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창작뮤지컬 <페스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창작뮤지컬 <페스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에게.
  •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6.07.2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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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뮤지컬 ‘페스트“를 봤습니다. 뮤지컬로서의 평가는 일단 유보합니다. 작품의 완성도면에서도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이 뮤지컬을 집중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당신의 소설 덕분에 그렇고, 서태지의 음악 덕분입니다. 당신과 서태지는 만난 적도 없을텐데, 두 사람 사이의 작품적 교집합은 확실합니다. 누가 까뮈와 서태지를 결합시키자고 했을까요?

그 사람이 궁금해집니다. 그 사람을 존경합니다. 서태지음악의 가사와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면서, 당신의 작품 페스트를 잘 연결했다고 생각됩니다. ‘아이디어’가 ‘아이러니’를 만들어냈다고나 할까요?

이 뮤지컬의 대한 평가는 극과 극입니다. 한국의 뮤지컬팬과 특히 이 뮤지컬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팬들은 이 작품을 비판합니다. 반면 서태지 음악에 무게중심을 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의 뮤지컬넘버가 이 작품을 계기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오케스트라, 록밴드, EDM이 뮤지컬넘버로서 이미 무척 훌륭하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습니다. 서태지음악은 독특한 개성을 지닌 뮤지컬넘버였다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슴이 아픕니다. 이 뮤지컬의 내용에 집중하게 되는 건, 지금 세계가 처한 상황에서 그렇고,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가 ‘오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죠. 뮤지컬을 보면서, 몇 가지 시점(시대)으로 마구 오가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2016년)을 중심으로해서, 과거와 미래가 넘나들게 됩니다.

과거라 함은, 소설 ‘페스트’가 발표된 1947년과 서태지음악이 한국 사회에 시대적 메시지가 된 1993년입니다. 뮤지컬 ‘페스트’에선 에 전세계에서 발발한 동시다발적 테러 이후, 2017년에 세계는 하나의 '공화국'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2028년에는 사회통제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죠. 기억이 통제되고, 욕망이 통제됩니다.

공화국사람들은 ‘국가와 시스템의 통제 하에서’ 어떤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 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페스트’가 발발하면서, 세계는 또 다른 재앙을 직면하게 됩니다.

당신의 소설 속의 ‘페스트’는, 지금 이 현실 속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테러와 사드, 메르스와 지카바이러스가 바로 ‘페스트’인 셈이죠. 그리고 이런 것을 지켜내는데 있어서, 국가와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잘 알고 있는데, 오직 국가와 시스템에 관련된 사람들만이 그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하려 합니다. 때로는 미화하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이미 소설 속에서 써 놓은 그대로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사회의 비극은 이미 시작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그랬고, 어쩌면 서태지도 일찍이 그런 말을 한 것 같군요. 비극을 비극으로만 여기지 말라구요. 당신의 ‘페스트’가 세계대전 후 정서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다수에게 의미가 있었다면, 이제 당신의 소설과 서태지의 음악이 결합된 창작뮤지컬 ‘페스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땅에 닥칠 위기를 우리 잘 견뎌내자” “힘든 시간을 행복한 한 순간으로 인식하는 게, 그게 진정한 행복이란다.”

이 뮤지컬을 보면서 ‘기대’라는 명사와 ‘기대다’라는 동사가 겹쳐집니다. ‘국가와 시스템’에  기대하지 말고, ‘개인과 스토리’에 기대라고 말합니다. 뮤지컬 속의 식물학자 리유 - 뮤지컬에는 여성입니다.-가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자아를 만들어가는 그 이야기가 내겐 참 절절했습니다.

나는 서태지세대가 아닙니다. 서태지 이전 세대였습니다. 사실 서태지가  활동했을 당시, 그 노랫말이 내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십년이 더 지난 지금, 이 노래말이 이렇게 내게 파고들 줄 몰랐습니다. 이 노래가 내게 지금 위안과 희망이 될 줄 몰랐습니다. 이런 현실이 무척 안타깝지만요.

당신의 소설 ‘페스트’와 함께, 서태지의 “죽음의 늪”이 함께 폐부에 파고들고 있습니다. “난 예전에 꿈꾸던 작은 소망하나가 있어 / 네 두 팔에 안겨서 내 마음을 전해주려 했었어 / 벗어나려 해도 이젠 소용없어 늦어버린거야. / 다가오는 것은 지저분한 것들 피하진 않겠어.“

기대할 것이 없는 세상에, 나는 이렇게 기대고 있습니다. 카뮈에 기대고, 태지에게 기대고, 더불어서 ‘미완의 뮤지컬’ 페스트에 불안하게  기대고 있습니다.

* 창작뮤지컬 “페스트” (~ 2016. 9. 30.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