 질마재 신화고, 질마재 신화의 어떤 면에서 매력을 느꼈나?

남은 예술 활동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 질마재 신화를 발견하게 됐다. 이 시를 보니 서정주 시인 어릴 때 자랄 때랑 내가 자랄 때랑 시대 차이는 좀 있는데 많은데 똑같았다. 그래서 그 질마재 신화 이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다.이 시골의 이야기, 옛날 나 어릴 때 만 해도 할머니들 다 집집이 다니면서 저녁에 같이 먹고 먹을 게 생기면 이 집 가서 얻어먹고 저 집 가서 먹고 또 놀다가 오는 마실 문화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게 없어서 참 심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가례헌이란 내 공간에서 사람들 글로 다 불러서 차 마시고 엄마가 밥해서 나눠 먹고 이런 걸 좋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 마실 문화에 대해 항상 그리웠는데, 이걸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질마재 신화였다. 이 시를 공연함으로써 요즘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혹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그 옛날의 정, 마실 문화를 알리고 싶었다.

이걸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로 원래 서도지역 소리가 판소리하고 달리 재담 소리가 많다. 내가 여태까지 공부하고 지켜나간 것이 서도 소리였는데, 이런 것들을 어디다 맞춰서 표현하면 좋을까 하다 새로운 작품을 쓰기보다는 질마재 신화를 재담 소리로 하면 딱 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공연을 하고 싶은 이유는 이제 내 인생 반에서 넘어가면서 새로운 내 것을 좀 찾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전에는 전통을 보존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알을 깨고 내가 표현하는 내 음악 내 무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서정주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재담답게

지난 서정주 탄생 100주년 공연은 어떻게 해서 참여했나?

그때는 기념 사업회에서 이제 질마재 신화 33편 중에 한편 정도를 좀 저보고 해달라고 그랬다. 그분들은 다 내가 서도소리를 하는 것을 아는 분들이니까.

▲박정욱 명창

서정주 시인의 고향 쪽으로 치면 서편제 소리가 어울릴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그렇다. 그런데 내가 그 서도소리에서 배뱅이굿을 공연할 때 노래 부르고 말하고 떠들고 막 울다가 웃다가 이런 것들에 능숙하니까 이분들이 볼 때 서정주 선생의 질마재에 나오는 33편 중 아무시나 저 사람한테 주면 그걸 재밌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런 구조로 공연을 하면 아주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질마재 신화를 보면 서정주 시인은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이다음에 누군가가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깔렸는걸 느꼈다. 노래의 시도 있는데, 거기에는 2부가 노래 시인데, 거기에는 누군가 이 시로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노래를 불러주는 그런 것보다는 이야기하고 좀 사람들에게 재밌게 전달해주는 이런 것 주로 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래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이야기를 좀 재미나게 누군가 우리 마을의 이야기를 내가 이렇게 써놓으면 누군가 이걸 가져다가 재밌게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줬으면,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그분들이 말하더라.

당신들이 생각할 때 판소리 명창도 있고 다 있지만, 사실은 저렇게 하는 게 가장 잘 어울리지 않겠냐고 생각을 하셨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질마재 이 이야기, 이 시는 저 박종욱이 가장 적합하다고 해서 추천을 엄청나게 받은 거다. 엄청나게 강요와 추천을 엄청나게 받은 거죠. 서민들의 어떤 어떻게 보면 하층민들의 삶에 대한 그런 얘기가 민요가 그 소리를 잘 끌어낼 수 있고 거기에 설화처럼 풀어내고 재담다운 그런 부분들이 잘 맞아 떨어졌다.

공연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게스트 목록을 보니 굉장히 호화롭던데 공연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일단은 내가 전통 방식 배뱅이굿을 하는 방식처럼 그냥 혼자서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식으로 꾸몄다. 이 시는 긴 산문시이고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각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그대로 일인 십 역을 연기해야 하는 데 그게 아주 난감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시를 열한 개를 하고 거기에 질마재 마을의 초대 손님 해서 초대 손님들이 다른 시들을 한 시씩 읽어준다. 객석에 재미를 주기 위해서 저랑 이제 친한 예술인분들이 카메오로 특별출연을 해주는 거다. 박정자, 손숙, 윤석화, 안석환 등 배우들과 방송인 전유성, 개그우먼 박수림, 만화가 박제동, 바리톤 오승용 영화감독 송해성, 사진작가 김용호, 아나운서 박영주, 성기영 등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분들이 나온다. 게스트에게는 이야기를 재밌게 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들을 맡겨서 한 10분 내외로 시도 읽고 이야기도 하고 그럴 예정이다.

50, 인생의 전환점 돼, 내가 잘하는 것을 찾고 싶었다.

근황 얘기를 안 해볼 수 없다. 라디오, TV 방송에 공연준비, 가례헌, 한복 집까지 무척 바쁘게 사는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다 보면 힘들진 않나?

라디오 몇 개 고정 출연하고, 일요일 아침 시간에 방영하는 신대동여지도 - 시골애 산다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 그리고 한복집도 아직 잘 유지되고 있고, 이 모든 활동이 재밌다. 특히 방송이 좋다. 계속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국악에 대해 알릴 기회가 되니까. 피드백도 나름 좋다.

처음에 이게 힘들이라고 생각 못 했다. 이제 서도소리 한지가 31주년 나이도 쉰하나, 이제는 무언가 변화하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게 가장 큰 이유다. 예술이나 삶 모두 너무 정체된 것 같았다.

쉰을 넘어가면서 변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나?

옛날에는 그 50살을 상상 못 하고 살았다. 그러다 쉰하나, 쉰을 넘어가면서 아! 이대로 쭉 사는 건 재미가 없겠구나 했다. 서도소리만 31년을 했다. 김정연, 이은관 이 선비 선생님 이 세 분을 모시고 이북 문화만 쭉 배운 거다. 서북지방 평안도 황해도 것만 배운 건데 여기서 약간의 갈증이 조금 있는 것이다.

어떤 갈증이 있었나?

이북지역 소리만 계속했는데, 답답함이 늘 있었다. 통일도 안 됐고,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노래도 없고, 아니고… 보존하고 지켜야만 하는 소리를 어쨌든 나름 엄청나게 밖에다 알리고 다니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뭔가 나다운 것이 없을까? ‘ 이것을 쉰이 넘어가면서 생각하게 됐다. 여태는 젊음과 함께 선생님들의 소리 뭐 그런 뿌리 찾기 전통 이어가기, 거기에 굉장히 몰두했다. 심하게 전통과 전통성을 찾고, 조금이라도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계속 이런 거 추구하고 있다가 쉰이 넘어가면서 또 소리에 삼십 년이 넘어가면서 이제 내 소리를 찾고 싶다가 생겼다. 내 걸 찾고 싶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보고 싶다. 총정리를 해봤더니, 나만의 독특한 특징이 말을 많이 하던 거더라. 말을 많이 하고 또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굉장히 재밌게 잘 해주는 것.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면 새로운 문화로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통합적인 것으로 만들까 고민했다. 소리도 하고 말도 많이 하고 약간의 연극도 하고 이런 것들, 그러고 또 내 노래를 내가 부르고 싶었다. 그냥 서도소리보다는 그것을 바탕으로 쉰 넘어간 내 인생의 후반부를 어떤 예술 활동을 할지 고민과 연구를 쭉 하고 있다.

목요예술의 밤, 국악 저변 확대에 큰 도움 젊은이들도 좋아해

그동안 가례헌에서 ‘목요예술의 밤’이란 공연을 꽤 오랜 기간, 무려 12년 동안 해오고 있다. 국악이라는 장르로 긴 시간 동안 명맥을 이어온 것이 놀랍고 그 이유가 궁금하다.

손님 오는 게 좋고, 그다음은 사실 우리나라 공연 문화, 사랑방 문화를 알리고 싶었다. 또한, 도시 생활 속에서 직접 차린 밥상으로 어떤 시골 정서도 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국악을 전공 하는 친구들에게 설 수 있는 무대를 줌으로써 국악의 저변확대를 위해 해오고 있다.

가례헌을 찾는 사람들이 국악을 정말 좋아한다기보다는 신기해서 혹은 아는 사람 따라 오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직업군에서 방문하는데 뜻밖에 전문가 집단도 많이 온다. 예술의 전당 이렇게 큰 데 보다 여기 가례헌의 소박한 국악의 맛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여기서는 직접 차린 밥상을 먹으면서 국악도 들으며 시골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난다. 그런 분위기에 대한 호감이 목요 예술의 밤이 계속 이어져 오는 뼈대가 됐다. 더불어 공연에 소리나 음악이 중요하지만, 우선은 이해가 되고 소통이 돼야 하므로 국악이나 판소리가 나오기 전 그에 대한 설명을 동네 이야기부터 해서 다 해준다. 그다음에 소리를 해주면 사람들이 소리에 대해 알고 관람하게 되고 관람한 이후에는 마니아가 돼 또 찾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찾지만, 전통문화에 낯선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할 것 같은데, 목요 예술의 밤에 젊은 사람들도 많이 오는지?

젊은 친구들 많이 온다. 가례헌이란 그들에게 새로운 경험이긴 하다. 젊은이들이 오면 소리도 가르쳐 주고 국악의 전반적인 걸 스토리텔링 식으로 이야기해준다. 개요를 설명한 다음 소리의 특징을 말하고 교육을 한 삼십 분 한 다음 공연을 보여준다. 공연 뒤풀이 때 어땠냐고 물어보면, 다 좋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들이 뽑는 어려운 점은 이 집이 이런 장소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신당동의 약간 후미진 공장 건물 오층에 위치해서 공간 접근성이 좋지는 않다. 이렇게 좋은 우리의 것을 접하기도 힘들고 접할 수 있는 이런 공간도 접근성이 낮다는데 안타까워 하더라. 그래도 어디 다른 좋은 공간에서 하는 것보다 재밌어. 만족도가 높다고 많이들 답했다. 그래서인지 이제 많이 올 때는 100명이 넘게 오기도 한다.

무형문화재 전수 문제 안타까워, 하지만 나는 내 길을 찾을 것.

이은관 선생의 서도소리를 계승해 오고 있었는데, 사실 선생이 돌아가신 뒤 문화재가 못돼서 아쉬움도 있을 것같다. 어느 인터뷰에서 무형문화재 전수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했었는데.

그런 얘기 항상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한다. 하겠다는 사람과 하는 사람 이런 차이가 있는 같다. 하겠다고 덤비는 사람한테는 못 이긴다. 나는 그렇게 무형문화재를 욕심 내본 적이 없다. 오로지 어떻게하면 저 소리를 올바르게 이어가서 흠이 없는 보존을 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이다음에 선생님을 만날 그런 때가 왔을 때 내가 선생님께 하나는 잘 지켰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런데 기득권이란 것이 생기고 그러면 좀 힘들어지는 것 같다. 전통적으로 하지 않게 되는 경우 있고… 선생님 소리하고 다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쪽이 전통이 돼 버리는 경우도 있다. 전통문화에 제일 어려운 것은 그 계통의 유파를 제대로 전승하는 것 같다. 정신문화이기 때문에 선생님 작품을 잘 이어가는 것이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연이 끝난 다음의 계획은 어떠한가?

예술인으로서 공연을 해야지 주변에서 라디오하고 방송하고 가래현하고 한복하고 그러니까 우려를 많이 한다. 왜 무대 생활을 안 하느냐고 소리꾼 이런 사람들은 무대에서 자기 철학이 있어야지. 데뷔 31년 이제는 새로운 전환을 해보는 거다. 나를 찾는 대전환. 무형문화재 지정이라도 됐으면 거기에 매진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도 어렵고 하니까 또 다른 나의 길을 찾는 거다.

‘질마재 신화’ 공연이 끝나면 올해는 서도소리 유파발표를 계획 중이다. 김정연째 서도소리를 5회에 걸쳐 완판 한다. 민요, 성서, 시창, 입창, 좌창, 민속놀이까지 내가 김정연 선생님께 배운 모든 것을 총정리해서 하는 것이다.

장기적인 계획은 있나?

장기적으로는 이북 오도 전통예술을 정리하고 싶다. 소리 민요 가사집은 다 채록하고 모아서 만든 상태이다. 이제 종목별로 민요들을 다 정리하는 음반 정리도 할 계획이다. 다 정리가 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축제나 공연 기획을 생각하고 있다.

박정욱 명창

1965. 01. 19 경남 거창 출생

8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예능 보유자 故 김정연 선생님께 입문해 예능 전수 장학생으로 등록됐고, 86년 이은관 선생께 입문해 2000년 예능 이수자로 등록됐다.

한국전통문화관 '가례헌' 대표이며, 서도소리 이수자에서 그쳤지만, 서도소리 공연자 중 가장 많이 찾는다. '꽃바람', '내 사랑 배뱅이'등 여러 뮤지컬을 연출, 제작했으며, 현재 KBS1 라디오 ‘행복한 시니어’ KBS3 라디오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tbn 한국교통방송 ‘신나는 운전석’ 고정게스트, 채널A '신대동여지도’ 진행 등 다양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