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전략적인 교육/(2) 교육, 봄날 햇살의 힘
[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전략적인 교육/(2) 교육, 봄날 햇살의 힘
  • 유승현 도예가
  • 승인 2016.05.1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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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도예가

(1) 알파고가 어디예요?
(2) 교육, 봄날 햇살의 힘

강원도 어느 작은 산골 초등학교에 다녀왔다. 감성교육에 대한 부모교육 강연차 들린 그곳은 한창 봄이라 가는 길부터 필자의 마음을 아스라이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봄날은 설레며 많은 추억이 꼬리를 물었다. 준비된 강의록보다는 8살 어린 아이의 기억으로 자꾸 살이 붙었다.

내가 살던 곳, 산곡(山谷)은 참 작은 동네였다. 동산위에 오르면 우리 동네가 다 보였는데 어린 나에게는 어느 봄날 햇살처럼 나른하고 따스한 정서가 가득한 곳이었다. 검단 선사가 머물렀다하여 ‘검단산’이라 이름 붙은 산 밑자락에 우리 집이 있었다.

넓은 마당에는 잔디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온갖 들풀들, 민들레 제비꽃 토끼풀등이 비만 오면 더 아우성을 쳐댔다. 집 오르는 길가에는 큰 목련 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대형 솜사탕이 두둥실 떠있다는 상상을 하며 살짝 뜯어 먹어보고는 그 쓴맛에 인상을 잔득 찌뿌린 기억이 난다.

내 어머니는 백목련을 참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흙으로 빚어놓은 큰항아리에 한 아름 꽂아두곤 하셨다. 사랑하는 사람이 빚은 항아리에 내 좋아하는 꽃을 담은 여인의 마음이 얼마나 흡족했을까?

행복한 여인이었으리라. 어쩌면 어머니는 타샤투터 같은 분이셨다. 여성스럽게 앞치마를 두르고 아침마다 풀과 꽃에게 노래를 불러주시며 자연을 주신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분이었다. 시립합창단원을 하셨던 어머니는 유행가보다는 동요를 불러주셨고 아름다운 것들, 고향의 봄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다.

오늘처럼 햇살 좋은 봄날의 기억이다. 어머니는 언덕 높은 곳에 데리고 가셔서 들고 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라 하셨다. 바로 앞에 핀 꽃을 정성스럽게 그렸는데 칭찬은 하지 않으시고 ‘더 멀리 보아라. 더 넓게 보아라’ 하셨다.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말씀대로 그림 그리는 내 시선을 더 멀리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철학적이었는지 어른이 되니 큰 깨달음이 왔다.

늘 육지에 붙어계신 어머니는 바다를 늘 동경하셨다. 어느 해 친지들과 바다 유람을 하고 오시더니 그 무한한 감동을 감출 길 없어 해맑은 소녀의 모습으로 며칠 밤 파도의 노래를 하셨더랬다. 파한쪽 농사도 짓지 않으셨지만 자연을 진지하게 보고 소중하게 여기는 분이었다.

볕 좋은 어느 날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동네 꼬마들이 마당에 가득했다. 부모님은 일을 하러 가시고 유치원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던거 같다. 앞치마를 두르고 큰 후라이팬에 부친개를 하시며 그 많은 아이들을 다 먹이고 계셨다.

당연히 노래도 가르쳐주셨다. 봄볕이 좋은 곳에 둘러앉아 배가 부른 아이들은 졸린 눈을 반쯤 감으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자장가처럼 불렀다. 그 편안함과 느긋함을 아이들은 오래 기억하리라. 그런 일은 상당히 오래 매주 토요일마다 벌어졌다.

또 한번은 친하지도 않은 아이가 우리집에 심부름을 왔길래 이상하다 했더니 그동안 김치며 쌀 등을 아무도 모르게 주셨나보다.  우연히 데리고 들어오셨는데 그 아이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똘똘한 그 아이는 자기 표현력이 어찌나 좋은지 우리부모님의 표정을 참 기쁘게 만들기도 했다. 안그래도 샘이 났는데 그날따라 내 새 전과가 없어진거다.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그 아이 책상위에 떡하니 있는 것을 보았고 작은 낙서 하나로 내 책 인 것을 확실히 기억하는 나는 찾겠다고 난리를 쳤었다.

처음으로 종아리를 멍이 들게 맞았다. 그 후로 그 친구는 나보다 먼저 전과를 갖고 있었고 때로는 더 좋은 책도 들고 다녔다. 이 이야기는 여태 아무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인상깊은 사건이었지만 어린 나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신 것인지 이제는 잘 안다.

나른한 봄날의 기억이 참 많다. 도심에 사는 어른이 되고 보니 높은 언덕에 오를 일도 줄었고 옆집에 누가 힘들게 사는지도 잘 모른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귀히 여기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