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의 빼딱한 세상 바로보기]싱그러운 봄은 왔건만, 정작 인사동의 봄은 기약이 없다.
[조문호의 빼딱한 세상 바로보기]싱그러운 봄은 왔건만, 정작 인사동의 봄은 기약이 없다.
  • 조문호 사진가
  • 승인 2016.03.14 2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문호 사진가

그토록 인사동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책을 떠들어도 다들 ‘마이동풍’이다.

“조 통수는 불어도 세월은 간다”며 예전 군인들이 비아냥거리듯, 관련부서는 코 방귀조차 안 뀐다. 작은 이득에 눈이 어두워 큰 것을 보지 못하는 인사동 상인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말 빨 없는 예술가들의 넋두리만 술집으로 흘러 다닐 뿐이다.

한 때, “포도대장과 순라꾼들이 사용한 ‘인사문화마당’을 포장마차 장사꾼들로부터 되찾아 예술공간으로 활용하자” / “인사동에서 열리는 전시의 주 단위 리플렛을 거리에 내 놓아 관광객들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이자” /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테르트르 광장처럼, 거리에서 작업도 하고 작품도 팔 수 있는 무명작가 거리를 조성하자“ / ”인사동을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인사동과 북촌지역을 연계하는 국제적인 아트페어를 개최하자“는 등 예술가들의 제안을 나팔 불어댔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지금 전통문화거리를 표방하는 인사동에 ‘한국은 없다’는 볼멘소리가 거세다. 치솟는 임대료를 못 견뎌 문화관련 업소들은 외각이나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거리의 상품 90%가 중국산으로, 마치 인사동이 차이나타운 같다.

특색 없는 유락지로 전락한 중국 베이징의 ‘유리창(琉璃廠)’을 꼭 닮아간다. 인사동 한복판에 대형 관광호텔과 곳곳에 상가건물이 지어져, 국적불명의 관광지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이제 문화특구로 내세울만한 예스러움이나 인사동 풍류는 오간데 없다.

인사동은 조선 말기부터 100여 년간 고미술의 메카였다. 양반들은 북촌에 살았고 화공이나 도공 같은 중인들이 살던 곳이 인사동이다. 1924년 ‘통인가게’가 생기면서 이 일대에 고미술 관련 상가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인사동이 현대적인 화랑거리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현대화랑에 이어 동산방, 선화랑, 경인미술관, 학고재, 국제화랑, 미화랑, 진화랑 등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을 이끄는 메이저급 화랑들이 빠짐없이 인사동에 문을 열었었다. 이들 따라 크고 작은 화랑뿐 아니라 골동품점, 표구점, 필방, 공방 등 미술 관련 가게들이 들어서며, 인사동이 명실 공히 ‘한국 미술의 메카’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인사동 거리에 관광객들은 넘쳐나지만, 백 개가 넘는 인사동 전시장들이 텅텅 비어있다.

외국 관광객들이 왜 인사동을 찾겠는가? 인사동 고유의 색깔이 없는데, 다시 올 리 없다. 그들에게 인사동만의 문화와 풍류를 느끼게 하려면, 군것질거리나 잡동사니를 파는 거리환경을 정비하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궁중화가들의 작업실인 도화서가 있던 곳이다. 그 도화서를 복원해 작가들을 선발하는 방법은 없는가? 그 곳에서 전통적인 민화나 서예, 도예 등을 제작해 외국관광객들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연암 박지원과 율곡선생도 인사동에 살았었다. 민영환 선생의 자결 터와 민병옥대감의 저택인 ‘민가다헌’도 잘 보존돼 있다. 이를 알리는 표지판들도 너무 작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한 역사적 자취를 바탕으로 이야기 옷을 입히자.

가깝게는 80년대 인사동 낭만을 풍미한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 중광스님도 있다. 어쩌면 먼 조선시대 이야기보다 더 가깝게 와 닿을지도 모른다, 어깨에 늘 봇짐을 메고 다녔던 거리의 철학자 민병산선생을 비롯하여 ‘귀천’에 죽치며 막걸리 집을 드나들었던 천상병시인과 영국산 장미뿌리 파이프를 문채, 술보다는 커피 향을 더 즐기던 박이엽 방송작가, 그리고 거지행색으로 인사동을 누비던 중광스님의 자유분방한 행색들 말이다.

그 분들의 동상을 만들어 앉혀, 인사동 거리분위기부터 한 번 바꾸어보자.아기자기한 인사동만의 골목 문화를 가꾸어, 인사동을 드나드는 예술가들의 사람냄새도 담자. 다 같이 힘 모아, 인사동을 낭만1번지로 되돌리는 봄바람 한번 일으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