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문화재]문화유산의 현장 속 “나 여기 왔다 간다.” … 이제 그만
[다시 보는 문화재]문화유산의 현장 속 “나 여기 왔다 간다.” … 이제 그만
  • 박희진 객원기자/한서대 전통문화연구소 선임 연구
  • 승인 2016.08.1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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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진 객원기자/한서대 전통문화연구소 선임 연구

2002년 문화재 연구자로서 꿈을 키우기 위해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문화재 보존과학 수업을 들으며 ‘반달리즘’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반달리즘(vandalism)은 문화유산이나 예술품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말한다.

‘반달’이라는 단어는 어색하게 다가왔어도 그 흔적들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했다. 또한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은 것이 독일 베를린을 비롯해 프랑스 파리 등 세계 유수의 도시에서 반달의 흔적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반달은 로마제국이 몰락하던 시기에 제도를 약탈했다고 알려진 게르만 반달족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반달족에서 이름을 딴 반달리즘은 18세기 말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호사스런 교회의 건축물과 조각상, 왕궁 등의 문화유산을 파손하는 행위를 가리켰다. 당시 공화국 군대는 기독교의 교단을 해체시키고 신자들의 우상을 파괴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러한 문화유산 파괴의 반달리즘이 18세기만의 이야기일까. 아니다. 낯선 도시의 과거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다. 오늘날 세계적 위협이 되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문화재 파괴 역시 대표적인 반달리즘이며, 휴가철 사진기 들고 온 가족이 찾아간 문화유산 현장에서도 반달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페인트칠 낙서로 훼손된 한양도성 성벽

일반에게 개방된 문화유산들은 그 장소가 이슈를 끌면서 늘어나는 방문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문화재 관심에 대한 열기가 계속돼 준다면 문화유산 보존의 정책에는 큰 힘이 되겠으나,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마음 또한 없지는 않다. 문화유산의 가치와 문화재 보존에 대한 시민의식이 동반되지 않은 일시적인 호기심은 문화유산 현장을 일개 휴양지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2014년 부끄러운 우리들의 모습이 여실히 고발된 적이 있었다. 600년 역사를 지닌 한양도성(漢陽都城, 사적 제10호)에 페인트 낙서가 여러 언론사에 의해 보도된 바 있었다. 이후 서울시는 문화재 훼손행위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면서 한양도성 전 구간의 성 돌을 조사해 페인트 낙서 및 락커 칠한 반달의 흔적들을 찾아 복원에 애썼다.

이제는 한양도성을 지키는 시민 가운데 일정 교육을 받은 이들 ‘시민순성관’을 지정하여 사전에 관리를 통해 훼손을 막고 더불어 홍보에도 앞장서고 있다. 모두의 관심과 노력으로 한양도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남한산성도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의 피서객들로 크게 몸살을 앓는다.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빼곡한 남한산성 도립공원 내 계곡에 텐트를 치고 취사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목격된다.

공원 대부분은 자연보전지구로 지정돼 있어 취사·야영·쓰레기 투기 등이 법으로 금지돼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공원 내에는 이 같은 위반사항에 대한 경고는 곳곳에 현수막에 걸려있어도 피서객들의 취사 행위 등은 줄지 않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문화유산을 함께 나누는 또 다른 시민의 제보가 절실하단 생각이 든다.  

▲ 반달리즘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숭례문 화재 사건

해외여행이 빈번해지자 이제는 외국까지 의식이 부족한 반달이 그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욕구가 크거나 사회적으로 직접 그것을 표현하지 못해 나타난다는 낙서의 표현. 심리학자들은 이 낙서의 표현을 사회 불만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꼭대기에도 우리의 한글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해외의 유명 관광지에 잘 그려지지도 않는 돌탑에까지 한글 낙서가 발견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싶다.

최근에는 인증 샷을 찍기 위해 부끄러운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관광객들이 있어 SNS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지난 6월, 이탈리아 두오모 성당에서 카메라가 장착된 무인기(드론)를 한국기업의 영상팀 직원 3명이 조정하다가 두오모 성당 꼭대기 첨탑 주변에서 서로 부딪혀 추락해 사고를 일으켜 큰 논란이 되었다. 한국인 여행객들이 날리는 카메라가 장착된 무인기(드론)은 두오모 성당에서 뿐만 아니라 뜨거운 태양을 피해 찾은 녹음의 국립공원에서도 드론을 띄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곳곳에 펼쳐져 있고 그 지역을 상징하는 장소로 유명세를 탄다. 교과서 속에서 배웠던 ‘반달’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문화유산에 낙서하는 것은 그 나라의 흔적들을 부셔 없애려던 반달에서 시작된다. 추억을 남기려는 낙서의 흔적은 곧 범죄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당장 내 가족의 즐거움이나 나만의 추억을 기억하는 무모한 행동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후세에 전달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문화시민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