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송해길', 그 곳엔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종로 '송해길', 그 곳엔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08.2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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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과 그들을 감싸는 이들이 있는 골목길의 모습에서 이미 '사람'을 느낀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수표로에서는 '송해길' 개통식이 열렸다. '송해길'은 이름 그대로 지금도 '전국노래자랑'의 사회를 보면서 '일요일의 남자'로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하고 있는 송해 선생을 기념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 길이 '송해길'로 이름지어진 이유는 실향민이던 송해 선생의 제2의 고향이 바로 이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종로구 낙원동에 '연예인 상록회'라는 사무실을 열고 수십년간 연예계의 '마당발'로 활동해왔다. 한마디로 송해 선생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길이다. 

▲ 송해길의 입구. 종로2가 육의전 빌딩 옆
▲ 송해길을 알리는 이정표

그간 대구에 '김광석길', 제주도 서귀포에 '이중섭길'이 생기기는 했지만 생존 문화인의 이름을 딴 길이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도 그랬기에 이번 '송해길'의 탄생이 더더욱 중요한 소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송해길은 종로 2가 육의전 빌딩에서 낙원상가 앞까지 약 240m 구간을 일컫는 말이다. 이곳은 사실 각종 식당과 노점상들이 몰려있고 간혹 허름한 옷을 입은 어르신들이 대낮부터 길가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목격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이 어떻게 '문화의 거리'가 될지는 아직은 모르지만 적어도 종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에 있는 곳 하나, '파고다극장'

육의전 빌딩이 옆에 있는 도로를 출발해 절반 정도 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왼편은 탑골공원 뒤쪽, 오른쪽은 종로 골목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곳에서 또 하나의 추억의 장소, 그리고 역사적인 장소를 만나게 된다. '파고다타운', '파고다 고시텔'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건물, 바로 구 파고다극장 건물이다.

▲ 구 파고다극장 건물. 기형도 시인이 시신으로 발견된 그 곳이다.

파고다극장은 한때 라이브 공연이 열렸던 곳으로 알려졌고 동시상영 영화관으로도 알려졌으며 이후 UIP 직배영화가 들어올 당시 그 영화들을 상영한 곳이기도 하고 소위 '동성애자'들이 모인다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바로 그곳에서 1989년 3월 7일 새벽, 한 남자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바로 시인 기형도였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인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기형도가 홀로 세상을 떠난 그 곳은 이제 탑골공원을 찾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파고다타운'과 고시원, 슈퍼마켓과 식당이 있는 건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그 골목에는 '이모님'들의 노점상이 있다. 어떤 안주든 5천원이면 먹을 수 있는 곳, 술에 취한 어르신들과 이모님의 수다가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 구 파고다극장 앞에 설치된 노점들. 어르신들의 친구이기도 하다.

닭똥집과 오뎅을 값싸게 팔던 노점상은 한때 종로3가 길가에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갑자기 사라지고 대신 파고다극장 앞 골목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그러면서 닭똥집을 좋아했던 젊은 손님들은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를 어르신들이 차지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소싯적 자랑을 하고 누군가는 술에 취해 돈이 없다고 우기기도 한다. '진상 손님'을 받아야하는 상황임에도 이모님들은 지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길에 있는 곳 둘 '우거지얼큰탕'

그곳을 지나가면 이제 낙원상가 간판이 보이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이 송해길의 끝이자 송해 선생이 수시로 드나드는 길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눈여겨 볼 곳은 송해 선생의 20년 단골이라는 '우거지얼큰탕' 집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소문난집 추어탕'이라는 낡은 간판이 붙었던 이곳은 최근 간판이 깔끔하게 바뀌었고 '송해 단골집'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아마 지난 5월 '송해길'이라는 이름이 정해지면서 간판을 같이 바꾸어준 듯하다. 이곳의 메뉴는 단 하나. 2천원에 파는 우거지국밥이다. 그전엔 1천5백원이었는데 이명박 정권 당시 5백원이 올라 2천원이 됐다.

▲ 송해길의 끝인 낙원상가 사거리
▲ 낙원상가 사거리에 있는 우거지얼큰탕집

2천원이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우거지에 두부, 여기에 국물은 소뼈로 만든 것이다. 자리에 앉으면 묻지도 않고 국밥과 깍두기가 나온다. 깍두기는 사실 빨간 것이 아니라 절인 무에 고춧가루를 대충 뿌린 듯하다. 그런데도 은근 맛있다. 점심 시간엔 자리가 정말 없다. 합석은 기본이다.

이곳에서 어르신들은 2천원에 국밥을 먹고 간혹 2천원을 더 주며 막걸리나 소주를 드시기도 한다. 국물이 필요하면 스스로 빈 그릇을 들고 솥에 있는 국물을 퍼가기도 한다. '셀프 리필'이 가능하다. 저녁 때 간혹 아주머니가 조그만 그릇에 국물과 건더기를 담아 부어주시곤 했는데 지금도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2천원짜리 우거지얼큰탕 한 그릇

'송해길'은 그리 긴 길이 아니다. 하지만 그 길에는 가난한 이들의 모습과 그들을 감싸안으려는 이들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다. '문화의 거리'가 되는 것도 좋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까지 뺏어가며 문화의 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어쩌면 송해 선생이 월남 후 외로움을 깨고 지금도 이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묻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족 : 이곳은 봄이 되면 벚꽃이 만발한다. 개인적으로는 봄에 개통식을 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