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눈으로 음악을 듣다- 신고전주의 발레, 결혼(Les Noces)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눈으로 음악을 듣다- 신고전주의 발레, 결혼(Les Noces)
  • 김순정 성신여대교수/한국예술교육학회장
  • 승인 2016.06.3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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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극장에서 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속도감 있고 화려한 발레를 보는 중에도 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지젤>을 보면서도, 크레믈린 극장에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보러가서도 거의 혼수상태로 졸다가 나온 경험이 있다. 잠자며 피로회복을 할 장소를 제공해주니 고맙기도 했지만, 피곤한 사람에게 잠자기 편한 의자를 제공해주는 곳이 극장일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피곤함이나 푹신한 의자가 아니라 새로움이 없는 진부한 작품들에게 있지 않을까.

▲니진스카-결혼(로열발레단,2002)DVD해설집 뒷표지 사진.

극장은 잠자거나 쉬는 곳이 아니라 잠들어 있던 우리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곳이어야 한다. 극장에서 일하는 예술가는 의식을 깨워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아름다움, 불편한 진실, 상상 속의 세계 등을 통해 나를, 우리를 각성시켜주는 작품을 만나는 곳이 극장이 되어야 한다.

얼마 전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귀국인터뷰 중에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 드린다”라는 말에 묘하게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의 의미가 단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이 수면시간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 말이, 개개인이 깨어나기를 바라며 한 말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면서 떠오른 인물이 바로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1891-1972)였다.

현대무용가 중에는 피나 바우쉬, 마사 클락 등 걸출한 여성 안무가들이 많지만 발레안무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남성이다. 그렇기에 더욱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다. 무용 감상시간에 발레 전공 대학생들과 니진스카의 <결혼>(초연,1923)을 DVD로 본 적이 있다.

영국 로열발레단에서  발레륏스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제작된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결혼에 대한 막연한 낭만적 환상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작품을 보면서 난감해하던 학생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유를 알고 싶다면 유튜브로 감상하기를 권한다.

▲니진스카의 결혼(1923),JUDITH MACKRELL,Reading Dance.

니진스카는 무용의 신이라 불리는 바슬라브 니진스키의 동생으로 러시아 황실발레학교에서 체케티와 포킨에게 사사 받았다. 그녀는 발레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마린스키발레단의 군무진 무용수가 되었다. 이후 발레 개혁자이자 안무가인 포킨의 작품에 출연을 하여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새로운 예술에 대한 혁신자이자 발레를 국제적 예술형태로 만드는데 공헌한 디아길레프는 안무가 먀신의 후임으로 심원한 예술가적 기질을 지닌 니진스카를 점찍었다.

오빠 니진스키가 마린스키극장에서 해고되었을 때 그녀는 강력한 항의의 표시로 안전한 삶을 제공해주는 황실극장을 바로 사임해버렸다. 그리고는 프랑스로 가서 디아길레프의 발레륏스에 합류하였다. 이후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한 니진스키와는 달리 세르쥐 리파르, 로젤라 하이타워, 프레데릭 아쉬톤 등 수많은 제자들을 육성하며 발레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개인적인 불우함도 있었지만 장수했다.

러시아 발레단이란 뜻의 발레 륏스(Ballet Russes,1909-1929)의 유일한 여성 안무가, 니진스카는 직접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각색하여 스스로 “햄릿”역을 맡기도 한 당찬 예술가였다. 디아길레프는 만약 딸을 갖는다면 그녀처럼 다재다능한 딸을 갖고 싶다고 했다던가.

니진스카는 정형화된 고전발레의 규칙을 바꾸려 하였지만 그렇다고 이사도라 덩컨의 모던댄스를 추종하지는 않았다. 니진스카는 동작을 짜맞추거나 구성을 하는 단순한 안무가라기보다는 사회의 흐름을 감지해서 작품에 담을 줄 알았던 보다 거시적인 안목을 지닌 공연연출가에 가까웠다.

오래전 러시아에서는, 결혼날짜를 받으면 신부가 될 여자가 집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고 결혼 날까지 슬픈 노래를 계속해서 불러야 했다고 한다. 니진스카의<결혼>은 신부가 될 여인이 개인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다른 공동체의 일꾼이자 일원으로 귀속되는 상황을 차분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부의 어머니가 표정은 없지만 절제되면서도 슬픈 움직임을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적인 것은 니진스카의 개성적인 연출과 안무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의식을 깨워주는 니진스카와 같은 여성발레안무가의 출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