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문화재청, 태평무 보유자 선정 의혹 밝혀라”이의 제기
[단독]"문화재청, 태평무 보유자 선정 의혹 밝혀라”이의 제기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6.02.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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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협회· 학회 치중된 조사위원, 사전 명단유출 등 공정성 투명성 문제 있어”

이현자 후보 측, 문화재청에 이의제기와 점수공개, 탄원서, 940여 명 서명받아 제출

문화재청의 태평무 보유자 양성옥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교수를 인정 예고 기간인 30일 만료 기일이 다가오면서 이현자 보유자 후보가 이의제기를 하고 나서 앞으로의 파장이 예고된다.

▲중요무형문화제 제92호 태평무 보유자로 인정예고한 양성옥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좌측) 이현자 태평무 보유자 후보(전수교육조교). 

문화재청이 지난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인간문화재)로 양성옥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원 교수의 ‘인정 예고’ 발표 후 무용계 일각에서 이에 대한 반발과 논란이 있어 왔다.

이 후보 측은 “이번 보유자 인정 심사에 있어 특정 협회, 학회에 치중된 조사위원들로 선정돼 문제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인정조사 실시 전에 조사위원 명단이 외부에 알려져 논란이 됐고, 이는 공정한 조사의 진행이 불가한 상황이었음에도 문화재청은 조사자 교체 없이 인정조사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보유자 인정 조사에 총 11명의 조사위원과 11명의 문화재 위원이 조사 심의를 한 가운데 조사위원 중 과반수가 넘는 6명이 한국춤협회 소속이고 문화재위원 허모 교수는 양성옥교수와 같은 학교 교수이며 그 교수가 주최한 행사에 다수 참여하는 친밀한 관계에 있다” 며 “이것이 문화재청이 주장하는 공정하고 투명하고 문제되는 점을 모두 제거한 선정이었는지 묻고싶다" 라고 반문했다.

또한 조사위원들 중 대다수가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로 구성돼, 전통춤 전문가 및 문화재(보유자, 전수조교)는 조사위원 선정에서 제외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신무용의 대모 김백봉선생의 직계 제자로서 신무용 전승, 연구에 힘써온 양교수가 태평무 보유자로 인정된다면 태평무의 기능 또는 예능을 원형대로 체득·보존하고 그대로 실현할 수 있겠는가. 태평무의 원형과 전통성을 지키겠다는 문화재청의 취지와는 맞지 않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양성옥교수는 ‘김백봉춤 보존회’ 이사로서 김백봉 춤 공연의 기획, 예술 감독을 역임하며, 많은 신무용 공연 출연 및 안무, 최승희 춤 관련 논문제작, 학술세미나 등에도 참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무용 주력해온 양성옥, 태평무 보유자 선정, 원형보존과 전통 계승 취지 맞지 않아”

이 후보자 측은 또 “인정조사가 아직 확정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문화재청 태평무 보유자 사진란에 버젓이 양성옥교수의 사진을 올려놓고 있는 점과 인정조사에 있어 이현자 선생의 조교등록일이 1990년임에도 불구하고, 보유자 후보일자인 1993년으로 기재해 조사위원들에게 조사하게 하는 등 이번 보유자 인정조사에 있어 문화재청직원들의 경솔함과 태만함에 화가난다”며 그 의도성을 의심했다.

▲이현자 후보 측이 문제 제기한 내용 중의 하나인 문화재청 홈페이지 태평무 보유자 관련 화면, 좌측은 고 강선영 선생의 춤사위 장면. 좌측 화면을 내리면 맨 아랫쪽에 양성옥 교수의 사진이 게재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이현자 선생님의 경력을 깍아내리면서까지 보유자로 인정하고 싶지않은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전수조교 등록년도는 이명자(94년), 양성옥(96년)이다.

이 후보자측은 “그동안 태평무 하면 이현자, 이현자 하면 태평무로 살아왔다" 며 "전통춤은 단순히 기량만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춤이 전승되어온 내력과 그에 얽힌 혼과 정신들이 총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80세가 된 오늘까지도 전승활동에 힘쓰고 힘차게 무대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문화재청의 이같은 처사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울러“ 춤뿐 아니라, 그동안 지방이나 학교 다니면서 전승활동에 힘 써온 여러 경력을 비롯 서류 관련해서도 양 후보에 질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이현자 선생이 양 교수를 직접 가르치고 전수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런 결정이 된 것에 대해 문화재청은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문화재청에 위와같은 내용의 공개를 요청하고, 940여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했다”고지난 25일 밝혔다.

또 다른 후보인 이명자 후보자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생을 태평무와 함께 살아온 사람으로서 할 말은 많지만 굳이 문서로서 이의제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애써 말을 아낀 가운데 “이번 (보유자 인정)에 있어 너무 정통성없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춤이라는 것은 몸으로 역사를 말해주는 것인데, 우리는 어려서부터 전통무용을 한 선생 밑에서 배워온 사람이다. 이 부분에 대해 누구를 거론하고 싶지 않다. 다만 (보유자 인정) 기준을 어디다 뒀는지 심사에 의문이 간다”라며 일갈했다. 이현자 후보와 마찬가지로 심사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현자 하면 태평무, 태평무 하면 이현자로 평생을 춤을 갈고 닦아왔다"

한 무용계 인사는 “태평무에만 몰두한 강선영 선생의 직계수제자인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주로 신무용으로 인정받아 온 양 교수를 보유자로 선정한 결정은 태평무의 원형과 전통성을 지키겠다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특히 양 교수가 ‘이수자’가 될 수 있게 가르친 인사들보다도 앞서 양 교수가 보유자로 선정된 점에 대해 무용계에서 반발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이현자 후보측이 제기한 한예종 허 모교수는 “이현자 선생의 입장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히고 "그러나 나를 비롯한 문화재 위원 11명은 조사위원들이 채점해서 올린 점수를 보고 (자격)인정을 했을 뿐이고, 일체 점수에는 관여할 수도,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이현자 후보 측이 문화재청에 제출한 태평무 보유자 인정 예고 이의 제기서.

이에 앞서 문화재청은 양성옥 교수를 보유자 인정 예고한다는 발표를 통해 "양성옥씨는 1996년 5월 1일 태평무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된 이래 20년간 태평무의 보존, 전승에 힘써 왔다"며 "장단변화에 따른 춤사위의 표현과 이해가 뛰어나고, 오랜 기간 전승활동을 통해 해당 종목에 대한 리더십과 교수능력을 잘 갖추고 있어 전승능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인정 예고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전승 체계는 '보유자(인간문화재)-전수교육조교(이전에는 보유자후보/준보유자라 지칭)-이수자-전수자'의 순으로 돼 있다.

해당 무형문화재의 최고 권위자가 보유자가 되며, 전수교육조교는 보유자의 제자 중 해당 분야의 전통성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된 이들이다.

양 교수는 1980년 강선영의 문하에 입문했고, 1996년 5월 1일 태평무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됐다. 이현자 후보자는 태평무 명예보유자였던 고 강선영의 제자이자, 양 교수에게 태평무를 이수시킨 장본인이다. 지난 1월 작고한 제92호 태평무 보유자였던 고 강선영 선생의 제자로는 이현자(80) 태평무 전수조교, 이명자(74) 태평무 전수조교(1990년 당시 보유자후보로 문화재청으로부터 증서를 교부받음) 양 교수가 있다. 양 교수가 선배들을 제치고 보유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문화재청"제자가 스승과 선배 제치고 보유자 선정되는 것 어색한 일, 그러나 문제될 것 없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전수교육조교가 있는 상황에서 후배격인 다른 사람을 보유자로 선정하는 게 어색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 될 부분은 사전에 철저히 배제했다.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쳤기에, 이번 인정 예고에는 문제없다"고 해명했다.

양 교수는 강선영-이현자-이명자-양성옥으로 이어지는 태평무 계승자인 동시에, 최승희-김백봉-양성옥으로 이어지는 신무용 전문가이다. 무용계 일각에서는 양 교수가 태평무보다는 신무용 개척자인 최승희(1911~69) 선생의 춤을 계승하는데 두각을 드러내 온 춤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양 교수는 최승희 헌정공연 등 관련 무대도 수차례 선보였다.

무용계에서는 공모를 통해 인간문화재를 지정하는 현 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형문화재의 특성상 전수는 도제식으로 할 수밖에 없는데, 공모제로 전승 체계를 지탱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준인간문화재 제도를 부활하고, 무용계 원로를 명예보유자로 하는 등, 현재의 선정제도를 보완할 방법을 강구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인정예고 기한인 한 달이 다 돼오는 상태에서 문화재청이 이같은 이의제기에 어떤 답을 내놓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