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19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오성화 · 박해성 · 홍은지 운영위원]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다?
[인터뷰 제19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오성화 · 박해성 · 홍은지 운영위원]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07.2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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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3일~30일까지,"계속 가자는 무모함이 19회를 만들었다”,“틀을 깨려는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내는 자유의 축제, 서울월드컵경기장 공간의 변화 지켜보라”

20대의 젊은 예술가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저 예술하나만 생각하고 뛰어들었지만 기성 세대가 쌓은 견고한 벽에 막혀 이름도, 작품도 내세우지 못하고 있던 이들이 술집에 모여 앉았다. 작품을 알릴 공간도,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방법도 찾지 못했던 이들. 한참의 이야기가 오가다 마침내 이들은 결정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가 한 번 만들어보자. 자유롭게”

그 결정은 삽시간에 전국의 예술가들에게 힘이 되었고 마침내 그들은 고정의 틀을 벗어난, 자신들의 무대를 펼치기 시작했다. 연극, 음악, 무용 등 장르 구분 없이 자유롭게 아무 제약도
받지 않고 참가하고픈 이들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자유로운 무대. 그들의 ‘인디 예술’은 경직된 사회에 새로운 분출구를 원했던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오는 23일부터 30일까지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제19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홍은지 · 오성화 · 박해성(좌로부터)  운영위원.

그렇게 그들은 대학로에서, 홍대 앞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그러나 대학로도, 홍대 앞도 점점 상업예술이 판을 치고, 자본의 거리가 되어 갔다. 그 때 아무도 예상 못했던 공간이 나왔다. 축구장으로만 알고 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 이제 이 곳은 축구장, 콘서트장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독립예술가들의 활동 공간이 되어간다.

화장실은 콘서트홀로, 스카이박스는 연극 무대로, 관중석은 무용 공연장으로 바뀐다. 7월 말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예술가들의 해방구로 변신한다.

올해로 19회째를 맞이하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매일매일이 고비’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과정은 정말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페스티벌을 이끄는 이들은 ‘자기 작품을 선보이기를 원하는 예술가들이 있는 한 계속 가자’는 생각으로 계속 전진했고 그렇게 전통을 만들어갔다.

‘자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예술가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길을 알기 위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운영위원인 박해성, 오성화, 홍은지씨와 이야기를 나누어 봤다.
진지하게 그간의 경과와 소회를 말하다가도 순간순간 재치있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이들에게 자유의 기운, 그리고 ‘축제 공동체’를 향해가는 희망이 느껴졌다. 이들이 전하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무모함’과 ‘자유’ 속으로 지금 들어가보자.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어떤 행사인지 소개를 부탁한다

▲오성화/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축제감독

오성화(이하 ‘오’) : 1998년 당시 기존의 틀에 막혀 작품을 발표할 길이 없던 20대의 젊은 예술가들이 틀을 깨고 장르 구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작품을 드러내는 판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1998년에 시작한 ‘독립예술제’가 시초다.

권위적인 순수예술, 상업적인 대중문화로 양분된 것을 벗어나 내 목소리를 내가 직접 담을 그릇을 만들어 자신이 주체가 되는 축제로 자리잡아갔고 2002년부터 국제 교류를 시작하면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되어갔다.

그간 홍대 문화와 연계해하다가 2015년부터 전문 체육시설인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옮기면서 고정 포맷을 벗어나 예술가들이 만나고 협력하고 연대하며 작품에 관해 새롭게 사고할 수 있는 축제의 장소로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박해성(이하 ‘박’) : 공공재로 만들어진 거대 시설이잖나. 축구장에서 축구 경기 있는 날이 1년에 40일 정도고 나머지는 콘서트 등으로 활용을 하는데 그 공공기관에서, 그리고 시민의 소유 공간이기에 예술가들이 마음 편하게 작품 활동하고 작품을 발표하는 게 좋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 :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유일하게 우리를 선택한거지(웃음).

올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홍은지/ 연극(다원)연출,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운영위원, 서울프린지페스티벌 1회 참가자, 연극 <자유가 우리를 의심케 하리라>연출.

홍은지(이하 ‘홍’) : 그간 홍대를 거점으로 축제가 열렸는데 홍대가 이전의 홍대가 아니다. 거리도 예술도 점점 상업화가 되고 건물을 놓고 갑질과 싸움이 이어지고 문화 예술 활동을 하기에 점점 적합한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땅값은 오르고, 갈등은 심하고,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이런 상태에서 새롭게 ‘프린지스러운’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고민하다 과감하게 경기장에서 해보기로 한 것이다.

연극이나 무용 공연이라면 극장이나 공연장 중심으로만 진행됐는데 경기장 스카이박스, 그라운드 잔디, 관중석 계단에서 한다고 생각해보라. 화장실 안의 울림을 이용한 어쿠스틱 음악 공연, 남자 화장실의 센서를 이용한 연주 등 새로운 대안 공간에서 펼쳐지는, 상상만 했던 공연들이 관객들에게 선사된다. 경기장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특색있는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홍은지씨는 1회 페스티벌 당시 참여한 것으로 알고있다. 1회 대회의 추억을 들어볼 수 있을까?
: 아마도 1회 때 어땠다는 말보다는 그 당시의 사회를 돌이키며 축제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그때는 정말 경직된 사회였다. 거리에서 뭘 한다고 하면 ‘투쟁’하는 시위 정도외에는 없었지 않았나. 뭔가를 분출할 수 있는 게 없었다. 4년 뒤 2002년 월드컵 때 사람들이 무시무시하게 거리에 나와서 응원을 했는데 정말 이전까진 이런 일이 거의 전무했다. 뭔가 분출하고 싶었던 게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 당시, 지금 말로 하면 ‘루저’라고 생각하고 있던 20명 정도의 예술가들이 술집에 모였는데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말 나온 김에 한 번 우리가 만들어 보자”고 한 것이 지금의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다. 20명의 생각이 삽시간에 1천명 정도가 되고 이들이 힘을 실었다.

초기의 기억은 페스티벌이라고 해놓고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1회), 예술의 전당(2회) 거리에 우리가 진을 치고 ‘진상짓’을 했었다. 거리에서 파전 부쳐먹고 맨날 싸우고...(웃음). 그 때 우리는 다 어렸다. 뭐가 그리 진지했는지 모르겠다. 세기말의 분위기도 한 몫 한 것 같고. 그렇게 진행하다보니 민간 축제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민간 예술 축제가 전무하지 않나. 자율적으로 참가하고 싶은 이들이 다 참여할 수 있는 민간 축제. 이를 이어가야한다고 한 것이 지금까지 계속된 것 같다.

19회를 치르면서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다. 가장큰 고비가 있었다면?
: 매일매일이 고비였던 것 같다. 갑자기 하루에 1억 정도의 돈이 날아간 적이 있고 협찬사가 메일 한 통으로 일방적으로 협찬을 취소한다고 통보한 적도 있었고 성과물을 카피하는 경우가 나오기도 했고 ‘프린지’라는 브랜드를 사용했다고 상표권을 놓고 싸울 뻔한 일도 있었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조직의 위기도 생기고, 엄청 많았다. 서울프린지가 새로운 창조를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일일이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갔다.

이 모든 것들이 정말 ‘이제는 그만해야겠다’라고 느낄 만큼의 어려움이었는데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무모함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답을 못 찾아서 그만둘지언정 외부의 일로 그만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여력이 없다는 게 정확한 것 같다. 계속 하자. 예술계에서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전제만 있다면 그냥 가는 거다 생각했다. 여러 압박이 있었지만 내가 부족해도 예술계에서 나를 인정하고 받아주고 환영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가자는 무모함을 실천한 것 같다.

만약 우리가 경영에 중점을 뒀거나 ‘예술을 이끌어야겠다’는 지향점을 뒀다면 정말 못했을 것이다. 그냥 가고 있는 거다. 모든 예술가들이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는 순간이 온다면 그 때 페스티벌이 없어지지 않을까?(웃음)

▲박해성/ 연극 연출가, 상상만발극장 극작/연출,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운영위원,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프로그래머, 작품활동: 연극 <자유가 우리를 의심케 하리라>, <유사유감>, <믿음의 기원 1>, <비상사태>,<천 개의 눈>, <영원한 너>, <아이에게 말하세요 – 가자지구를 위한 연극> 등 연출.

: 처음에는 지금보다 더 경직된 사회에서 분출구를 찾지 못한 이들의 열정이 있었는데 계속 하다보니 신진 작가들의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기도 했고, 젊은 창작자들의 경우는 경쟁의 부담 없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창고가 되어 갔다. 그렇게 바뀌어간다. 당대의 청년 예술이 변하듯이 서울프린지도 해마다 변해가는 모습이 이어진 것 같다. 그 힘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자유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하나의 ‘틀’로 고정될 우려가 있다. 일종의 매너리즘도 생길 것 같고.
: 그런 생각 하던 차에 다행히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하게 됐지(웃음).
: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조직에서도 이 부분을 상당히 신경쓰고 있다. 그래서 매해 조금이라도 고정된 부분이 있다면 바꾸려고 하고 있다. 아마 이 부분은 서울프린지가 계속 해결해야할 숙제인 것 같다.

7월 23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데 각자 기대감이 상당히 클 것 같다
: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데는 여러 위치의 사람들이 있다. 작품을 준비하는 예술가, 이를 구성하는 기획자, 행사 진행자. 관리 스탭, 그리고 집단 지성에 기반해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프로그래머 등 다양하다. 이들이 ‘모두 함께 만드는 페스티벌’이라는 느낌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고민이 많았는데 올해는 가능성이 보이는 듯하다.

어느 위치에 있던 ‘우리의 축제’라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이 원동력이 된다. 그렇게 ‘축제 공동체’가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그렇게 서로가 공감을 느끼고 어느 위치에 있던 ‘성과가 있어 참 다행이다’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그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 매해마다 새로운 관객이 오고 새로운 콜렉션도 나온다. 그러니 올해는 어떤 새로운 것이 나올까하는 기대감이 든다. 그동안 같은 모습으로 나온 것이 없었다. 정말 올해는 얼마나 새로울까하는 기대감밖에 없다. 올해 드디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모든 일정을 하게 되는데 점점 더 장악을 하려고 한다(웃음). 경기장을 계속 장악하면서 ‘왜 경기장에서 하지?’라는 의문을 '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경기장에서 즐기는 축제지’라는 생각으로 바꾸게 만들거다. 올해가 그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 매년 바뀐다는 것은 매년 좌절한다는 뜻이기도 하다(웃음).

: 그렇겠네. 새로운 좌절, 새로운 사건 사고(웃음).

: 페스티벌에 여러 번 참여했던 사람들이 “여름하면 서울프린지지”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고 폐막식이 되면 불어오는 가을 바람을 맞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시원하면서도 쓸쓸한, 복잡미묘한 감정을 이들은 기억하고있다. 아마도 그 감정을 가지고, ‘여름하면 서울프린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들만의 성장기를 써왔던 것 같다.

혹시 기자님은 상암 경기장에 온 적이 있는가? (“축구보러 두 번 정도 왔다”고 하자) 결국 축구잖나. 경기장에 가면 축구를 보거나 아니면 부대시설을 이용하는데 올해는 시각적인 공간 구성들의 시원한 부분들이 있다. 이를 그대로 말하면 스포일러고...(웃음). 축구장의 공간이 어떻게 예술 공간으로 변하는지, 지난해에는 일정 부분만 보여줬지만 올해는 모두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의 공간과 서울프린지 기간 동안의 공간의 차이. 서울프린지에 가면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해서 예술가는 물론 관객들도 ‘아, 여름하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

한 번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00다!’
(일동) 그건 관객 여러분께 물어봤으면 좋겠다. 관객들이 보고 각자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 더 좋고 우리도 상당히 궁금한 부분이다. 이번 페스티벌을 즐길 관객들에게 우리가 한 번 이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오는 23(토)일부터 30(토)일까지 서울 마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8일간 열린다. 22일(금)에는 전야제로 축제참가자들이 벌이는 거리퍼레이드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