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의 빼딱한 세상 바로보기]벼랑에 선 예술가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조문호의 빼딱한 세상 바로보기]벼랑에 선 예술가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 조문호 사진가
  • 승인 2016.07.0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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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호 사진가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20대 국회에 문화예술 전문가가 아무도 없다.

비례대표로 뽑힌 국회의원도 없지만, 비례대표에서 지역구를 갈아탄 문화계 출신 후보들까지 모조리 낙마해 버렸다. 지금 정부가 ‘문화융성’을 국정 기조로 삼아 정권의 성패를 걸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단 말인가. 이런 참담한 현실에서 문화예술을 대한 새로운 정책이 나올 수 도 없겠지만, 나온다 해도 헛다리짚을 게 뻔하다.

지역구 의원 중에는 자칭 ‘문화 전문가’라는 분들이 더러 있다. 제발 좀 웃기지 마라. 문화 예술에 대한 철학이나 전문지식도 없이 보좌관 도움으로 관련법 몇 개 발의하고, 어설픈 글로 책 한 권 냈다고 문화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문화예술 전문가가 없는 국회로 문화융성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지만, 앞으로 가난한 예술가들 살 길이 막막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즘 예술인들이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유명 연예인의 그림이 경매에서 고가에 팔린다는 소식으로, 평생 그림에만 매달렸던 전업작가들이 심한 박탈감을 느껴 왔는데, 이젠 조영남의 대작논란으로 사기꾼 취급까지 받게 됐다.

조영남 씨는 평소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을 즐겨 인용했다. 그 말 자체는 재미있게 풀어가려는 말이었지, 예술은 사기가 아니다. 자기가 사기를 쳤으니 사기로 보였는지 모르겠다. ‘예술을 사기’라고 주장하며 기존의 상식을 깨는 시도를 했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나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같은 이들이 진정 깨 부시고자 했던 것은 기존의 예술가들이 갖고 있던 권위이자 기존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던 선입견이지 창작 행위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기득권에 도전하던 예술가들의 창조 정신이 왜 기득권의 교묘한 방어술로 악용되는지 모르겠다. 조영남씨 경우는 대작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적 도리나 양심에서 구제받을 수 없다.

그리고 지난달 미술의 공공적 가치를 고민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관광 명소인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의 통로계단 그림들이 주민들에 의해 말끔히 지워 진 것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관료들의 생각과 주민들의 생활상에 많은 괴리가 있다는 게 확연하게 드러났다. 공공예산이 들어간 계단그림을 일방적으로 지운 것도 문제이지만, 충분한 교감 없이 시행한 주관 처는 물론, 사업에 참여한 미술인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국내에 벽화나 조형물이 들어선 마을 프로젝트는 전국적으로 200여 곳에 이른다. 10년 전부터 지자체별로 여러 가지 공공미술 사업들이 추진되어 왔지만, 주민의 삶과 어우러지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작가들이 공무원들과 타협해 관광 위주의 볼거리나 환경미화에 머무르는 작업들을 내놓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 사업이 끝나면 작가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흉물이 된 사례도 곳곳에 널려있다.

작가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책임지고 이끌게 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마을 프로젝트에 참여 작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 세운다면, 이처럼 소홀이 다루겠는가? 작가는 진정성을 가지고 주민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예술적 아우라를 마음 것 쏟아 부을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절실하다. 머리보다 마음을 앞세워 마을 프로젝트에 임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의 문화예술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강남의 디올 빽 사진이 여성비하라며 강제로 내려지는 등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가 하면, 예술을 우습게 보는 사회적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하기야 정치인들이 예술을 하찮게 여기니, 국민들만 나무랄 처지도 아닌 것 같다.

엊그제 가난한 다큐사진가 권철이 충무로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일본에서 모든 지위 다 버리고 귀국한지가 몇 년째지만, 그 결정이 후회스럽다는 것이다. 풀빵장사를 하며 작업은 이어가지만, 한국에서 당하는 굴욕에 대한 그의 절규가 영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더 이상 악밖에 남지 않은 예술가들을 벼랑으로 내 몰지마라.

예술가들이 쓰러지면 문화예술이 쓰러지고, 문화예술이 무너지면 정신도 경제도 나라도 모두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