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자인오페라앙상블 창작오페라 <쉰살의 남자>
[공연리뷰]자인오페라앙상블 창작오페라 <쉰살의 남자>
  • 박순영 객원기자
  • 승인 2016.05.3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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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내용 전달에 충실한 현대적 음악어법으로 잘 표현돼

내 남편이 바람이 났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인생의 중반길에 선 50살, 그간의 확고하던 그의 인생관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불꽃같은 사랑이 지펴진다면?

진 13일부터 15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오페라 ‘쉰 살의 남자’는 어쩌면 예상치도 못하게 찾아올 설레임과 사랑의 물음표를 오페라로 소극장 무대 눈앞에서 올리며 짧은 시간, 한편의 휴식, 문화 산책이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가져다 준 공연이었다.

▲쉰 살의 남자 바리톤 김진추와 그를 사랑하는 힐라리에 역의 소프라노 배보람

이번 공연은 작곡가 성세인이 오페라 ‘쉰 살의 남자’를 위해 창단한 자인오페라앙상블(단장,예술감독 성세인)의 올해 제7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작이다. 2012년 국립오페라단 창작산실 지원 사업 선정, 2013년 부평아트센터와 공동기획 초연, 2014년 창작오페라 우수작품 선정으로 2015년 1월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재공연되며 현대적 감각과 서정적 아리아로 큰 호응을 얻었다.

괴테의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한 내용은 이번 소극장에 맞게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무대세트와 네 명의 성악배우만으로 집중감 있게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현대음악어법이 다소의 효과음처럼 역할하고, 아리아보다는 징슈필처럼 연극대사체로 기존의 음악극과 무엇이 다를까 궁금해지게 했다.

하지만, 쉰 살의 남자가 자신의 아들의 여자친구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소재 자체가 관객에게는 흥미롭다. 중년남성인 주인공이 아들의 여자 친구를 사랑하게 되고, 친구의 권유로 화장을 하게 되는 등 일상 일탈의 대리만족을 준다.

그리고 두껍지 않으면서도 선명한 뉘앙스로 반주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은 극의 줄거리와 성악선율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고, 분명하게도 독자적인 한 파트였다. 그러면서도 이질감을 주지 않게 진행하는 점이 눈에 띄었다. 또한 타악기가 아니더라도 현악기와 관악기의 다양한 리듬분배, 그리고 오케스트라 부스 옆 두 명의 소프라노 앙상블로 장면의 분위기와 상황을 효과적으로 연출해내고 있었다.

▲쉰 살의 남자의 한 장면.

주말 오후 자유소극장에 앉은 관객들은 주인공이 아들의 여자에게 사랑에 빠지고, 화장을 하거나 염색을 하고, 또 아들은 막상 나이 많은 소프라노 가수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본다. 일종의 '막장 드라마'이지만 군데군데 배치된 코믹요소에 순수한 웃음으로 공감했다. 어려운 오페라를 본다는 느낌이 아니라, 집에서 TV드라마를 보듯 오페라 선율로도 자연스러운 감정이입과 현실감을 부여했다.

혼란스러운 중년의 흔들리는 감정이 탄탄하고 안정된 바리톤 김진추의 목소리와 만나 역설적으로 더욱 잘 어울렸다. 모든 것이 확고했던 50살에 자신도 모르는 사랑에 빠지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김진추의 윤기있는 저음 목소리와 갈등하는 표정으로 잘 어울리며 '중년 남성'을 표현하고 있었다.

또 한 명, 여주인공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의 활약도 눈부셨다. <쉰 살의 남자> 초기부터 함께해서인지, 연기와 노래가 자연스럽고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1인 2역을 맡았다. 주인공의 아내 역할에서는 안경을 끼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것만으로도 여느집 중년어머니 같았고, 당찬 매력을 가진 여가수 역할을 연기할 땐 쉰 살의 남자와 관객까지도 유혹했다.

주인공의 아들 플라비오 역의 테너 이상규와 그의 여자친구면서 쉰 살의 남자를 사랑하는 힐라리에 역의 소프라노 배보람. 그리고 쉰살의 남자친구부터 극을 서술하는 '배우' 역할의 정동효까지, 모두 충실한 가창력과 연기력을 선보였다.

▲쉰 살의 남자의 한 장면

보통 기존의 오페라나 창작 오페라는, 음악선율과 그 연주가 극의 흐름을 압도할 수 있다. 하지만, '쉰 살의 남자'의 잘 짜여진 음악은 오페라 '듣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음악인지 말인지, 효과음인지를 구분하는 것보다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그리 힘들지 않게, 한마디로 눈치 빠르게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음악의 자연스러운 표현을 위해 작곡가는 무척 고심했을 것이다.

즉, 오페라에 대한 기존의 '무겁고 울려퍼져야 한다, 민족소재여야 한다, 신화주제여야 한다' 의 고정관념을 깨고, 일상의 '일탈'이라는 소재를 썼다. 또한 오페라 성악의 목소리로 전달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난해한 현대음악'이 아니라 극의 내용전달에 충실한 전령사로서 현대음악 어법을 사용한 점이 훌륭했다.

오페라는 대규모 형식과 다양한 매체를 필요로 한다는 특성 때문에 작품이 많지 않다. 주요 레파토리로 흔하게 공연되고 있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창작오페라는 더 심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 창작오페라 육성사업으로 등단한 하나의 작품이, 계속 공연되는 주요 레파토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재단의 지원과 함께 다양한 방법의 강구, 창작계의 고심, 그리고 작곡가와 오페라단의 자구책 모두가 함께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꼭 오페라여야만 하는지, 우리는 왜 오페라에 그토록 목숨을 거는지, 중요한 시점에서 꼭 한번 점검해봐야 한다. 규모와 형식에 대한 타진과 음악어법 등을 다시 한번 돌이켜 봐야한다. 재미있는 공연은 소규모라도 지속적으로 편하게 공연될 방법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