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미술계 위기' 모르는 이들에게 '끝장토론'을 기대하다니
[기자의 눈] '미술계 위기' 모르는 이들에게 '끝장토론'을 기대하다니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08.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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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 3차 토론회', 결국 '요식행위'로 막내렸다

지난 26일 서울역 문화역서울 284 RTO에서는 '제3차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미 두 차례나 토론회가 있었고 특히 지난 7월 2차 토론에서는 프랑스와 미국의 관계자를 초청해 그들의 예를 듣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이를 주최한 문화체육관광부는 '더 다양하고 폭넓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며 한 차례 더 토론회를 가졌다.

특히 토론회가 있기 전 문체부는 보도자료에서 "별도의 발제 없이 시간 제약없는 순수 자유토론으로 진행된다"고 밝혀 이른바 '끝장토론'을 할 것임을 밝혔다.

최근 위작 논란으로 인해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가 화두가 됐고 이를 막기위한 법제화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법보다 자율성을 살려야한다'는 여론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토론이 계속 진행되었기에 이날의 '끝장토론' 예고는 미술계의 변화에 대한 몸부림으로도 보였다. 토론회 직전 공식 토론 시간만 5시간을 공지한 계획안을 보기만 해도 기대감이 있었다.

▲ (왼쪽부터) 토론회 좌장을 맡은 심상용 동덕여대 교수,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김주삼 Art C&R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 소장, 김형걸 굿윌어드바이저리 대표

패널 진영도 다양했다. 2차 토론회에서도 나왔던 김미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이사. 최원근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 캐슬린 김 변호사를 비롯해 최윤석 서울옥션 이사. 김방은 예화랑 대표, 김주삼 Art C&R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 소장, 김형걸 굿윌어드바이저리 대표,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이윤희 미술평론가 등이 각계 대표로 나온 것이다. 화랑이, 옥션이, 감정사가, 그리고 각계 관계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할 지에 집중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날의 토론회는 변화의 몸부림은 커녕 '미술계의 위기'조차 인식하지 못한 패널들과 각계의 의견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외국 사례를 따라하기에 급급한 문체부의 모습만이 확인됐다. 화랑과 옥션의 겸업, 감정사 자격 요건 등 산재된 문제들이 있었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토론을 기대했지만 남은 것은 결국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 뿐이었다.

프랑스 제도 껍데기만 베낀 '미술품감정사제도'

이날 문체부가 내놓은 '미술품감정사제도'에 따르면 미술품감정사 응시자격을 관련 교육 24학점(360시간) 이상 이수한 자로 정하고 두 번의 시험을 치른 뒤 자격을 주기로 했다. 

단,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에서 5년 이상 업무에 종사하거나 등록된 화랑이나 허가받은 경매회사에서 관련 업무를 본 사람은 1차 시험을 면제하고 감정업무를 하려면 1년 이상의 실무 수습을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감정사들은 "짧은 교육을 이수한 자에게 모두 자격증을 준다면 전문성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프랑스의 제도를 '껍데기만' 베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자격을 얻으려면 적어도 7~10년의 경력이 있어야한다. 물론 자격만 얻어도 감정업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전문감정사가 되려면 교육을 더 받아야한다. 대학처럼 시험도 치고 논문도 써야한다. 그래야 비로소 '전문감정사'로 인정받게 된다. 이런 시스템이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기에 문제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체부는 유통 투명화를 위해 '화랑-경매-감정 겸업금지'를 내세웠다. 이에 대해서는 찬성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화랑의 옥션 겸업에 반발하고 있는 작가들은 이 부분에서는 환영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옥션 측은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했지만 '왜 한국에서만 문제가 되나?'라는 비판에는 '조심히 하겠다. 어차피 과도기라는 게 있는 법'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충분한 토론 필요하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이야기"

▲ 발언하는 최윤석 서울옥션 이사(오른쪽)와 김방은 예화랑 대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각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작가들은 처우의 문제점에 대해, 감정사들은 문체부의 감정사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작가들은 "이 토론회에 왜 작가는 초청되지 않았는가.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야하지 않느냐"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지금은 유통 투명화와 활성화를 이야기하는 자리다. 9월에 토론회를 할테니 그때 이야기를 해달라"며 작가들의 주장을 막았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신은향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장은 "토론회 전 작가들을 초청했는데 다 거절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충분한 토론이 더 필요하다'라는 말이 계속 나오자 신 과장은 참았던 말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법은 지난 2006년부터 나왔던 법안이다. 그때도 '조금만 있어보자', '충분히 토론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뤄지고 미뤄진 게 이제 10년이다"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정작 중요한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패널로 나온 이윤희 평론가는 시작할 무렵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난 뒤 말도 없이 사라졌고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시작 인사말을 제외하고는 토론 막바지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심상용 동덕여대 교수는 참가자들에게 "토론을 더 듣고 말씀하도록 하자. 지금은 패널 토론 시간이다"라며 패널들의 발언을 유도했지만 오히려 분위기만 '썰렁'해지는 기묘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토론을 원하는 참가자들의 발언권은 사라지고 정작 발언권을 가진 패널들은 침묵했으니 토론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썰렁한 패널들, 그들은 위기를 모른다

토론회를 취재하면서 느낀 답답함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은 미술계가 위기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미술계가 위기라고 말한다면 '지금이 뭐가 위기인데?'라고 반문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간 제한 없는 토론의 장'을 열었는데 침묵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날 패널들은 조금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도 하면서 미술계를 살리고픈 간절한 모습을 보여줬어야했고 상대의 이야기에 대한 반론도 하고 참가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없었다. 토론도, 논의도 없었다. 그저 '보여주기'로만 마쳤고 패널들의 표정은 '그냥 끝내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미술계에 대한 반응이 차가운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도, 감정사도, 평론가도 일반인들은 믿지 않는다. 관심을 가지려하지 않는다.

법제화를 하든 토론회를 하든 공청회를 하든 주목적은 바로 미술계의 자정 노력을 보여주면서 실망한 이들을 다시 돌려세워야하는 것이어야 하지만 지금 소위 미술계를 이끄는 이들은, 그리고 그 미술계를 다독거려야할 정부는 전혀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요식적인 '토론회'만 치르며 시간을 날리고 있다.

위기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지금 우리는 이렇다', '이것을 고치자'라고 한들 달라지는 건 무엇일까. 전문가라는 이들도 이처럼 무신경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과연 미술계의 부활은 가능한 걸까? 토론회를 마치면 어느 정도는 풀리는 부분이 있어야하는데 더욱 답답함만 안기는 이런 모습들이 한없이 슬프게 느껴진다. 안타깝지만 미술계, 정말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