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국립현대무용단의 2016 ‘아카이브 플랫폼’ 공연
[이근수의 무용평론] 국립현대무용단의 2016 ‘아카이브 플랫폼’ 공연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6.09.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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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국립현대무용단(단장 안애순)의 2016년 행보는 광폭이다. ‘이미 아직’(4월), ‘공일차원’(5월). ‘안무 LAB'(6월), ‘NATIVOS'(7월)에 이어 8월에도 두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인 ’예기치 않은(Unforseen)' 퍼포먼스(8.17~10.23)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보여준 ‘아카이브 플랫폼’(Archive Platform, 8.27~28)공연이 그것이다. 

‘아카이브 플랫폼’은 우리나라 현대무용의 뿌리를 찾고 이를 컨템퍼러리 무용의 개념과 연결시키려는 국립현대무용단의 3년차 시도라고 볼 수 있다.

2014년 남정호 이정희 안신희가 출연하여 80년대 초 현대무용도입기의 춤을 재연한 ‘우회공간’을 그 시작으로 본다면 2015년 ‘전통의 재발명전’이나 90년대 홍대 앞의 문화풍경을 그려낸 박나훈 안영준 이경은 이윤정의 ‘Under/Off Ground'는 현대무용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상징하는 2년차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아카이브 플랫폼‘은 더 직접적으로 역사 자체를 창작의 모티브로 삼아 무대화하였다는 면에서 앞의 작업들과 차별화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첫번째 보여준 윤정아의 작품은 ‘동시대의 무용공연 향유자와 실존적 매개의 거리관계에 따른 해석수준의 분류와 분석, 그 실재적 재현이 거북이를 수용하는 주체의 예술대상에 대한 곶감정도에 미치는 영향의 실증’이라는 길고도 불편한 제목을 가졌다.

간편한 카키색 훈련복을 입은 세 여인(여민하 최민 윤정아)이 등장한다. 지난 11년간 국내 작가들에 의해 공연된 무용작품 들을 공연자와 관객의 관계란 관점에서 4개 유형으로 분류한다. 스크린엔 작가와 작품제목, 제작연도가 떠오르고 출연자들은 무대를 중심으로 3면을 둘러싸고 앉은 관객들 앞에서 동작을 묘사한다.

첫번째 유형은 공연자와 관객이 무대와 객석으로 분리된 전형적인 극장구조이다. 두번째 유형은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어 있으되 언어와 영상, 텍스트를 매개로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심리적 거리가 축소된 형식이다. 세번째 유형은 무용가가 무대를 떠나 객석으로 이동하면서 관객과 만나는 형식이다. 네번째 유형은 무용가가 공연 중에 관객을 이동시키는 등 행위를 통해 공연의 일부에 관객을 참여시키는 형식이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지붕아래 한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섞이는 의미가 있다. 한 동안 유행처럼 번졌던 커뮤니티댄스의 공연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두번째 작품은 신혜진의 ‘스커트-올로지(Skirtology)' 즉 치마연대기다. 무대 한 쪽에 자리 잡은 재봉틀에선 끊임없이 여러 종류의 치마가 만들어지고 두 출연자(노화연, 최규태)는 계속 옷을 바꿔 입으며 패션쇼를 연출한다.

단지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치마에 대한 선입견을 덜어내고 시대적으로 변천해온 다양한 형태의 치마와 그 의미를 영상과 함께 보여주는 특이한 작품이었다. 단순한 치마의 역사보다 춤과 관련시킨 무대의상의 역사로 발전한다면 더욱 의미 있는 아카이빙 작업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세번째 작품인 남동현의 ’사적인 극장의 역사(Private history of Theater)'는 무대 위에 등장하는 불과 조명의 역사를 추적한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 극장이 야외에서 실내공간으로 바뀌면서 조명을 위해 무대에 올랐던 촛불과 가스등의 유래를 설명하고 이로 인해 초래된 비극적인 화재현장의 기록을 소개한다.

동굴의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을 조성함으로써 공연 중 극장화재의 공포심을 살려내는 연출이 특이했으나 불의 역사인지 조명의 역사인지 혹은 화재의 역사인지 불분명한 주제의식이 아쉬웠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아키이빙 작업은 창작소재의 확장이란 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무용관객들은 여전히 이러한 종류의 실험성 작품에 익숙하지 않고 유료관객들로 객석을 채우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공연기획자나 교육기관의 역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험적 작품이나 퍼포먼스 행사가 아닌 진지한 무용작품창작을 통해 현대무용의 예술성을 관객에게 인지시키는데 전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