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매혹-로미오와 쥴리엣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매혹-로미오와 쥴리엣
  •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한국예술교육학회장
  • 승인 2016.09.0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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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한국예술교육학회장

최근 유니버설발레단은 53세의 발레리나 알렉산드라 페리를 초청해 10월 케네스 맥밀란 안무의 <로미오와 쥴리엣>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파트너는 아메리칸 발레씨어터 수석인 에르만 코르네호이다.

마사 클락 연출의 <쉐리>를 통해 알렉산드라 페리의 근황을 확인하고, 무척 반가워했던 터라 그녀의 공연이 더욱 기다려진다. 정식 은퇴는 이미 했지만 페리의 모습을 보기 원하는 관객들이 있는 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발레리노에 비하여 발레리나의 수명은 일반적으로 길다. 특히 호흡이 잘 맞는 발레리노의 지원을 받는 경우 발레리나의 무대 수명이 20년이나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마고트 폰테인의 경우가 그렇다. 해외에 진출해 성공한 발레리나가 발레리노에 비해 많은 것은 국내보다 외국의 발레리노 인력 풀이 질적 양적으로 우수하다는 이유도 무시할 수는 없다.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 가는 무용수들의 남다른 노력은 주변 환경, 운을 떠나서 그 자체만도 박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클래식무용수를 50세 넘어 하는 것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확실히 무리다. 마리우스 프티파가 후기에 천착했던 아카데믹한 고전주의는 너무나 엄격해서 기준을 채우지 못하는 것은 용납을 하지 않는다.

그럼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들은 뭐냐고 물을 수 있다. 가능한 방법은 있다. 드라마틱 발레 장르에서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얼마 전 은퇴선언을 한 강수진의 <오네긴>, 실비 기옘의 <마르그리뜨와 아르망> 등이다. 로미오와 쥴리엣도 연기력이 앞서야하는 드라마틱발레로 마고트 폰테인은 46세에 초연을 했다. 

▲ 로미오와 쥴리엣(누레예프와 마카로바,1973,photo by J.Walton)

셰익스피어 원작 <로미오와 쥴리엣>은 영화로 처음 만났다. 중학 시절 명동의 극장에서 본 영화에는 청초한 올리비아 헛시가 나왔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느낌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10대 시절의 위험하지만 진실된 열정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이 주고받는 감미로운 대사들을 잊을 수가 없다. 발레는 언어대신 춤으로 나타내야하므로 표현이 더 어렵기는 하지만 한편 더욱 효과적이기도 하다. 세르게예프, 마이요, 노이마이어 등 여러 안무가들이 안무를 하였으니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케네스 맥밀란 안무를 한 <로미오와 줄리엣>(1965)은 마고트 폰테인과 루돌프 누례예프가 초연을 했다. 맥밀란은 영국 로열발레단의 최초 자국 출신 예술감독 겸 안무가였다.

원래 캐스팅은 린 세이모어와 크리스토퍼 게일로 정해졌으나 폰테인과 누례예프의 유명세에 밀려 초연을 하진 못했다. 개인적으로 린 세이모어의 팬이라 아쉬운 대목이다. 린 세이모어에게는 순수하고 어린 유년의 감성이 온 몸과 표정에 담겨있기에 아마 그녀가 이 작품을 했더라면 더 어울렸을 것이다.

영국 옥스포드에 살면서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였다. 겨울에 작은 차를 타고 영국에서 페리로 프랑스에 건너가 스위스 국경을 지나 이탈리아 북부로 가는 계획을 세웠다. 처음간 곳이 베로나, 바로 가상의 줄리엣 무덤이 있는 곳이다.

대규모 오페라 공연도 자주 이루어지는 고풍스런 중세도시 베로나를 보면서 셰익스피어가 만들어 낸 소설 속의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우리 곁의 친구로 여기게끔, 환상을 일상으로 병치시킨 그들의 예술적 전통과 혁신적인 실천에 부러움을 넘어 시샘이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로미오와 쥴리엣과 같은 순수한 사랑이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적 인습 등 다양한 이유로 방해받거나 좌절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맥밀란의 안무 특징은 이상과 환상의 세계가 아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생생한 현실을 보여주기에 어느 순간 섬찟하게 된다. 이 가을, 로미오와 쥴리엣의 매혹적 사랑이 인간 내면의 광기와 폭력성에 의해 어떻게 스러지는지 조심스레 지켜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