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국립현대무용단-벨기에 리에주극장 공동제작 'Nativos'
[공연리뷰] 국립현대무용단-벨기에 리에주극장 공동제작 'Nativos'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07.15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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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반복, 남자의 에너지, 그리고 한국의 샤머니즘

국립현대무용단, 아르헨티나 출신 안무가, 그 안무가가 직접 선발한 한국인 무용수, 벨기에의 현대무용의 자존심 리에주극장. 이들이 손을 잡고 만들어낸 <Nativos(나티보스, 이하 <나티보스>)>가 7월 15일부터 17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세계 최초로 초연되고 있다. 한국과 유럽의 공동 제작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던 무대이기에 과연 어떤 조화를 이뤄낼까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런데 막이 오르자 한 남자가 굿거리를 부르며 등장한다. "한 명 낳고 두 명 낳고... 변강쇠네"같은 능청스런 '우리 고전 스타일의' 대사도 구사하고 '박수 한 번 쳐주시오'라고 관객 호응까지 유도한다. '뭐 유럽하고 손잡았다더니 별 차이 없잖아?'라고 넘어가려는 순간, 공연은 이렇게 내게 미리 언질을 둔다. 

▲ 한 남자가 굿거리를 하며 막이 오른다. 이 남자는 극중에서 한국 타악기를 연주한다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이봐, 한국과 유럽이 손잡았다고 어렵게 생각하거나 낯설게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어. 뭐가 다를 거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 그냥 '우리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편하고 보라고'.

한국 벨기에 공동제작, 그러나 중심에는 우리의 샤머니즘과 제의가

그렇다. <나티보스>의 중심에는 우리의 샤머니즘과 제의가 있다. 이 공연의 제목인 <나티보스>는 스페인어로, 영어로는 'Native', 우리말로는 '토박이', '토착적인'이란 뜻이다. 국제적인 프로젝트에 '토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작품은 '나티보스', 즉 토박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 지를 우리에게 물어본다.

굿거리를 한 이는 바로 타악기가 있는 자리에 앉아 공연 내내 장단을 맞춘다. 무대에 있는 4명의 남자 무용수들. 이 중 1명은 여장을 하고 여성스런(?)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춘다. 어려운 동작보다는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동작이 주를 이루고 예기치 못한 상황까지 표현하며 공연은 차츰 열기를 띠기 시작한다.

오디션을 통해 뽑힌 네 명의 남자 무용수(박재영, 유용승, 임종경, 최용승)는 처음에는 약간 얼이 빠진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걸죽한 대사를 날리기도 하며, 난데없이 상대의 뺨을 서로 번갈아 때리는 등 어딘가 모르게 '나사가 풀린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 네 명의 무용수는 처음에는 다소 얼빠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들 네명은 한 곳에 모이게 되고 전체가 같은 동작을 무한 반복한다. 한참을 그렇게하다가 다시 다른 동작을 또 무한 반복한다. 음악이 다 끝났는데도 그들은 숨소리를 리듬 삼아 계속 반복하고 있다.

특히 여장을 한 유용승의 모습이 눈에 띄는데 여장을 했을 때는 눈웃음을 치며 여성스런 춤을 추던 그가 여성의 옷을 벗어던지자 누구보다도 더 강한 모습으로 동작을 한다.

이렇게 동작을 무한 반복하는 모습이 몇 번씩 보여지고 무용수들은 그렇게 자신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땀으로 옷과 몸이 완전히 젖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뭔가를 해야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한 '무한 반복'

▲ 무한 반복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무용수들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이 공연의 안무를 담당한 아르헨티나 출생의 애슐린 파롤린은 한국에서 '내림굿' 공연을 보고난 뒤 샤머니즘의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한 느낌까지 들었지만 굿이 진행되면서 점점 한국의 샤머니즘에 빠져들어갔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리고 파롤린은 현 시대를 보게 된다. 현대인들은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어쨌든 '뭐라도 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선보인 안무는 일종의 제의 의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움직여야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움직여야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나티보스>가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제는 한국적인 것을 다루지만 그가 추구하고자 한 것은 현대 우리들의 모습이었고 그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로간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깨는 것이었다.

실제로 파롤린은 다른 국적, 다른 성별 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작품만 생각하며 연습을 했다고 한다. 비록 4주밖에 되지 않는 준비기간이긴 했지만 작품만을 바라봤기에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 피아노와 한국 타악기의 조화가 무대의 긴장감을 높인다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어려운 동작이나 화려한 독무보다는 집단이 보여주는 반복되는 동작에서 느껴지는 에너지. 여기에 피아노와 한국 타악기가 선보이는 절묘한 화합이 이 공연의 묘미다. 낮은 음의 피아노 연주가 이렇게 긴장감을 줄 지는 생각지 못했고, 피아노와 꽹과리, 징, 장구 등 한국의 악기와 호흡이 잘 맞는다는 것도 새롭게 느껴졌다.

<나티보스>는 7월 예술의 전당 공연을 마친 후 오는 11월부터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에서 순회 공연을 펼친다. 나름대로의 보편성을 지닌 이 무대가 유럽인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지 기대된다. 무대에 숨겨져 있는 한국의 숨어있는 아름다움이 이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