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강수진과 한국발레의 미래-오네긴(ONEGIN)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강수진과 한국발레의 미래-오네긴(ONEGIN)
  •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한국예술교육학회장
  • 승인 2016.07.28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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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성신여대 교수/한국예술교육학회장

일요일 아침 펼쳐 본 신문에는 현역 은퇴를 선언한 발레리나 강수진의 7월 22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가진 <오네긴> 고별무대 기사가 크게 실려 있었다.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 강수진은 명실상부한 한국발레의 아이콘이다. 그녀만큼 미디어의 세례를 많이 받았던 발레인은 찾기 힘들다. 데뷔에서 은퇴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열렬하게 주목받는 경우는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다.

한 명의 예술가를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환경 속에서 마지막까지 빛날 수 있었던 것은 강수진의 개인적인 복이면서 동시에 미래에 펼쳐질 한국발레에 대한 축복이자 상징적인 선례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봇물 터지듯 들려오는 해외진출 한국인 무용수들의 성공적인 행로는 곧 도래할 한국발레의 비상을 예견하는 듯해서 뿌듯하다.

강수진은 1986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군무 단원이 되었다. 나는 당시 국립발레단의 4년차 프리마 발레리나였다. 대학을 졸업한 1983년에 단원이 되었고, 1984년 <백조의 호수>전막으로 주역 데뷔를 했으며, 1986년 아시안 게임 기념 창작발레<춘향의 사랑>, 1987년 4월<노틀담의 꼽추> 초연 후 1987년 말이 되어서야 영국유학을 갔다. 1988년 전까지는 일반인의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기에, 외국의 발레비디오를 섭렵한 것 외에는 해외경험이 전무했다.

▲ <오네긴> 공연 후 단원들과 관객들의 박수를 받고 있는 강수진 (사진제공=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임성남 단장은 내가 해외콩쿠르에 나가기를 원했으나 몇 개월 차이로 나이 제한에 걸려 나가지 못하게 되어 무척 아쉬워하셨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영재교육이 자리 잡기 전이라 대학졸업 후 발레단에 가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반면 어려서부터 혹독하게 훈련해 온 무용수들의 무대수명이 의외로 짧다는 것은 고려해봐야 한다. 나는 아직도 간간이 무대에 서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영국유학 후 돌아와서 다시 국립발레단 주역으로 활동하다가 1992년 대학에 자리 잡았다. 강수진과 한 무대에 선 것은 1997년 <노틀담의 꼽추> 재공연이었다. 내가 초연할 때 맡았던 에스메랄다 역을 강수진이 맡고 나는 에스메랄다의 어머니 아그네스 역을 맡게 되었다. 강수진은 짧은 일정 때문에 나의 초연(1987) 비디오를 미리 보고 순서를 외워서 한국에 왔었다. 늘 허리에 털실로 짠 쇼올을 감고, 발목 워머를 꼭 끼고 연습하던 강수진의 침착하며 조용한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 강수진의 마지막 공연 <오네긴> (사진제공=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마흔에 두 번째 유학을 결심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 문화와 발레에 경도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유학시절부터 러시아 정교를 믿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1999년부터 러시아에 살면서 푸쉬킨 부부와 아이들이 살았던 집에 여러 번 가보았다. 방마다 다른 색 벽지로 치장된 푸쉬킨의 집은 이제 고풍스러운 박물관이 되어 많은 방문객에게 생생한 당시의 느낌을 전한다.

푸쉬킨의 여러 문학작품은 발레와도 친숙하다. 1980년대 마르시아 하이데가 추었던 <오네긴>을 비디오로 본 적이 있는데 춤에 집중하느라 무대배경이 러시아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러시아 유학을 한 후 강수진의 <오네긴>을 보면서 아! <오네긴>이 러시아 이야기였구나 하는 뒤늦은 자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는 2014년 러시아에서 러시아무용수들이 추는 <오네긴>을 보게 되었다. 당연히 감동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서 활동한 한국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대표작이 영국 출신 안무가 존 크랑코가 안무한 러시아 대문호 푸쉬킨의 작품 <오네긴>이라는 것은 여러 면으로 의미가 있다. 음악 또한 챠이코프스키의 다양한 음악들을 편곡한 것으로 마치 <오네긴>을 위해 작곡되었다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슈튜트가르트 발레단의 <오네긴>을 마지막 무대로 현역에서 은퇴한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사진제공=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이렇듯 발레(BALLET)라는 예술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의 용광로 안에 섞여 전혀 새로운 형태와 빛깔, 그리고 향기를 지닌 보석으로 제련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알렉산드르 푸쉬킨이 <예브게니 오네긴>을 통해 그리고 싶었던 것은 러시아의 미래였을까? 강수진이 <오네긴>을 마지막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역시 미래를 바라보고 싶었을까? 사랑했기에 미련은 남을지언정 현재의 나를 직시하고 단호하게 과거의 나와 결별을 고하는 여주인공 타치아나, 그리고 강수진의 모습에서 한국발레의 밝은 미래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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