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의혹', '관행'이라는 생각은 틀렸다
'조영남 의혹', '관행'이라는 생각은 틀렸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06.15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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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힘으로 예술을 추구하는 이들이 존재, 비난은 미술계에 했어야

'관행(慣行)'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회에서 예전부터 해오던 대로 함. 또는 관례에 따라서 하는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최근엔 그 뜻이 이상하게 바뀌었다. 어떤 문제로 지적을 받으면 그에 대한 핑계로 쓰는 단어로 인식됐다.

공무원들이 접대를 받은 것이 드러나도, 어떤 작품이 표절로 의혹을 받아도, '날림공사'라는 지적을 받아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홀대할 때도, 정치권의 비리가 드러나도 당사자들이 항상 꺼내는 말은 '관행'이었다. 이전부터 쭉 그렇게 해왔다는 것. 그 말을 듣는 우리들은 시쳇말로 '어이 상실'이 된다. '전부터 그렇게 해왔는데 왜 우리에게만 뭐라 그러느냐'라며 반성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을 보게 되니까.

▲가수 조영남/서울문화투데이 DB사진

조영남이 대작 화가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뒤 덧칠을 하고 자기의 그림이라며 판매를 했다는 '대작 의혹'에 휘말리자 진중권은 이를 두고 '관행'이라며 조영남을 옹호했다. 그는 조영남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되자 "피카소도 대신 그림을 그리게 했다. 피카소가 고객에게 그것을 말했을까?"라는 트윗을 날리며 조영남을 수사하는 검찰과 그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날렸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무섭다. 자신의 그림이라고 속이고 돈을 받은 조영남보다 그것을 '관행'이라며 우기고 이를 비판하는 이들을 '헬조선 화가들의 지적 수준'이라고 비야냥거린 진중권이 더 무섭다. 피카소를 거론하고 서양미술사를 거론하며 '조수를 쓰는 것이 대세'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세계의 미술계가 그야말로 '양심불량의 천국'임을 주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조영남,나는 왕이다_Mixed Media_2005

그것은 정말 '관행'이었을까? 만약 그것이 맞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가들은 모두 대작 화가의 이름을 빌려 자기 이름을 알린 '사기꾼'이었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들 중에는 돈이 없고, 배가 고파서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야했던 이들이 분명 존재했다. 그들을 생각한다면 '관행'이라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써서는 안 될 것이다.

가난과 전쟁으로 사랑하던 아내와 자식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살아야했던 화가 이중섭. 종이가 없어 담뱃갑 은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힘겨운 삶이었지만 그의 그림에는 힘겨움이 전혀 없다. 도리어 그의 그림에는 천국에서 뛰노는 아이들,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가족들이 있었고 힘차게 일어나려는 황소의 모습이 담겼다. 그에게는 '관행'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우리는 진중권이 '관행'이라고 조영남을 옹호하는 것을 보며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진중권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진중권은 '관행'이라고 옹호하기보다 도리어 그것을 '관행'으로 보는 미술계에 쓴소리를 날렸어야했다. 조영남을 변호하고 싶다면, 조영남을 그 '관행'의 희생자였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 '관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미술계를 겨냥하는 것이 전제가 됐어야했다.

▲조영남,묘비명 Epitaph_91x61_1995

이래저래 조영남은 결국 '화가'의 지위를 상실했다. 덧붙여 그것이 '관행'이라고 옹호하며 '헬조선의 수준'이라고 비야냥거리던 진중권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우리는 또다시 예술가의 추악한 모습에 실망하고 예술가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덧붙여 대작 작가에 대한 동정심 또한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분명히 생각하자. 유명 작가만이 작가가 아니라는 것을. 비록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이들이 분명 있다는 것을. 그저 유명 작가라고 우루루 몰려가지 말고 이름없는 작가의 작품들도 지켜봐주길. 우리의 예술계는 아직 완전히 '관행'으로 물들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