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발레단의 <세레나데>와 <봄의 제전>-최고와 최저의 간격
[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발레단의 <세레나데>와 <봄의 제전>-최고와 최저의 간격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6.05.1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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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클래식음악엔 가사가 없다. 스토리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해석은 안무자에 달려 있고 춤의 해석 역시 관객의 자유로운 몫이다. 국립발레단이 신작 <세레나데(Serenade)>와 <봄의 제전>을 동시에 공연했다(4.29~5.1, LG아트센터).

<세레나데>는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C장조 세레나데’를 발란신이 안무하여 1934년 뉴욕에서 초연한 신 고전발레작품이 원전이다. 세레나데란 음악형식의 명칭에 밤, 여인, 사랑, 창밖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니 음악은 서정적일 수밖에 없다. 야곡 혹은 소야곡(小夜曲)이라고 번역되는 이유다. 

두 쌍의 다이아몬드 대형을 이룬 17명 발레리나가 오른 손을 길게 펴 올린 자세로 어두운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고 있다. 속이 비치는 흰색의 로맨틱 발레의상이 가볍게 날아오를 듯한 느낌을 주고 그녀들이 만들고 있는 대형은 고급스럽다.

팔을 내리고 대형이 흐트러지면서 여인들의 군무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군무진이 물러나고 무대에 혼자 남은 여인의 뒤로 한 남자가 등장하면 둘 사이의 정다운 왈츠가 시작된다. 다시 등장한 여인들의 군무가 그들을 둘러싸고 계속되는 사이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남성과 함께 다른 여인이 등장한다.

2인 왈츠와 군무, 4인무로 이어지던 춤은 발레리노를 사이에 둔 두 발레리나의 춤으로 바뀌면서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가볍고 밝았던 춤의 분위기는 어둡게 변모하고 뒷벽과 바닥은 푸른색으로 조명된다. 3자의 치열한 대결이 끝나고 남녀가 함께 떠난 자리에 비탄에 잠긴 한 여인이 쓰러져 있다. 배신감과 홀로 된 상처가 그녀의 아픔일 것이다.

그녀를 위로하듯 남성무용수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대각선으로 무대를 가로지르며 행진하는 남성들의 어깨 위에 죽은 듯이 얹혀있던 여인이 몸을 일으킨다. 어깨를 짚고 이제 꼿꼿이 선 그녀의 두 손은 먼 곳을 지향하고 있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그녀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은 미국발레의 대부로 꼽히는 전설적인 안무가다. 러시아태생으로 독일을 거쳐 프랑스로 망명한 후 발레뤼스무용단에서 춤추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정착한 해가 1934년이다. 종신토록 그는 뉴욕시티발레단의 예술 감독으로 있으면서 4백여 편의 작품을 안무했다.

<세레나데>는 미국 정착 후 그의 첫 작품이란 의미가 있다. 작품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피날레는 그의 순탄치 않았던 삶의 역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 무용수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미지의 곳으로 향하는 발레리나의 모습에 조국을 등진 후 발레의 황무지인 미 대륙에 새로운 예술의 씨를 뿌려야 하는 자신의 운명적 역할을 대입시켰을 것이라는 상상은 어렵지 않다.

국립발레단(강수진)이 2016년 신작으로 <세레나데>를 초연무대에 올린 것은 늦은 감이 있다. 총 4회 공연 중 나는 토요일 2시 공연을 보았다. 박슬기와 이동훈 두 수석무용수를 제외하고는 출연자 대부분이 드미솔리스트와 코르드발레 및 연수단원으로 구성된 연약한 캐스팅이지만 국립발레단원들의 두터운 기량이 돋보였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천재성과 탁월한 음악해석력을 보여준 발란신의 안무와 결합되어 발레미학의 진가를 살려준 세련된 무대였다. 이 30분 작품이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에 추가된 것을 축하하고 싶다.

인터미션 후 두 번 째 프로그램으로 보여진 글렌 테틀리 안무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 40분)>은 여러모로 전작과 대조적이다. <세레나데>가 섬세하고 우아한 여성 춤이라면 <봄의 제전>은 강인한 힘과 거칠음을 앞세우는 남성 춤이다.

<세레나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안무와 색감이 조화된 미니멀한 무대를 통해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해준 수작이었다면 <봄의 제전>은 빠른 음악을 쫓아가기에 바쁜 불안한 춤사위와 의상, 무대미술 등 조잡한 무대요소가 혼재하는 실망적인 무대였다.

두 작품이 동일한 국립발레단 작품이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주역(전호진)을 비롯한 대부분의 출연자를 코르드발레로 구성한 캐스팅 소홀이 원인인지, 평범하지 않은 음악과 안무를 소화해내기에 군무진의 연습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국립발레단이 세 번째 무대에 올린 글렌 테틀리의 안무가 발레단의 캐릭터에 부적합한  때문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내가 본 버전 중 최고의 작품과 최저의 작품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나오는 마음은 착잡했다. 그 간격은 불과 2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