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기억하고싶은 2015년 국내무용공연 10선
[이근수의 무용평론]기억하고싶은 2015년 국내무용공연 10선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6.02.24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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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춤 시즌을 맞으면서 지난 호 글(2015년 무용공연총평)에 이어 기억하고 싶은 국내무용공연작품 10개를 되살려본다.

텍스트의 창의성과 기획력이 돋보인 작품으로 정영두의 <푸가>, 김미선의 <호모 루덴스>, 고현정의 <코나투스>와 김성민의 <변형된 기억>을 들고 싶다. ‘푸가’는 검정색 옷으로 통일된 일곱 무용수가 각각 음표가 되어 무대 위에서 바로크시대 음악의 대표적 작곡형식인 푸가의 기법을 시각화해준 특이한 작품이다.

다양한 악기편성, 음폭이 넓은 표현력, 대위법을 기본으로 하는 변주 된 반복 등 음악의 특징을 발레무용수와 현대무용수들이 조합된 11개 장면을 통해 잘 드러내주었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의 정점을 섹스에서 찾는 신선한 시각을 보여준 작품이다. 5명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솔직하게 성적욕구를 들어내며 인위적 탈을 벗은 자연적인 에너지가 무대 가득히 분출된다.

한국춤과 현대 춤의 경계를 허무는 창의성을 보여준 새로운 감각의 작품이었다. ‘코나투스; 존재의 힘’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개념을 30분 모던발레로 해석한 이색적인 작품이다. 일생을 마라톤 코스에 비유하면서 비발디의 ‘사계’음악을 배경으로 봄에서 시작한 삶이 여름과 가을, 겨울을 거치면서 반복된다는 자연계의 순환을 암시한다. 발레리나들의 발랄함과 우아함이 한데 어우러져 일관된 서정성을 유지하는 연출력이 돋보였다.

전통무용에 현대적 공연요소를 결합시켜 창조적 진화를 이루어낸 공연들로 국립무용단의 <제의>, <향연>, 한명옥의 <전통의 전승과 창조>를 꼽고 싶다. ‘제의’(祭儀Ceremony 64)는 주역이 품고 있는 동양철학의 원리를 원시적 제례와 일무, 작법 춤과 민속춤으로 풀었다.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의 탄탄한 춤, 동적인 음악과 유려하면서도 단순한 의상, 창의적이고 섬세한 조명이 춤과의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 공연이었다. ‘향연’’(The Banquet)은 예술감독 부재상태의 국립무용단이 조흥동, 김영숙, 양성옥 3명의 공동안무로 제작한 화려한 작품이었다.

단과 묵향 제작에 참여했던 정구호가 연출을 맡으면서 전통무용안무 대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춤의 새로운 미학을 창조해낸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한명옥의 춤’은 전통춤의 재현과 전통춤을 변주한 창작, 창작 춤의 세 형태를 3일에 걸쳐 차례대로 보여준 공연으로 공연중간에 평론가를 초청하여 춤에 대한 담론을 삽입하는 등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였다. <제의>, <향연>과 <한명옥의 춤>은 예술성과 역사성을 갖춘 전통춤이 현대 관객들과 교감할 수 있는 한류 춤으로 발전해 나가야할 길을 보여준 의미가 있었다.

한국사회가 처해 있는 현실과 사회적 문제를 춤 언어로 풀어보고자 했던 컨템퍼러리 창작공연으로 미나유의 <2015, Are We Here Yet?>, 박인숙의 <마리아 콤플렉스 3>, 황미숙의 <버려야할 것들>을 기억하고 싶다. "2015, Are we here yet ?"(현재 우리는 어디까지 왔을까)는 무용가가 바라보는 2015년 한국의 현실을 7개의 이미지로 진단하고 이를 춤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미나유는 그가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해답을 준비하는 대신 냉정하고 단순하게 이를 묘사한다. 현실과 거리를 두면서 조용히 자신의 춤 길을 걷는 무용가가 아쉬운 때, 소중하게 읽혀진 작품이다.

<마리아콤플렉스 3>는 현대사회의 성윤리와 낙태문제의 비극성을 주제로 한 마리아 콤플렉스시리즈의 완결편이다. 튀지 않으면서 장면마다 변화를 주며 절묘하게 무용수들과의 호흡을 맞춰준 음악, 무대를 앞뒤로 구분하여 현실과 회상을 동시에 표현해준 무대디자인, 붉은색을 주조로 한 의상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버려야할 것들’은 작품제목인 동시에 현대무용가 황미숙이 터득한 불교적 진리다.

7명 무용수들의 독무와 군무를 통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탐진치(耽瞋癡)의 번뇌를 버려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무대의 네 모서리에 악기를 배치하고 무용수들이 가운데 공간에서 춤추게 한 특이한 무대배치, 서정적 음악과 감성적 조명, 의상 등 무대요소들이 춤과 조화를 이루며 시적감흥을 불러 일으켜준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대형발레단의 레퍼토리공연 중에서는 국립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Shrew)’가 가장 뛰어났다. 존 크랑코 안무로 슈투트가르트 초연당시와 동일한 음악, 무대장치, 의상을 온전히 살렸다. 코믹한 10개의 에피소드가 50분씩 2막으로 구성되어 무용수들의 능청스런 춤 연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미소 짓게 한 희극적인 드라마발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