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재동 화백/울주세계산악영화제 추진위원장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사는 의미"
[인터뷰] 박재동 화백/울주세계산악영화제 추진위원장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사는 의미"
  • 인터뷰·정리 이은영 편집국장/임동현 기자
  • 승인 2016.07.2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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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세계산악영화제, 일반인 주민들도 참여하는 영화제로 도약할 것...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정"
▲ 박재동 화백

배트맨 코스프레를 하고 갑자기 나타나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대학을 만들어라!"라고 말하는 남자. 시골 주민들에게 카메라를 쥐어주고 어린이가 직접 영화제를 만들고 아줌마가 직접 영화를 만들게하려는 꿈을 꾸는 남자. "축제, 그냥 보고 즐기면 되지"라면서 모든 이들이 부담없이 즐겁게 보내기를 바라는 남자. 항상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이루는 중이라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 '머리카락 하얀' 남자의 이름은 박재동이다. 
 
박재동 화백. 그의 이름 뒤에는 이제는 다양한 직함이 붙어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추진위원장, 부천국제만화축제 운영위원장, 여기에 경기도 '꿈의 학교' 운영위원장. 그러나 그 어느 직함도 '인간 박재동'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이 벅찰 만도 한데 그는 이 모든 일을 한결같은 생각으로 하고 있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꿈을 이루고 싶다"
 
그 바쁜 시간을 쪼개 본지와 만남을 가진 박재동 화백은 모두가 만드는 영화제, 세계의 만화인과 산악인이 만나는 진정한 축제, 주민들이 만드는 영화 상영, 청소년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활동 등을 이야기하고 동시에 과거 우리를 즐겁게 했던 선배 만화가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아이들과 교감하고 마을 주민들과 교감하고,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 기자와도 교감하는 그의 모습에 어느덧 친근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간 박재동'은 친근하게 우리를 영화의 세계, 만화의 세계, 그리고 꿈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항상 꿈을 꾸기에, 그리고 그 꿈을 이루고픈 마음이 있기에, 청소년의 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길을 계속 가고 있는 박재동의 이야기. 그의 넓은 마음을 다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글이지만 그래도 그의 노력과 따뜻한 마음이 잘 전달되기를 빌며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 박재동 화백/울주세계산악영화제 추진위원장

지난해 프리페스티벌에 이어 올해 첫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열린다. 이 영화제의 특색이 있다면
 
울주는 '모아놓는 영화제'가 아닌 '만드는 영화제'를 꾸미려고 한다. 이미 만들어진 영화를 상영하는 것을 떠나 어린이들, 청소년들, 울주 시민들, 일반인들이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를 만드는 방식으로 만들려한다. 이를 위해 아이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미디어교육을 하는 워크숍을 가졌고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올해의 경우는 초등학생 명예추진위원 2명을 선발해 이들이 직접 영화제 추진을 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린이들이 조직위원이 되는 것이다.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맡기면 가장 잘한다. 그렇게 누구나 같이 만드는 영화제를 지향하고자 한다.
 
실제로 울주에는 '아줌마 영화서클'이 있다. 올해는 이미 정해졌지만 내년에 같이하자고 제안했더니 무척 좋아하더라. 내년엔 이분들이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되고 영화제를 만든다. 5명 정도 참여하는 데 이분들이 영화를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축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더 늘어날 수도 있고 그대로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가는 거다. 그렇게 참여하고 축제를 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청소년이 참여하고, 울주 시민들이 참여하고, 일반인이 참여하고, 산악인도 참여할 것이다. 울주라는 곳이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일반인들이 찾기에는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기도 한데 이 영화제를 통해 일반인들도 영화에 참여하는 기회를 만들어 재미있게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를 이끄는 축제가 되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또 산악영화제이다보니 산 이야기를 안할 수 없는데 산악인들이 울주의 암벽등반 시설이 세계 최고라고 칭찬했다. 암벽등반 대회를 열 예정이고 다양한 행사도 마련할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 세계적인 산악인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온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세계 최초로 홀로 히말라야를 등정하고 고비사막을 횡단했다고 한다. 사실 혼자 산을 오르고 사막을 횡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등정을 할 때마다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왜 가야하지?'라고 혼자 물으면서. 그럴 때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게 나야'였다. 산악인들에게는 전설이 되고 있는 멋진 인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강해보일 것 같지만 실제로 글도 쓰고 시도 쓰고 감성이 풍부하다고 한다. 이번 메스너 방한을 계기로 세계의 산악인을 기리는 것도 만들려한다.

▲ 인터뷰에 응하는 박재동 화백

 올해는 경쟁부문이 신설됐고 지난해보다 상영작이 두 배나 늘었다고 한다.
 

아마도 기회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영화제도 많아지고 능력있는 영화인도 많지만 정작 이들이 영화를 내세울 기회는 많지가 않다. 이 영화제가 그들에게 기회가 된 셈이다. 다른 곳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해외를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하신 것 같은데
 
이탈리아 트랜토산악영화제는 역사가 오래됐다. 영화를 즐기면서도 산을 즐길 수 있고 영화인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여기는 도시 골목마다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 곳이 설치되어 있고 일반 시민 누구나 올라갈 수 있다. 그리스 크레타섬의 올리브농장편도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그리고 네팔이 있는데 이곳은 해발 2천 미터가 되지 않으면 산 취급을 못 받는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영화가 다 산악영화인 셈이지(웃음). 그런데 이곳은 돈이 없고 지진까지 나서 무척 어렵다. 이곳에서 우리 돈 2백만원이면 극장용 영화를 한 편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원을 한다면 영화를 만들 수 있고 우리의 도움으로 아이들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 영화들을 조그만 시골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충분히 행복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 제작 교육 프로그램 ‘UMFF영화교실이 7월 25일(월)부터 8월 3일(수)까지 총 8회에 걸쳐 시나리오 작업부터 촬영∙편집까지 전과정에 대한 교육과 실습을 제공한다. 완성된 영화는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상영된다.

그런데 울주군만이 아닌 문경시에서도 산악영화제를 개최한다고 한다 
 

여러 군데에서 하면 좋지. 백개가 더 있어도 좋다. 울주가 '국가대표 산악영화제'로 불릴 필요도 없다. 지금 울주 영화제는 국가 행사가 아니라 울주군이 주최하고 있는데 지역의 특성에 맞는 영화제가 계속 나온다는 것은 정말 환영해야하는 일이다. 우리도 나름대로 특성을 만든다고 텐트를 쫙 깔아서 준비하려고 했는데 장소 문제로 하지 못한 게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울주군수와 나는 참 잘 맞는 것 같다. 둘 다 시쓰는 것 좋아하고 실제로 영화제를 가지고 시를 쓴 적도 있고 같이 노래부르는 것도 좋아하고(웃음). 아무튼 그렇게 생각이 맞고 잘 도와주기에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올해 울주를 찾는 산악인 라인홀드 메스너와 신장열 울주군수 (사진제공=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지난해 울주산악영화제 추진위원장을 맡는다고 했을 때 조금은 의아해했던 이들도 많았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의미라 생각했다. 이번에 진행하는 부천만화축제도 어떻게 보면 단순한 생각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하다보니 언제부턴가 나의 책임이 많아지더라. 그러다보니 꿈이 계속 생기고 중간에 포기하는 게 싫어 집요하게 했다. 단지 '간판'으로 있는 건 아니라고 봤다. 나는 내가 꿈을 꾸면 그게 운명이 된다. 그렇기에 꼼꼼히 하려했고 내가 꿈꾸며 일하는 것이 즐겁다.
 
영화를 꿈꾸다보니 우리 영화제 사무국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사무국의 모든 것을 기록하자는 생각으로, 영화제의 실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다른 이들이 모르는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
 
한국만화를 이끌었던 분으로써 지금의 만화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지금 세계 만화 유통량이 우리가 2위다. 일본이 물론 만화에서는 압도적이지만 우리도 많이 발전해 교과서에도 만화가 나오고 만화진흥원이 생겼다. 그런데 불과 2,30년전만 해도 만화는 불량 취급을 당했다. 내가 만화방집 아들이었는데 마치 내가 죄인인 것처럼 생각해야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만화왕국의 왕자였던 거다(웃음).

▲ 박재동 화백의 그림

 사실 종이만화는 이미 하락했다. 프랑스나 미국은 종이만화가 지금도 탄탄하지만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이 들어서면서 웹툰이 대세가 웹툰이 됐고 종이만화는 다시 살릴 방법이 없다. 만화책도 시들하지 않나. 유통에서 이미 안 되는 것이다.
 
나를 정말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의 만화를 정말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런 면에서 부천만화축제는 이제 세계 만화가들이 다 모이는, 우리가 만화축제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산악영화제도 마찬가지, 세계의 산악인들이 모이는 영화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꿈이 있다.
 
만화의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글은 상상을 해야 하지만 만화는 이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되면 만화를 읽는 이는 미래형이 된다. 글을 읽으면 그저 현재에 머물지만 만화는 그림을 보고 상상을 하기에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미래형으로 바뀌게 된다.
 
예전에 우리나라 영웅캐릭터를 만든 1호로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김산호 선생의 <라이파이>가 생각난다. 박재동 화백이 <라이파이> 팬클럽 회장 아닌가 
 
그렇지. <라이파이>. 일본의 아톰이나 다른 히어로와는 달랐던 우리의 캐릭터였지. 그때는 워낙에 읽는 게 귀하기도 했고, 워낙 재미있었던 <라이파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때였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담겼고 우리 만화의 역사였다. 여주인공이 김산호 선생님 사모님과 굉장히 닮았다는 것도 알고(웃음), ‘라이파이’는 우리 만화사에 큰 업적인데 그 업적이 사라져간다는 점이 참 안타깝다.
 
과거 우리를 즐겁게 해줬던 만화가 선생님들에 대한 처우가 너무 없는 듯 하다
 
얼마 전 이상무 화백이 작고했잖나. 너무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런데 일본 같았으면 이런 작가는 운구가 서울시청을 한 바퀴 돌았다. 우리는 너무 조용했다. '독고탁'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우리에게 용기를 주신 분이 돌아가셨는데 그냥 잊혀졌다. 첫 애니메이션 <홍길동>을 만드셨던 신동헌 선생도 건강이 안 좋으신데 너무 조용하다. 처우가 없다.
 
과거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만화를 꿈꾸게 했던 분들이 이렇게 쓸쓸히 떠나가게 만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친구가 되 준 이들에게는 지금 아무도 없다. 지금이라도 이들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쓸쓸히 계시게하면 안 된다.

▲ 박재동 화백의 그림

 최근에는 또 경기도 '꿈의 학교' 운영위원장을 맡으셨다.
 
내가 제안을 했는데 이를 보고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운영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경기도에서 꿈의 학교가 150개교로 늘었다. 나는 인생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일이 잘 됐을 때 같이 기뻐해주고 부러워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더 신이 나고 열심히 하지, 내가 일이 잘 됐는데도 아무도 기뻐하지 않고 반기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친구와 함께라면 어려울 것이 없다.
 
학교에 모이는 이들은 공부를 같이 하든 노는 걸 같이 하든 통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친구가 되고 '저 아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고 그렇게 자기의 존재감을 만들어나간다. 그러다보면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모임의 경우 '호러 역사모임'이라고한다. 공포 모임인 건 맞는데 그 공포가 무엇이냐면 역사 속에 나오는 미스테리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 역사 속에 있는 미스테리들을 풀어내는 것이지. 아이들끼리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는다는 것이 정말 새로웠다. 어른의 눈에도 새롭다. 정말 새로운 세상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이들이 직접 대학을 만드는 것도 꿈꾸고 있다. 아이들이 자치적으로 꾸려가는 대학 말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영화 시나리오 중에 어느날 갑자기 어른들이 다 바보가 되고 아이들만이 멀쩡한 상황이 되는 내용이 있다. 그 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낼까? 그 생각이 지금 꿈의 학교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꿈의 학교 모임에서 '배트맨' 코스프레를 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아이들한테 받은 선물이다. 정말 소중하기에 꿈의 학교 모임에서 입고 나왔고 이번 부천만화축제에서도 배트맨 복장을 하고 나올거다(웃음). 축제장에서 보면 만화 주인공 코스프레를 하는 친구들이 오는데 그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나 자신도 이렇게 코스프레를 하는 이들이 많은지 놀라울 정도다. 어떤 점을 즐거워하는지 자세히 알고싶은 마음이 있다. 자유롭게 표현하는 그 모습이 정말 좋아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