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문화재]무형문화유산이 나아갈 방향, 우리 함께 다시 고민하자
[다시 보는 문화재]무형문화유산이 나아갈 방향, 우리 함께 다시 고민하자
  • 박희진 객원기자 / 한서대 전통문화연구소 선임 연구&
  • 승인 2016.04.1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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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무형문화유산 정책의 나아갈 방향’ 학술대회를 마치고
▲박희진 객원기자 / 한서대 전통문화연구소 선임 연구원

지난 4월 1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한국전통공연예술학회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협회의 전문가들이 모여 학술대회를 열었다. ‘오늘날, 우리 무형문화유산 정책의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연구발표와 릴레이 토론으로 총 8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오랜 시간 해묵은 전통문화계의 문제점들과 올바른 민족문화의 정체성 아래 우리의 역사, 전통, 문화를 전수해주어야 한다는 매우 진지한 논의가 이뤄졌다.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사람과 사람사이에 계승되어지는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문화유산을 조사?발굴하고 수집하여 기록하는 제도적 기반의 마련과 그 기능과 기술을 전수하는 체제 전반에 대하여 오늘날까지 속 시원히 개선되지 않은 문제점에 대해 현장감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 토론은, 지난달 28일 새로운 무형문화재법이 마련되면서 50년 가까이 하나의 법제도아래 그 맥을 이어왔던 국가정책에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기에 전문가들의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컸다.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은 전통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진흥에 가치를 둔 변화된 정책 기조에 따라 마련된 법제도로 최초의 무형유산 진흥법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문화유산의 보호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형태 그대로(原形)의 보존과 계승에 중점을 두고 그 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새로 마련된 무형문화재법에서는 무형문화유산의 세계적 관심과 세계 각국의 정책 흐름에 따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을 참조하여 무형유산의 범주를 넓혔다.

▲‘오늘날, 우리 무형문화유산 정책의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열린 학술세미나의 한 장면.

무형유산 범주에 문화재 ‘원형’유지에 가치를 두었던 문화재보호법의 원칙을 벗어나 그 범주를 넓히고 전형 유지의 가치와 창조적 계승을 포함해 현대적 조화를 꾀한 법률이다. 무형문화재의 해석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에 발굴하고 계승해야 할 문화유산은 확대되어 취지는 좋으나 문화재로 해석하고자 하는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를 놓고 ‘원형이냐 전형이냐’를 두고 팽팽하게 맞선 논쟁에 있어서도 이러한 신법의 애매모호한 기준이 문제가 되어 수면 위로 오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법률 자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문화재의 전통성이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된다. 평생을 바쳐 문화재 원형을 계승해온 전승자가 오히려 법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형문화재의 한 축인 전통공예 또한 새로운 법률 아래 새 바람을 피할 수는 없게 되었다. 현존하는 문화재 지정 종목 가운데 50% 이상이 전승취약 종목으로 주목받고 있는 분야이기에 전승의 간절함이 더 크다. 공예분야 역시 40년 이상 국가 법제도 아래 50여 전승기술을 이어오면서 지속적인 정책 보완이 요구되었다.

이에 공예분야 종목의 세분화와 보유자의 기술을 발굴과 조사, 기록화 등의 체계를 마련하여 세분화한 종목과 더불어 보유자 등록, 전수교육 관리까지 단계적으로 체계화 지원정책의 필요성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전형적 가치를 둔 공예의 창조적 계승을 위해서는 전승기술을 더 이상 수공도구나 형태, 문양 등에만 ‘원형’의 가치를 두지 말고 전통의 기술과 쓰임을 기본으로 하되 첨단도구를 적용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되었다.

새로운 법률상의 보완점도 중요하지만 고질적인 문제들도 다시 논의되었다. 전통예술에서의 ‘경연대회의 공정성과 양적과잉’에 대한 문제가 또다시 거론된 것. 다만 이번 토론에서는 더 이상의 문제점 지적보다는 현실적인 보완책 마련을 위해 ‘경연대회가 왜 필요한 가’에 대한 본질적 접근과 이에 따른 진정성 있는 경연대회의 역할과 방향으로 시민들이 참여하고, 전수자가 후원자가 되는 축제의 경연대회가 제시되었다.

▲‘오늘날, 우리 무형문화유산 정책의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열린 학술세미나의 한 장면.

이번 토론의 장은 문제 지적의 한계가 있던 기존의 논점과는 달리 새로운 법률에서의 보완점과 더불어 기존 법률에서의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였다.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60년대식 전통예술의 보존과 전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미래지향적이고 현대적인 정책에 법제도가 마련되었다면 그 간 간과했던 어려운 점들을 바로보고, 본질적인 문제의 접근이 요구되었다.

분야별로, 종목별로 다양한 무형의 문화유산들이 있어 ‘전형’의 기준을 명확히 하기는 어렵다며 학계와 관련 종목의 종사자들 의견을 우선시하여 정책에 반영하겠다던 관련부처의 실무자는 이날 토론의 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통공예 분야를 비롯해 무용과 음악 등 전통문화예술 전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종목과 유파별 문화재지정의 세분화를 거론하였고,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와 등록제의 개선, 원형과 전형에서의 기준 마련 등에 대해 열정적인 논지를 펼쳤다.

새로운 법제도의 대응에 있어서 연구자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는 새로운 법률을 부정적으로만 보겠다는 것이 아니다. 새 법률 아래 신바람을 기대하기 위해 그 간 전통의 계승을 고민하던 모든 이들의 세심한 노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단지 이들의 목소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감 있는 목소리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