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마타하리>, 옥주현 배우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마타하리>, 옥주현 배우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6.04.2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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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심쿵’했습니다. 뮤지컬 ‘마타하리’의 막이 열리고, 중앙무대 저 끝에 당신이 보였습니다.  실루엣이 고혹스럽습니다. 좀 있더니, 당신은 무희가 되더군요. 그 성(聖)스럽고 성(性)스러운 춤을, 이 세치 혀로 어찌 얘기할 수 있을까요?

뮤지컬 ‘마타하리’를 처음 보던 날,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당신만을 봤습니다. 마타하리가 된 옥주현만 보였습니다.

당신을 상찬(賞讚)하며 세속에서 떠도는 말이 모두 그대롭니다. ‘우아한 몸짓, 늘씬한 몸매, 관능적인 표정, 고운 목소리, 파워풀한 열창’이 그대로 보이고, 들렸습니다. 대한민국 뮤지컬에 옥주현이란 배우가 존재하고, ‘마타하리’가 되었다는 게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푸욱 빠져서 뮤지컬 ‘마타하리’를 또 다시 보다가, 잠차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죠. ‘옥주현의, 옥주현에 의한, 옥주현을 위한’ 마타하리! 여기에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타하리의, 마타하리에 의한, 마타하리를 위한’ 옥주현인가? 이런 의문이 생겼더군요.

뮤지컬 ‘마타하리’에서 배우로서의 옥주현은 대단합니다. 반면 실존인물로서의 마타하리는 매우 평범하고 평면적인 인물이란 사실을 뒤늦게 감지했습니다. ‘쉽게 사랑에 빠지는 매력적인 여인’이되, ‘어려운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여인’으론 보이진 않았습니다.

‘마타하리’의 뮤지컬넘버에 당신은 만족하셨나요? 프랑크 와일드 혼(작곡)은 ‘뜨거운 감자’입니다. 때론 그가 만든 뮤지컬넘버가 좋기도 하지만, 전체 작품 속에 잘 녹아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작품이란 ‘설계도’ 속에서 그의 뮤지컬 넘버가 ‘유기적’ 관계를 갖지 못합니다. 한 곡을 들었을 땐 좋지만, 작품 속에서 완급조절은 정치(精緻)하지 못합니다. 숲을 보기보다, 나무만 본다고나 할까요? 뮤지컬 ‘마타하리’에서도 전체가 아름답고 조화롭진 못했습니다.

대본은 어땠나요? 우리는 ‘불운한 스파이’ 마타하리’를 내면이 궁금합니다. 그녀의 고뇌와 항변, 세상을 향한 조롱과 초월이 느껴지길 바랍니다. 마타하리의 극본이 갖는 한계는 아마
남성보다 여성이, 제작자보다는 관람객이 훨씬 더 빨리 감지했을 겁니다. 나와 같은 사람만이 ‘마타하리 = 옥주현’이라는 ‘현실 속 환상’에 빠져 있기에 뒤늦게 알아차렸을 뿐이죠.

마타하리 혹은 옥주현, 당신이 사랑에 푸욱 빠진 여자로만 보이는 게 아니라, 보다 더 지혜로운 여자로 보여지길 원합니다. 저런 매력적인 여자와 사랑에 빠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에만 머물러선 안됩니다. 그런 생각을 품었다가도 곧 왠지 두려워서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처럼 그려져야 합니다. 지금의 대본과 음악은 마타하리를 그렇지 못합니다.

마타하리의 제작진은 이제 냉정해져야 합니다. 마타하리 세트가 대단하고, 조명이 이를 받쳐주는 것이, 마타하리의 해외진출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겠죠? 대한민국에 옥주현과 같은 가창력을 가진 배우가 있다는 걸 알려주려 가는 건 아니겠죠? 옥주현이라는 배우가 해외 뮤지컬시장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 걸 원치 않습니다.

대한민국뮤지컬 ‘마타하리’를 브로드웨이에서 보고 싶습니다. 웨스트앤드 무대에서 오른 옥주현을 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대로의 뮤지컬 ‘마타하리’는 아닙니다.

이런 대한민국 뮤지컬의 원대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마타하리가 된 옥주현(뮤지컬배우)과 이번 작품을 제작한 엄홍현(EMK대표)이 첫 번째 시즌을 마치고 숙고해야 합니다. 스토리와 음악에서 메스를 가해야 합니다. 수술은 아프겠지만, 작품은 좋아질 겁니다.

뮤지컬 ‘마타하리’ (3. 29~6. 12.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