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의 잘못된 무형문화재 보유자 심사, 반목으로 이어졌다"
"문화재청의 잘못된 무형문화재 보유자 심사, 반목으로 이어졌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09.06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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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예술 전승환경의 변화와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 "지금의 개방형 심사는 '나가수' 심사" 비판

'전통예술 전승환경의 변화와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 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지난 3월 '무형문화제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무형문화재법)'이 시행됐지만 문화재청의 태평무 보유자 인정 문제를 놓고 무용계가 크게 반발했고 결국 문화재청이 보유자 인정을 보류한 상황에서 이뤄진 이날 토론회는 현재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지정에 대한 문제점과 함께 또다른 논란을 차단할 수 있는 개선 방향을 놓고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다.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 나선 발제자와 토론자들

이종배 새누리당 의원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고려대 유영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허영호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손태도 서울시 문화재 전문위원,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지정토론자로는 이병옥 용인대 명예교수, 임학선 성균관대 석좌교수, 정재왈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 백현순 국립한국체대 교수, 김경희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최종덕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 등이 참여했다.

허용호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전통예술 전승의 환경이 변화됐다. 안으로는 원형 유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외부에서는 우리의 무형문화재 제도와는 거리가 있는 '유네스코 체제'를 참고해야하는 요구가 나왔다"면서 우리 문화 속성에 걸맞는 정책과 함께 협안을 맞출 수 있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무형문화재와 관련해 독자적인 법이 존재한 적이 없다. '문화재보호법'이 있었지만 그것은 유형문화재 중심의 법이었고 그 속에 무형문화재가 어쩡쩡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올해 무형문화재법이 나왔지만 '미완의 독립'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무형문화재법은 '무형문화재 영역의 확대와 분류 체계의 변화', '원형 유지 원칙에서 전형 유지 원칙으로', '무형문화재위원회 별도 설치', '국가긴급보호무형문화재 지정', '전수교육대학 선정', '보유자나 보유단체 없는 종목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한국무형문화재진흥센터 설치' 등의 새로운 정책을 담고 있다.

허 위원은 국가긴급보호무형문화재 제도와 전수교육대학 선정 등이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종목에 관심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을 인정했지만 현재에 나온 법만으로는 이들의 의미가 모호하고 공예나 미술 등 전통 기술 분야에만 치우쳐 있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뒤 "정부 주도의 관리 강화는 오히려 퇴보한 감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허 위원은 "정부의 관리 강화는 문화 복지로 가기 위한 한시적 조치라고 믿는다"고 말한 뒤 "법이 자리를 잡게 되면 '국가긴급무형문화재(긴급 보호 종목)-국가무형문화재(보호 관리 종목, 보유자 인정)-국가무형문화재(진흥 활용 종목, 보유자 인정 종목)-국가무형문화재(국민향유 국가무형문화재, 종목만 인정)'로 이어지는 순환 체계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을 주최한 이종배 새누리당 의원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손태도 서울시 문화재 전문위원은 "음악의 경우 유파가 다르면 사설도 다르고 그에 따른 음악도 다르다. 음악이 다르기에 유파를 최우선으로 해야함에도 문화재청은 2011년부터 유파를 없애기 시작했다. 유파를 없앤다는 건 전통을 없앤다는 것"며 유파를 인정해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판소리의 경우 유파를 없애지 말 것을 계속 문화재청에 요구했고 이의 신청을 받은 문화재청이 유파를 없애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2012년에 이를 어겼다고 말한 뒤 "지난 2002년 3월부터 2012년 초까지 10년 동안 아예 보유자를 지정하는 일을 하지 않아 2012년 초에는 원래 14명이던 보유자가 4명으로 줄어들었고 2012년 4월에 '수궁가'보유자를 지정해 5바탕에 5명이란 이상한 결과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유파를 없애서 1바탕에 1명의 보유자라는 방식을 기본 노선으로 하려 했다"며 문화재청이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손 위원은 "유파를 없애는 등의 발상은 사실상 그 자체의 전승력이 없는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를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처럼 오늘날에도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것으로 바라본다든지, 혹은 현시대의 예능들로 그 자체 경쟁력이 있는 것처럼 바라본다든지 하는 일종의 잘못 설정된 관점의 결과물"이라면서 "유파를 없앤다든지 하는 일은 당분간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일어난 태평무 보유자 인정 논란을 제시하면서 심사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보도에서 심사위원 명단의 사전유출, 제자가 스승을 심사하는 불합리한 심사방식 등을 문제로 지적했음에도 문화재청이 이를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심사를 강행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 공정성과 합리성 검토가 있어야하는데 문화재청이 소홀히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의 방식이 서열파괴 및 예도(禮道)를 파괴했으며 무형문화재의 근본 취지인 원형과 정통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밝힌 뒤 "인간문화재 선정 심사에 '리더십 평가'는 왜 나오며 '건강상태'를 들며 고령의 예술자를 배제시키는 것은 어떤 준거인지 모르겠다. 일회성 실기 실연으로 평가한다고 하는데 국무(國舞)를 콩쿠르 방식으로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라고 비판했다.

성 교수는 원형 혹은 전형과 정통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심사를 전면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 나선 발제자와 토론자들

이병옥 용인대 명예교수는 "단체종목의 보유자 인정을 꺼리고 보유자가 없거나 고령이어야 겨우 우선순위 예고를 하는 등 보유자 인정에 인색하다보니 보유자가 못된 전수조교들도 고령화가 되어가고 있다. 보유자가 죽어야 차례가 온다는 하소연이 저마다 터지고 있다"면서 "현행 보유자 인정 방식은 결국 살인법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개선 방안으로 20년이 넘은 전수조교를 보유자로 올리는 등의 '과도기적 조치', '명예보유자' 제도 활성화와 '원로보유자' 명칭, 보유자를 성격에 맞게 여러 분야를 인정, 전수조교를 '전승교수'로 명칭을 바꿔 위상을 올릴 것 등을 제시했다.

김경희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은 "종묘제례악이나 대취타, 문묘제례악 등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온 장르들은 모두 통합해 국립국악원이 전승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김 연구관은 유파 인정 문제에 대해서는 "유파는 장르별로 다른 상황에 있다고 생각한다. 시기별로 소리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어느 것이 원형인지 전형인지를 보아야하는 것도 문제고 어디까지 같은 유파로 볼 것인지도 문제"라고 밝혔다.

정재왈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는 무형문화재법에 쓰이는 '원형'과 '전형'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해석의 모호성이 다른 차원의 분란을 야기하게 하는 불씨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히고 태평무 보유자 논란은 결국 자격 요건과 관련해 '핵심 기, 예능' 혹은 '전형의 관점이 핵심 쟁점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임학선 성균관대 석좌교수는 "춤에는 덕과 가르침이 있는데 개방형 심사가 되면서 춤의 정신을 잃고 기능만 중시하는 심사가 나와 정통성과 원형성을 잃어가고 있다"면서 "이는 특정인을 뽑기 위한 오해를 낳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심사를 담당했던 백현순 국립한체대 교수는 "문화재청의 기준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우리 심사위원들은 기준에 맞게 공정하게 심사를 했다. 그렇게 지금의 심사가 문제가 있다면 심사를 하기 전에는 말이 없다가 심사 결과가 나오니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무엇이 잘못인지를 바로 집어냈어야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무조건 나이가 많다고 보유자로 인정하자는 것도 문제가 있다"면서 "심사가 잘못됐다, 기준이 잘못됐다를 비판하는 것도 좋지만 그에 대한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으면서 전체가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들이 할 일"이라고 밝혔다.

이날 토론의 참석자들은 현재의 개방형 심사를 '나가수(나는 가수다)식 심사'라고 비꼬면서 문화재청의 무책임이 결국 무용계 인사들끼리 반목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 동의했다.

최종덕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은 "누가 보유자가 되어도 이런 홍역은 치르게 되어있다. 지금은 제도적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는 시기"라면서 "오늘 이야기를 정책에 반영하게겠다. 정확히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누가 보유자가 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엘리트 위주인 게 사실이다. 이수자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그간 이수자 공연 연구시 지원을 거의 안했는데 이제 지원을 늘리고 보다 민주적인 운영을 하면서 고령의 예술가들을 어떻게 지원할 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해 당사자는 결국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전승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에 성기숙 교수가 "문화재청이 새롭게 가겠다고 악속한 만큼 그 약속을 믿고 있겠다"라고 말하면서 토론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