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문화재] 100년 전통기술의 현장, 통영 '추용호 소목공방'을 지켜라.
[다시 보는 문화재] 100년 전통기술의 현장, 통영 '추용호 소목공방'을 지켜라.
  • 박희진 객원기자 / 한서대 전통문화연구소 선임 연구&
  • 승인 2016.06.15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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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객원기자 / 한서대 전통문화연구소 선임 연구원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손기술이 좋기로 알려졌다. 특히 지역에서 나는 자연물을 이용해 일상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는 데에 그 맥을 이어오면서, 전통공예의 오랜 역사를 지켜올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도시가 경남 통영이다. 조선시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3도의 수군을 통할하는 해상방어 총사령부인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있던 곳이 바로 통영이다.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12공방이 이 통제영에 있었고, 12공방에서는 조선 군영의 군수품생산은 물론 조정에서의 진공품과 사신의 헌상품까지도 조달하였는데, 바다를 통해 사람과 물자를 끌어들여 전국 최고의 장인들을 모아 만들 수 있었다.

통영 12공방은 조선후기에 통제영이 없어지면서 폐방된 곳도 있었지만 몇몇 장인들은 홀로 제 공방을 열고 전통의 기술을 전승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러한 역사를 이어가기위해 우리나라는 국가차원에서 이들을 문화재로 등록해 보호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135종 가운데 전통기술을 보유한 51종이 전국 각지에서 문화유산을 전승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경남 통영에는 통영칠기, 통영갓, 통영반닫이, 통영소반, 통영장석 등이 활발히 활동하는 인간문화재로 알려졌다.

▲통영 소반

특히, 통영 소반(小盤)은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자연미에 나무와 나무목을 잇는 견고한 짜임과 이음으로 단단함을 더한데다 화려한 자개 장식과 고풍스런 칠의 아름다움이 더해진 작은 상으로, 목가구 중에서 가장 지방색이 짙은 전승 공예품이다. 소반은 지역별로 60종이 넘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그 중 통영반은 구름문양의 운각(雲脚) 장식에 대나무마디 모양의 죽절형(竹節形) 상 다리 모양의 소반이 많다.

소반은 좌식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아직까지도 그 쓰임의 기능을 잃지 않은 전통공예품이다. 조선시대 유교이념의 영향으로 겸상보다는 독상이 주로 사용되면서 수요가 많았고, 제례·혼례 등 의식을 행하는 차림에도 사용되었다. 서양문화가 유입되면서 입식의 식탁이 흔히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좌식이 더욱 익숙한 민족이다. 쓰임을 잃지 않은 소반은 선조들이 물려준 생활습관의 하나이기도 하며 잊혀 지지 않는 전통의 소중한 문화이다.

그러한 전통의 맥을 이어 소반(小盤)을 만드는 장인을 소반장이라고 한다. 통영소반은 아버지 추웅동(1912~1973) 선생 때부터 2대에 거쳐 소반을 만들고 있는 추용호 선생이 대를 잇고 있다. 추용호 선생은 전통도구를 능숙하게 다루고 운각 조각 등의 기량이 뛰어나 2014년 6월 국가무형문화재 소반장으로 인정되었다.

▲facebook에 개설된 국가무형문화재 추용호 소반장 공방지키기.(사진출처=facebook국가무형문화재 추용호 소반장 공방지키기)

추영호 선생은 아버지가 지은 터 아래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온 옛 공구를 이용해 전통의 제작기술 그대로 통영소반을 만들어내는 인간문화재이다

그런데 그가, 소목공방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400년의 역사를 지닌 그의 소목공방이 철거될 위기에 놓였기에 평생 소반만 만들고 살아왔던 그가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생을 바쳐 해오던 소목 일마저 접어두고 공방 앞에 천막살이를 시작했다.

통영시 도천동 소재의 소목공방은 단순히 허름하고 오래된 고택이 아니다. 통영 12공방 터에 세워진 400년 역사의 맥을 이어오는 유서 싶은 건축물이자 통영 12공방의 마지막 공방이기도 하다. 120년 통영소반의 전통기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전수교육공간이자 무형문화유산의 기록화를 위한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파란물통이 얹혀진 건물이 철거위기에 놓인 국가무형문화재 추용호 소반장 공방 건물(사진출처=손혜원 의원 facebook))

그러나 2014년부터 통영시는 추용호 장인의 집 철거를 위해 법적 절차를 밟아왔다. 현재는 서울행정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에 있으나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에서 철거확정으로 판결이 났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통영시는 도로개발을 위해 공방을 강제 철거한다는 것이다. ‘통영 12공방’터를 지켜야 한다는 몇몇이 우회 도로를 주장했지만 공영시는 이를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이미 공방의 앞 뒤 도로공사를 마친 상황이다.

국가가 지정한 인간문화재의 전승 현장 자체를 지자체가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문화재의 전수공간을 부셔 없앨 계획을 법에 의해 수순대로 밟아 왔다는 것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0m도 안 되는 그 좁은 도로를 내자고 인간문화재를 상대로 법적대응을 하고 집을 비워주지 않으니 400년 된 공방에서 100년 물품들을 밖으로 들어내 창고로 옮겼다. 공방 대문에는 ‘출입금지’ 표시를 해놓았고 오갈데 없는 장인이 길목에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한다. 장인은 소반 제작에 사용되는 목재와 100년 된 연장들이 상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통영시청에서 추용호 소반장 공방의 집기를 들어내고 문을 판자로 막았다. 게다가 '출입금지'라는 경고문도 붙였놨다. 공방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붙여놓은 포스트잇에는 응원과 격려의 글들이 담겨있다.(사진출처=facebook국가무형문화재 추용호 소반장 공방지키기)

이런 소반장의 소식을 접하니 과연 소반을 만드는 전통기술이 어느 나라의 문화유산인지 의아해졌다. 우리가 왜 문화재를 지정하고, 그들을 보호해야 함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통영시가 1995년부터 추진 중에 있는 통제영 복원 사업이다. 통제영 복원사업은 ‘단순한 건물의 복원 차원이 아니라 잃어버린 역사의 복원이며, 남해안 중심도시 통영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이 사업을 추진한다고 했다.

새로 지어질 통제영에 12공방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있는 그대로의 문화재조차 잃게 생긴 판국에, 오래 전에 이미 잃어버린 역사는 또 복원하겠다는 것이 순서가 바뀌어도 아주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400년 터 잡고 뿌리내려온 통영공방의 생생함도, 그 속에 120년 전통기술을 간직해온 살아 숨 쉬는 인간문화재조차도 생존해 있는 문화재로서의 그 소중한 가치와 위엄을 알지 못하면서 ‘복원’이라는 명목아래 과거를 새로 짓기에 급급한 현실이다.

▲손혜원 의원이 통영으로 내려가 추용호 소반장과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공방 지키기'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사진출처=손혜원 의원 facebook)

지난 3월에 제정된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의 제4조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의 시책과 지역적 특색을 고려하여 무형문화재의 보전 및 진흥을 위한 시책을 수립 ․ 추진하여야 한다.”는 책무규정이 있다.

400년 터 잡은 공방을 들어내면서까지 도로를 내겠다는 통영시는 법대로 진행했으니 문제가 없다 하지만, 통영의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보전과 진흥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고민들을 해왔을지 궁금하다.

보기 좋게 복원된 문화재라고 해도 역사의 현장에서 제 위치를 지키지 못해 진정한 가치를 빛내지 못한다면, 생명을 잃는 문화재가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