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예의를 갖춘 우아한 전투 -빠 드 캬트르(Pas de Quatre)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예의를 갖춘 우아한 전투 -빠 드 캬트르(Pas de Quatre)
  • 김순정 성신여대교수/예술교육학회장
  • 승인 2016.04.0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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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성신여대교수/예술교육학회장

서양무용의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 전문무용수가 나타난 것은 1681년의 프랑스였다. 하지만 이후 상당 기간 여성무용수의 존재는 미미했다.

18세기는 위대한 남성 무용수들의 세기로 불렸는데, 무거운 머리의 가발과 치렁치렁한 치마를 끌며 춤을 추어야 했던 여성무용수에 비해 자유롭게 다리를 드러내며 테크닉을 보일 수 있었던 남성무용수의 활약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발레의 전문화도 함께 이루어졌다.

프랑스 혁명 이후 불어 닥친 낭만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발레는 움직임이나 형식 또는 안무를 중시하는 아카데믹한 전통보다는 대본을 중시하며 인물과 이야기를 충실하게 표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표현 기법, 의상, 무대 장치, 조명이 발달하게 되었고, 상징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인 발레리나가 매우 중요해졌다.

당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파 드 캬트르(1845년 초연,파리)가 있다. 석판화로 남아 있는 파 드 캬트르는 발레에 대한 감각적 여성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낭만주의의 황금시대에 활동한 여성무용가들에 대한 존중과 환상까지 포함하여.

알고 보면 낭만주의발레는 아름답고 기량이 뛰어난 발레리나 간의 불꽃 튀는 적의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통상적으로 라이벌이라면 두 사람을 의미하는데, 당시에는 마리 탈리오니, 루실 그란, 그리지, 파니 체리토 네 명의 발레리나들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며 서로 라이벌이 되었다. 탈리오니의 위험한 라이벌로 불린 화니 엘슬러까지 더할 수 있다. 확실한 우위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발레리나 5명이 함께 인기를 누린 예는 무용사에서 더 찾아볼 수가 없다.

▲Lucile Grahn , Carlotta Grisi , Fanny Cerrito ,  Marie Taglioni_-

<지젤>을 안무한 쥴 페로는 파 드 캬트르에서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들을 한 무대에 세우고자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어느 누구도 다른 이보다 튀어서는 안 되고 또 뒤져서도 안 되며 각자가 지닌 특수한 기량을 동등하게 과시하게끔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어 내야만 했다.

한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 뛰어난 발레리나들을 한 무대에 세우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 여길 정도였다.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지금도 예민한 무용수들은 무대에 누가 가장 먼저 등장하고, 가장 나중에 인사를 하는 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누군가 묘안을 냈다. 나이 역순으로 한다고 했더니 다들 겸손해지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안무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디베르티스망, 4인무가 창조될 수 있었다. 연장자는 탈리오니, 그리지, 체리토, 그란 순이었다. 따라서 탈리오니가 가장 뒤에 나오게 되었다.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며 퇴장할 때에도 격을 갖추며 사라진다. 하지만 춤을 추기 시작하면 자신이 지닌 기량을 최대한 보여주어야만 한다.

지젤의 주인공이자 이탈리아인 그리지는 절묘하게 숙달되어 가볍고 사라질 듯한 발놀림을 보이며 일련의 훼떼로 끝을 맺는다. 역시 이탈리아인인 체리토는 경쾌한 월츠를 추면서 다양한 균형과 발의 귀족적인 배치를 보여주었다. 덴마크인 그란은 도약하는 회전동작과 정교하게 발을 교차하며 부딪치는 기교에 능했다.

마지막으로는 라 실피드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탈리오니가 등장하여 안정성, 가벼움, 도약 능력의 우수함을 입증하였다. 그녀의 긴 팔이 그려내는 아라베스크 포즈는 절묘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발레리나 4명이 모두 나와 크고 매혹적인 도약과 에샤뻬가 이어지고 맨 처음 위치로 가서 끝맺음을 하게 된다.

요즈음도 빠 드 캬트르는 자주 공연되곤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지닌 최고의 테크닉과 더불어 필수불가결한 라이벌의식의 요소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당장에라도 맥빠지는 낭만주의풍 아류 발레로 격하되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