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 레터]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김경수 배우에게
[윤중강의 뮤지컬 레터]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김경수 배우에게
  •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6.09.0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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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2016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이 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이 작품에서 대단한 열정이 배어있습니다. 막공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공연장은 사실 더 더웠죠. 그럼에도 공연의 집중도는 꽤 높았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쯤 프로그램북을 들고 부채질을 할 것 같았지만, 전혀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숨소리 하나 크게 내지 않고, 모두 무대에 집중했습니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죠. 

이 작품을 탄생시킨 주역 김유현(대본)과 김보람(작곡)에게 먼저 박수를 보냅니다.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를 뮤지컬로 다루자는 발상 자체를 높이 삽니다.

작품은 피아노 협주곡 2번(Piano Concerto no.2 C minor)의 탄생배경에 초점을 맞춥니다. 교향곡 1번(Symphony no.1 in D minor op.13)에 크게 기대를 걸었지만, 초연은 곧 혹평으로 이어집니다.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의 20대의 얘기고, 실패와 좌절의 얘깁니다. 라흐마니노프(안재영)가 심리학자 니콜라이 달(김경수)를 만나면서, 치유와 극복으로 이어지는 얘깁니다.

그건 누구나 있을법한 트라우마에 관한 접근이었습니다. 종소리를 표현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과 음정의 관계를 실제 울음소리와 연결하는 내용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가족(누나)의 얘기를 담아내는 것에서 관객들은 공감하였으리라 봅니다. 

이 작품은, ‘2인극’이었기에 성공했습니다. 최소인원으로 최대효과를 냅니다. 4명의 배우의 극에 대한 깊은 책임감이 이 작품을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에는 중요한 ‘세 커플’이 있네요. 이 세 커플의 ‘케미’가 좋아서, 좋은 뮤지컬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번째 커플은 오세혁(연출)과 윤상현(각색, 조연출)입니다. 그들은 우선 뮤지컬도 연극처럼 깊이있는 내용을 다룰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그 전개방식이 연극처럼 심각하지 않고, 뮤지컬처럼 재미있게 전달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두 번째 커플은 이진욱(작곡가, 음악감독)과 이범재(피아노)입니다. 두 사람은 정말 라흐마니노프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아주 음악적으로 잘 풀어냈습니다. 뮤지컬을 잘 모르는 클래식애호가들도 이 작품을 보면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더 깊이있게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세 번째 커플은 단연 라흐와 달의 커플이겠죠. 상보(相補)는 이럴 때 쓰는 말이겠죠. 배우간의 시너지 효과가 대단했기 때문에, 이런 상생(相生)의 뮤지컬이 탄생될 수 있었을 겁니다.

이 작품을, 뮤지컬 ‘쓰릴 미’를 비교하는 관객도 있을 겁니다. 2명의 남성이 출연한다는 점에 그렇죠. 그러나 다릅니다. 2인은 쓰릴미는 철저하게 두 배우가 ‘나’와 ‘그’를 연기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라흐마니노프’에서 ‘라흐’는 그 자신을 연기하면 되지만, ‘달’은 다르죠. 

당신은 여기서 일인다역을 소화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서, 김경수란 인물이 여러 캐릭터를 잘 소화해낼 수 있는 훌륭한 배우란 것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만들어낸 쯔베레프교수와 차이코프스키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선 길게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 순간에 당신은 두 사람을 매우 ‘임팩트’있게 그려내더군요. 그렇습니다. 당신이 이토록 ‘임팩트’가 있는 배우란 걸 이 작품을 통해서 확연하게 알게 되더군요. 

이 작품을 통해서, 나는 당신을 ‘원심력의 배우’라고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바퀴를 돌게 만들죠. 배우 중에는 구심력이 배우는 많은 것 같습니다. 주인공으로서 극에 몰입하게 해주는 역할이죠.

그러나 정작 극이나 주인공에게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극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면서 작품을 입체적으로 살리는 배우가 최고의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라흐마니노프>에선 당신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습니다. 당신은 구심력이 강할 수 밖에 없어서 위대한 인물의 전기처럼 보여질 수 있는 작품을 객관적이며 심도있고 접근할 수 있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뮤지컬계에 입문한지 올해로 10년차가 되는군요. 당신의 첫 뮤지컬은 <위대한 캐츠비>였죠. 나는 당신의 작품 중에서 <겨울연가>, <글루미데이>를 잘 봤습니다. 하지만 그 때 사실 뭔가 특별한 것이 없는 배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라흐마니노프>를 보면서, 당신이야 말로 매우 특별한 배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라흐마니노프 2번을 듣게 되면, 달 박사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라흐가 달을 위해서 이 작품을 헌정했다죠. 이 곡을 다시 듣게 될 때, 어쩌면 더 정확히 말해 당신(김경수)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달 박사의 얼굴조차 제대로 모르니까요.

역사와 음악에 묻혔던 달이라는 인물을 생생히 창조해낸 김경수배우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이제 또 당신에 의해서 생생하게 창조될 인물은 또 누구일까요? 기대하면서, 지켜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2016 . 7. 21 ~ 8. 25, 동숭아트센터 동숭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