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서울문화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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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경 한국여성문예원장
  • 승인 2009.08.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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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 시 9


낙타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 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서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가도 끝없이 느껴지는 삶의 사막에서 차가운 샘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이 일생이라면 그 생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깨달아지는 가엾은 사람은 누구인가.

누군가의 동반자로, 누군가의 짐을 등에 대신 짊어지고 살았던 우리 혹은 시인일 것이다.

신경림 시인은 시는 언젠가 버려질 방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 방언 같은 시에서 우리 삶이 안고 있는 갈등과 고통을 덜어 줄 빛을 찾을 수도 있는 생명수라고 말하고 있다.

강한 햇빛이 따라오는 한낮 저기 신기루처럼 느리게 걸어오는 낙타가 있다.

김도경 한국여성문예원장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