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역사가 없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Culture Column]역사가 없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 박희진 객원기자 /한서대 전통문화연구소 선임 연구&
  • 승인 2016.03.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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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객원기자 /한서대 전통문화연구소 선임 연구원

개봉 열흘 만에 200만 관객을 울렸다는 영화 '귀향'(감독 조정래)이 내달에는 미국에서 정식 개봉한다는 소식이다. 나라마저도 외면했던 우리들의 역사가 국민들의 가슴에 살아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렸다.

식민지배 속에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이 스스로의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의 일본이 더 최악이라고 했다. 반성 없는 일본에게 우리는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경고했지만 과연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외로이 앉아두고 피해자의 목소리에는 경청하지 않는 무관심, 이 낯설지 않은 풍경에서 우리가 지난 역사를 기억하는 태도가 어떠했는지 돌아볼 수 있다.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더 이상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의 탓만 할 수 없기에 묵묵히 소녀상을 지키며 국민 모두가 자신의 기억 속에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들에 동참하고 있다. 더 늦어지기 전에 역사의 아픔을 영화로 함께 느끼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넋을 기리는 데에 동참함으로서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동행이다. 그 간 우리는 역사를 새로 쓰기에 바빴다.

위안부 피해자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그들의 삶을 보지 않았으며 50명도 살아남아 있지 않은 이제야 그 현실을 바로 보게 된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2만 명 가운데 살아 돌아온 238명의 생존자는 44명 뿐 인 지금 그 간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그 간 위안부의 삶을 일본에서 연구해온 일본 와세다대학 홍윤신(38) 교수는 한 신문사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겐 연구가 필요하다”고 쓴 소리를 뱉었다.

잊혀져가는 것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만이 아니다. 지금의 삶에 방식이 바뀌고 생활이 달라지면서 역사도 무관심 속에 잊혀져가고 그 연구의 필요성도 첨단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500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의 무형문화 또한 국가적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그 가치를 먼저 주목하면서 보존의 시급함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에 있어 그 기술이나 기능, 기량 그 자체가 보존의 가치를 지닌 만큼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인간문화재의 모습을 영상이나 도서 등으로 기록화 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잊혀져가는 것들을 기록하는 데에 우리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것이 남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8호 바디장 보유자 故구진갑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누가 그 기록물을 볼 것이며, 누가 이들과 동행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다. 인간문화재가 이미 작고하여 그 기록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기량의 보유자가 80세 이상 고령인 경우가 전체 지정 문화재 가운데 33%에 달한다. 연구와 기록이 대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2006년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한 충남 서천에 중요무형문화재 제88호 바디장 구진갑 선생이 떠오른다. 그가 평생 해오던 일은 옷감을 짜는 베틀의 한 부분인 바디를 만드는 일이였다. 그가 지닌 기술은 3년 살이 대나무의 껍질을 다듬어 살을 만드는 일이다. 바디의 종류는 옷감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같은 베를 짜는 바디라고해도 베의 바탕 올의 굵기에 따라 베의 굵고 가늠을 결정하는 부분이 섬세함을 요구한다.

그는 튼튼하고 섬세한 바디는 만드는 기술로 알려진 장인이었다. 지금은 그가 만든 바디가 베틀에 끼워져 옷을 만드는 데 당장 쓰이지는 않지만 한산모시를 비롯해 베를 만드는 수공장인들의 베틀에는 여직 그 바디가 사용되어야 한다.

실을 뽑는 기술부터 베를 짜는 기술까지 우리는 복식 역사와 문화를 크게 발달시킨 민족이다. 교과서에 수록된 가락바퀴 사진에서 그 역사를 배웠고, 선사시대 방직술(紡織術)을 입증하는 유물로서 박물관의 방추차를 실측했었다. 문화재연구자가 돼서야 살아있는 방직 장인들을 만났고, 그들이 사용하는 베의 직조를 알기 위해 베틀을 관찰하고 바디장인을 찾았다. 연구자는 영상과 도판에 의존해 그의 손 기술에 묻어난 역사를 그렇게 연구할 수 밖에 없었다.

잊혀지는 것의 두려움, 사라지기 전 치열한 생존은 우리들의 관심에서 부활할 수 있다.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에 경청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진정성 있는 움직임과 이 또한 일맥상통한 것이다. 무형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정부 측의 현실적인 생존을 위한 지원의 노력도 중요한 역할이지만 무엇보다 국민의 이목을 끌어 그들의 관심이 대안이 된다.

영화 ‘귀향’을 보며 뜨거운 눈물로 넋을 위로하고 아픈 역사를 서로가 보듬으며 공동체 속에 공감하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며 달라진 우리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스스로 무엇을 지켜봐야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