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절필 선언, 류재준 작곡가 ‘더 이상 곡 쓸 수 없다’
이번엔 절필 선언, 류재준 작곡가 ‘더 이상 곡 쓸 수 없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6.04.2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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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음악계 배타성이 가장 큰 원인, 최근 문화예술위 지원금 탈락 등 한계에 도달
류재준 작곡가

지난 달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향해 ‘국가 비리를 고발한’다고 했던 국제적인 작곡가 류재준씨가 이번엔 절필 선언을 해 다시 충격을 주고 있다.

아울러 그가 10년 동안 이끌어 오던 국제음악제의 모체인 앙상블 오푸스도 해체한다고 많은 이들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류 작곡가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한국내의 배타성이다. 무엇보다 자유스러워야 할 창작이란 예술세계마저 학맥, 인맥으로 얽히고 설켜 인맥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일종의 풍토에 대한 회의가 쌓여, 더 이상 작품을 쓰기 힘들다고 선언을 한 것.

그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진은숙 작곡가마저 서울대 같은 곳에서 조차 가르치지 않는 것이 그 예라고 지목했다. 그러다보니 창작의 학습이나 유통이 맥을 흘러 따라가고 특정 학교로 창작 경향이 고착되는 상황마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류재준은 서울대 음대 작곡과, 폴란드 크라쿠프 음악원 출신으로 그의 왕성한 활동은 유럽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류 작곡가의 <진혼 교향곡>은 2008년 폴란드 국립방송교향악단이 세계 초연해 호평받은 작품이고 일전에 <첼로 협주곡>과 <마림바 협주곡>을 영국 로열필하모닉과 레코딩하고 돌아와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다.

그러면서 일화를 소개했다. “제가 하도 돈이 궁해서 6년쯤 전에 대한민국 작곡상에 제 작품 <진혼 교향곡>을 출품한 적이 있어요. 등수 안에도 못 들었습니다.”

비단 이런 경우가 예술기관이나 심사에서 이뤄지고 있어 한국적인 상황에서의 작업이 글로벌 환경과 따로 진행되고 있지만 문화체육관광부 등도 자유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탁계석 예술비평가 회장은 “ 지난 20~30년 동안 예술의전당이나 문화예술위원회 평가, 심사 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류재준 작곡가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면서 “문화융성에 앞서 이런 기본적인 생태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한국은 고인물은 반드시 썩는다는 속담처럼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라고 국내 음악계의 풍토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병을 고치려는 사람을 되레 환자로 보는듯한 착시’가 한국의 고질병이라고” 잘라 말했다.

류 작곡가는 2009년부터 서울국제음악제(SIMF)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고 지난달 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행사 지원사업 공모 심사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예술위와 정면충돌했다.

그는 “작곡가가 세월호나 용산참사 같은 사태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한데 이를 백안시 하는 것은 창작에 몰이해”라면서 지난해 작곡했던 <마림바 협주곡> 2악장은 세월호에서 죽어간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아쉬워했다.

따라서 올해 10월 연주회를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활동 작업을 청산하겠다는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김소옥, 첼리스트 백나영·김민지·심준호 등으로 이뤄어져 창작 매니어들을 키워온 그는 “단원들에게도 다 얘기했다”고 말하며 해외에서 위촉받은 작품으로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한국 연주회를 열어 왔는데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창작을 하기 어렵다. 자발적인 절필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이 나의 음악을 내쫓은 거다.” 그의 외침이 가슴을 먹먹하게 울린다.

 

류재준 프로필

작곡가 류재준은 현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크라코프음악원을 졸업했으며 두 학교에서 작곡가 강석희와 크쉬스토프펜데레츠키를 사사했다.

2010년 핀란드 난탈리 페스티벌과 독일 메클렌부르크 페스티벌에 상주 작곡가로 초청됐으며, 2009/2010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2011/2012 폴란드 고주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작곡가를 역임했다. 주요작품으로 클라리넷 소나타(2013), 현악사중주 협주곡(2013), 마림바와 현악사중주를 위한 5중주(2012), 첼로 소나타(2011), 피아노삼중주’초여름’(2010), 첼로 협주곡(2010), 오페라서곡 ‘장미의 이름’(2010), 현악을 위한 샤콘느(2008), ‘진혼교향곡’(2007), 바이올린협주곡(2006) 등이 있으며, 그의 작품은NAXOS에서 출반되고 있다. 현재 앙상블오푸스의 음악감독과 카잘스페스티벌인코리아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최근 한국 생존 작곡가 최초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구자범) 정기연주회에서 그의 작품으로만 연주하며 집중 조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