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의 시 같은 박진호 사진전,‘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이백의 시 같은 박진호 사진전,‘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 조문호 기자/사진가
  • 승인 2016.06.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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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까지 갤러리 나우

사진가 박진호씨의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전이 오는 6월1일부터 14일까지 인사동‘갤러리 나우’에서 열리고 있다.

박진호씨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서울예전에서 사진을 배웠다.

홍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공부한 후, 1992년‘아노미’전을 시작으로 아홉 차례의 개인전과 한국사진의 수평전 등 많은 단체전에 참가했다. 무엇보다 강하게 인식된 작업은 첫 전시‘아노미’였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0*60cm, 디지털프린트, 2016

자신의 신체를 복사기로 형상화해 존재 자체를 확인한 작업이었다. 기계적 복제나 다름없는 인간적 고뇌를 표출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 외에도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 같은 시적 이미지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내놓은 작품은 달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움직인 사진이다.

이사진들은 70-200mm 망원으로 스트레이트하게 찍은 사진인데, 촬영 기법과 노출 데이터를 찾기까지 7년이 걸렸고, 촬영기간은 무려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 긴 시간동안 생각을 숙성시켜 온 것은 자유로움을 꿈꾸었다는 것, 좀 더 경쾌한 삶을 그리워했다는 것 그리고 50대 중반의 나이가 주는 주체적 사유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0*60cm, 디지털프린트, 2016

그는 작업노트에서 달은 신(神)이라며, 자신도 모르는 신을 표현하려는 자체가 헛된 노력일 것이나, 신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었다고 적었다. 자연법칙을 벗어나고 우주원리를 이탈한 자유, 그런 인생을 바라지만, 너무 슬프다고 했다.

예술은 결코 감각만의 영역이 아니다. 끊임없는 생각과 회의 그리고 탐구에 감각이 더해져야 한다. 그 추운 겨울바람에 떨고, 여름 날 모기에 뜯겨가며 사진을 찍은 것은 오랜 기간의 생각과 회의에 따른 사유의 결과라고 한다. 그의 친구인 한양대교수 정재찬씨는 이렇게 전해왔다.

“그는 도도한 외로움, 고고한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저 제목은 교만도 유희도 아니다. 어쩌면 신 앞에서 응석을 부리고 싶거나, 눈물로 간구하고 싶지만 인간의 자존심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어찌 그를 이해하랴. 다만 거룩하진 않아도, 거짓되고 위선에 찬 신앙보다는 네가 참 되도다, 신이 말해 줄 것이다, 라고 믿을 뿐이다.”

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지 사진평론가는 아니다. 그래서 박진호의 사진을 보며 느꼈던, 지극히 주관적인 단상들을 이야기할까 한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12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보통 달을 찍으려면 장시간 노출을 주어 달의 궤적이 한 줄로 이어지는데, 이 사진들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해, 마치 춤추는 달처럼 넘실댄다. 달을 소재로 택했다는 것 자체가 사진으로 시를 쓰겠다는 이야기다.

달을 생각하니, 죽은 울 엄마가 제일먼저 떠오르고, 둘째는 이백선생이 생각나더라. 왜? 울 엄마가 생각났냐면, 살아생전 즐겨 부른 노래에 달이 나오기 때문이다. 노래 제목은 모르지만,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 노래가사들이 잊혀 지지 않더라.

첫 소절이 “구름 속에 달빛만 엉큼한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당신의 마음도 검구려”로 시작된다. 자연에 빗댄 사랑의 마음을 어찌나 은근하게 풀었는지, 노래가사가 바로 시였다,

즉 박진호의 사진 메시지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시였다. 자연과의 사랑 노래, 아니 달과의 아주 에로틱한 사랑 그 자체였다.

두 번째 떠 오른 이백 선생도 달과 인연이 너무 깊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백선생께서도 자연을 신이라 했다.

'독작(獨酌)'이란 시를 한 번 읽어보라.

꽃 사이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니
달이 찾아와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다
달도 그림자도 술은 못 마시지만
그들과 더불어 이 봄밤을 즐기자
내가 노래하면 달도 하늘을 서성거리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춤춘다
이리 함께 놀다가 취하면 서로 헤어지니
담담한 우리의 우정, 다음엔 은하 저쪽에서 만날까

이 정도면 가히 신선이다. 스스로 귀양 온 신선이라고 하였지만, 현실은 못내 답답하고 아팠을 것이다. 자연을 벗 삼아 술로 한을 달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7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여러 정황으로 보아 작가의 마음이 어렴풋이 읽혀지더라. 뒤틀린 현실에 가슴이 미어져, 자신이 몸 담아 온 사진판부터 바로세우고 싶었을 게다. 지난해에는‘최민식사진상’대상수상작 문제점을 제기하며, 친구였던 수혜자를 강력하게 비판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신이나 다름없는 달을 마음대로 움직여,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 표출도 숨어 있을 것 같았다. 나아가, 자연과 더불어 사람답게, 그리고 세상을 자유롭게, 재미있게 살라는 말 같았다. 바로 갑이 없고 을이 없는 대동 세상을 만들어, 신선처럼 함께 놀자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문의:‘갤러리 나우’(02-725-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