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진가 조문호-정영신 부부 "아름다운 사진보다 편안한 사진이 더 좋아"
[인터뷰] 사진가 조문호-정영신 부부 "아름다운 사진보다 편안한 사진이 더 좋아"
  • 인터뷰·정리 이은영 편집국장/임동현 기자
  • 승인 2016.07.2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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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찍는 것이 다큐 사진, 소외 속 따뜻한 마음 담아내고파"

본지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많은 전문 예술인들이 직접 자신들의 현실을 기사로 쓰고 칼럼으로 쓰면서 독자들에게 문화의 현실을 알리고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이들이 자신들의 분야에 대해 심도있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문화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호기심을 갖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 중 독자를 사진의 매력 속으로 초대하고 때로는 사진계, 나아가서는 문화계에 대해 쓴소리를 내는 작가가 있다. 사진작가 조문호. 지난해 '청량리 588' 사진전으로 다시 주목을 받은 그는 칠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사진을 찍고,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는 후배의 사진들을 소개하며, 본지를 통해 문화계의 나아갈 길을 이야기해주는 예술인이다.

그의 옆에는 소설가에서 이제는 '장터사진 찍는 작가'로 더 잘 알려진 정영신 작가가 있다. 이들에게는 '내조'나 '외조'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그들은 같이 움직이고 같이 행동하며 같이 생각한다. 비록 '다름'은 존재하지만 그들은 그 '다름'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부부'에서 '동지'로 발전했다. 정영신 작가가 보여준 장터 사람들의 표정과 조문호 작가가 보여주는 성노동자들의 애환은 얼핏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하루하루를 따뜻한 마음으로 살려는, 우리들의 부모이자 할머니, 누나이자 여동생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그렇게 어느 여름날 오후, 본지는 부부를 만났다. 우리의 이야기는 '공식 인터뷰'라기보다는 편안한 대화의 시간이었고 '작품 세계'니 '미술계의 현실'을 논하는 시간이라기보다는 두 '예술 동지'의 인생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편안했기에 더더욱 좋은 이야기들이 나왔던 그날의 대화를 여기에 옮긴다.

▲ '찍사 본능!' 기자가 사진을 찍는 사이 조문호 작가가 카메라로 기자를 찍었다. 역시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조문호 작가는 어떻게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나

조문호(이하 '조')  : 최민식 선생의 작품을 보고 사진을 하게 됐다. 처음부터 내 촛점은 사람이었다. 작년에 다시 전시한 588 사진도, 그 당시 ‘동아미술제’공모전 주제가 직업인이었기에 접근한 것이다, 다행스럽게 상을 받아, 그 곳에 머물며 다시 찍게 된 것이다. 그 전시로 세상의 주목은 받았으나 그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다가 동강 댐에 반대하며 정선에 머물렀으나, 그 곳에 사는 두메산골 사람들을 찍기 위해 아예 눌러앉은 것이다(웃음)

정영신 작가는 본래 소설가로 알려졌고 '장터사진 찍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정영신(이하 '정) : 글을 쓰다가 풀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로 갔다. 장터는 열려있는 공간이라서 누구나 갈수 있다. 더구나 난 산골사람이다 보니 장터가 내가 놀던 시골마당처럼 편안했다. 장터에서 만난 노인들 얼굴속에서 그사람의 희노애락을 읽을수 있어 찾아다니게 된 계기가 지금은 장돌뱅이가 된 것이다. 1986년부터 시작해 얼마동안은 장터바닥에서 장터사람들과 장에 나오는 사람들과 놀았다. 그런데 내눈에 장터가 변화는 것이 보여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당시 장터는 우리일상과 똑같았다. 주위에서는 재미없는 작업을 한다며 핀잔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장터에 가면 고향에 두고온 당산나무가 보이고, 당산나무 평상에 앉아 긴 곰방대로 쌈지담배를 피우는 외동할매도 보였다. 땅바닥에 질펀하게 앉아 할매들과 놀다보면 고향에 온것처럼 내 정서와 딱 맞았다.

1986년부터 시작한 장터는 내 놀이마당이다. 지금 딱 30년째 장터를 다니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옛날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장터는 여전히 열린다. 다만 사람이 바뀌고 물건들이 바뀌었을 뿐이다. 요즘 들어 80년대 사진을 들여다보면 우리 문화사를 보는 것 같다. 왜 좀 더 디테일하게 작업하지 않았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5일장을 다 촬영해 뿌듯하다.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지만... 그래서 요즘은 여유있게 촬영하러 다닌다. 그 지역의 햇빛과 바람과 땅의 냄새를 담아보려고 한 장터에 오래 머물러 작업하는 편이다.

▲ 사진가 조문호 정영신 부부

지난해 수상자 자격 논란을 빚었던 최민식사진상이 올해는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문호 작가가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다.

조 : 조 : 제일 큰 문제는 그 상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심사하는 이들이 최민식선생의 사진을 우습게 보는 데 있다. 상도 최민식선생의 휴머니즘 정신을 계승하기보다, 우아한 예술사진에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지 것 끼리끼리 나누어 먹던 갑질을 재탕하다 결국 사단이 생긴 것이다. 심사가 공정하지 못한 것들이 하나 둘 밝혀졌으나 다들 묵묵부답이다. 상을 만든 ‘협상재단’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잘 못된 운영으로 문제가 제기되면, 공청회라도 열어 개선해 나가야 하는데, 그들의 입장을 고수하다 상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그런 무책임한 회사가 세상에 어디 있나? 심지어는 운영위원장과 협성재단 측의 밀약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혹도 사고 있다.

정 : 첫 회에 저희에게 작품을 내보라고 해서 냈는데 알고보니 이미 수상자가 정해져있었다. 우린 결국 들러리였던 것이다.

조문호 작가는 얼마 전 바이칼을 다녀오셨고 본지에 바이칼을 다녀온 글을 기고하기도 하셨다. 현재 그와 관련해 전시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 조문호 사진가

조 :  바이칼. 일단 기가 센 곳이라고 생각했다. 무속적인 신기가 느껴졌다(웃음). 여건이 된다면 아내와 다시 한 번 찾아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획전 진행에는 다소 차질이 있었다. 일정이 너무 촉박해 다이칼과 관련된 작품을 작가 당 한 두 점 밖에 제작하지 못한 억지춘향 격이 되었다. 그리고 가난한 작가들의 제작비를 여행경비로 전용하는데도 불만이 많았다. 다른 분들은 여유가 있어 여행 다닐 수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만한 여유가 없다.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사람에서 찾은 나는 바이칼에서 남자 알몸을 찍었는데, 지방이라는 이유로 그 것도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결국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전시는 했지만, 만약 표현의 자유에 제약을 받았다면 그냥 있지 않았을 것이다.

말씀대로라면 기획자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최근에도 조문호 작가가 기고한 글을 보면 다큐 작가들이 막노동을 해서 돈을 벌고 그를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작가들의 삶이 힘든 상황인데...

조 : 상은 그런 사람들에게 줘야한다. 어렵게 살면서 자기 스타일 추구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정 : 한국에서 소신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잖나. 제 주변에 아는 사람들도 막노동해서 작업하고 돈 모아지면 사진 찍는 이들이 많다. 소외된 사람들을 바라봐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잘 산다. 이는 제도로는 고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어느 정도 자신의 작품을 지키기위 해 막노동을 선택한 것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렵더라도 활동하는 이들을 돕고 싶다. 그래서 남편에게 소외된 곳으로 가라고 떠밀고 있다(웃음). 혼자가 안되면 같이 가서 할 것이다.

두 분의 사진을 보면 '인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물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정 : 장터는 열린 공간이기에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에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다 들어있다. 사람을 알고 싶으면 도서관 대신 배낭하나 메고 시골장터로 가 할머니와 얼굴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두꺼운 책에서 얻지 못한 지혜를 배울 것이란 생각이다.

조 : 전혀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을 정면으로 찍어보면 차이가 확연히 난다. 결국 상대와 얼마나 소통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것이다. 사람을 찍으려면 그 사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저 겉모습만 보고 찍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읽혀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찍히는 사람의 눈빛을 중시하며 정면사진을 많이 찍는다.

정영신 작가의 사진을 보면 따뜻한 느낌이 담긴 사진이 많다.

▲ 정영신 사진가/소설가

정: 장터사람들은 스스로 소외당한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갖고 사는 이들도 많다. 겉으로 보면 가난하고 소외된 듯 하지만, 몇 천원, 몇 만원을 벌기위해서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숭고함이 묻어있다. 장터에 나오는 사람들은 옛날 우리의 정서와 한을 갖고 있어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내는 그들의 모습자체가 따뜻하다.
경상도 장터에서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을 본적이 있다. 중풍걸린 남편을 리어카로 장터까지 데려와 장사하면서 온종일 남편을 보살폈다.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이고 친구를 불러와 어눌한 남편과 이야기를 시키면서도 손님이 오면 물건을 팔던 할머니 모습이 한동안 눈에서 떠나지 않더라. 노부부가 살아내는 삶을 보면서 많이 배우게 된다. 오히려 장터에 가면 내가 더 많이 배운다.

사진을 찍다보면 간혹 촬영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을텐데

정: 장터에 가면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내지 않는다. 장보러 온 사람처럼 온 장안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돈다. 친해지면 오후에 사진을 찍는다. 농사얘기부터 시작해 자식이야기 하다 보면 금새 친해진다. 그다음부터는 다 응해주는 편이다.

조 : 사람을 찍으려면 그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예전에 588 사진 찍을 때도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으나,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결국 나의 진정성을 읽고는 허물없이 촬영에 임해주더라.

조문호 작가가 이전에 한 인터뷰를 보니 "사진은 편하게 찍어라"라고 말했더라. 사실 말은 쉽지만 막상 편하게 찍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조 : 다들 근사하거나 예쁘게 찍으려 하지만, 그게 안 좋다. 그 사람의 개성과 마음이 읽혀져야 좋은 사진이다. 요즘은 인위적으로(예를들어 포토샵 등) 시선을 분산시키는 장애물을 쉽게 제거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자기가 말하려는 포인트만 확실하면 그대로 두어라, 나중에 그 배경이 역사적인 자료가 될 수도 있다. 다큐사진은 결국 정확한 기록이다.

정 : 요즘 뉴스도 너무 특종 위주로 가는 것 같은데 사진도 그런 것 같다. 있는 그대로 찍는 토대가 있어야할 것 같다.

두 분에게 있어 '카메라'란

정 : 내 친구다. 어디든 같이 갈 수 있어서 좋다. 종종 카메라를 놓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차표를 두 장 사거나 카메라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 정도로 친구다.

조 : (콤펙트 카메라를 꺼내며) 이 카메라로도 충분히 작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게 없어지면 정말 내 몸 하나가 없어진 것 같고 불안하다. 언제든 찍을 준비가 되어있는데, 비싼 카메라는 아니지만 내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부부'를 넘어 '예술적 동지'라는 느낌이 강하다.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다면

조 : 이해심이 많다. 정말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지(웃음)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도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웃음). 우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는 것은 밤낮으로 함께 다니며 쌓은 동지애가 힘이 된 것이다. 마누라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사진에 대해서는 서로 양보도 간섭도 하지 않는다. ("더 좋은 부분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 조(팀워크)가 너무 잘 맞는다. 아무리 어려워도 촬영가자면 반대하지 않는다. 어려운 형편에 전시를 하겠다면 한 사람은 말려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주변에서는 우리 내외를 불안하게 보지만, 우리는 오늘만 있지,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정 : 남편을 보면 집중을 잘한다. 작업에 온 정열을 바친다는 것이 느껴진다. 간혹 안좋은 쪽으로 정열을 바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웃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믿는다. 정말 어떤 일을 하던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모습이 멋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믿고 있고 많이 배운다. 그렇기에 터치를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내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5일장을 다 촬영한데는 남편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난 아직까지 운전을 못한다. 기차타고 버스타고 혼자 다녔으면 아마도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후배 사진가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조 : 간혹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답시고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말도 안 된다. 사진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하는 짓이다. 생태사진은 물론 풍경사진도 자연 그대로 찍어야 한다.

정 : 접근 방식이 다 다른 것 같다. 장터의 예를 들자면 종종 사람을 찍는 것이 아니라 풍경 찍듯이 그냥 찍고 인물을 찍어도 그냥 바쁘게 찍고 돌아가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무엇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돌아다니면서 찍기만 하는 것이다. 10분이라도 찍기 전에 미리 장에 대해 알고 어떤 인물을 찍어야할지를 생각해야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조 : 그림처럼 멋지고 예쁘게 찍어야겠다는 생각만 가져 그런 것이다.

현재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조 :내년이 민주항쟁 30주년이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내 사진을 구입하겠다고 했는데, 마지막 결제라인에서 보류되었다고 하더라. 행여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돈으로 할 일이 많은데... (웃음) 오는 9월에는 내가 칠순이라고 후배가 창원에서 전시를 열어 준다고 했으나, 전시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그리고 작업은 인사동을 기록해 왔으나, 최근 종로에서 몸을 팔며 생활하는 새터민들이 있다고 들어, 그들에게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 8월하순경에 80년후반에 찍어놓은 옛날장터사진집이 눈빛출판사에서 나온다. 사진집이 나오면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8월24일부터 개인전을 할 계획이다. 개인전을 마치면 시장 안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일을 시작하고 싶다. 시장이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그 지역만의 이야기가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살아있고, 사계절이 살아있는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다. 장돌뱅이로 시작했으니 평생 장돌뱅이로 남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일전에 조문호 작가가 "작품값을 비싸게 받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 것으로 아는데.

조 : 나는 내 사진이 많이 걸리고, 그 사진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통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 값만 비싸게 책정해 두고 팔리지 않으면 무슨 소용 있겠나? 난 아무 일을 안 해도 국가에서 20만원이나 나온다(웃음). 집이 오래되어 주저앉을까 걱정이지만, 정선에 마음 편히 지낼 곳도 있다. 기름 값 때문에 정선도 한 달에 한 두 번 밖에 못 가지만, 자연이 텃밭을 잘 보살펴주니 걱정할 것도 없고...(웃음)

정 : 인간성을 버리지 않고 산다는 것이 불가사의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다.

후세 작가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기 원하는지

조 : 그건 세월이 지나야 아는 것이고, 지금은 열심히 기록할 뿐이다. 이젠 사진 정리하기도 바쁜데,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다. (웃음).

정: 누가 평가를 해주는 것보다 우리 삶의 원천인 장터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 걱정이다. 우리부부가 다른 욕심은 부리지 않지만, 딱 한가지 하고 싶은 일은 있다. 정선 집터에 장터박물관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도 부질없는 것이려니 하지만 이런 바램이 오늘을 살게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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