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서울탄츠스테이션 ‘컬쳐컬러무용단’ 창단공연
[이근수의 무용평론] 서울탄츠스테이션 ‘컬쳐컬러무용단’ 창단공연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6.10.1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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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서울탄츠스테이션(Seoul Tanz Station; STS)은 무용수들의 기량향상을 목적으로 2011년 설립된 무용전문교육기관이다. 주식회사로 설립되어 강혜련(경기대학교수)이 대표를 맡고 있는 이 단체는 취미무용으로부터 전문무용수 훈련까지 모든 무용장르를 아우르면서 학교 밖에서 의욕적인 교육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이곳에서 훈련 받은 무용수들을 주축으로 금년 3월 설립된 ‘STS 컬쳐 컬러 무용단’이 개포동 M극장에서 창단공연을 가졌다(9.10~11). 미나유가 안무한 ‘New World Order'와 이경은 안무의 ’조용한 수다‘ 두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New World Order'는 미국 41대 대통령 부시(George Hubert Walker Bush)가 이라크와의 전쟁을 일으키기에 앞서 1990년 국회에서 행한 연설문을 모티브로 삼았다. 카터를 뒤이은 대통령 부시는 이라크전쟁을 일으켜 미국경제를 악화시킨 장본인으로 연임에 실패한 정치인이다.

무대가 밝아지면 곳곳에서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드릴로 벽돌을 쪼개고 커터로 목재를 자르는 작업이 계속되면서 공사장 먼지가 무대를 넘어 객석까지를 오염시킨다. 좁다란 지하공연장에 무릎을 맞대고 촘촘히 앉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장면이다. 블루컬러노동자들에 의해 어질러진 공사현장이 깨끗이 정리된 후 한 편에 마련된 테이블에선 화이트컬러 정치인간에 서명된 협정서가 교환된다.

무대 위에서 좌충우돌 움직이는 5명 무용수들 위로 새로운 세계질서(new world order)의 도래를 선언하는 연설문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벌어진 명분 없는 전쟁과 그 불행한 결과를 알고 있는 관객들에겐 시니컬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반어법의 텍스트라고 볼 수 있을까. 이 작품의 첫 번 째 약점은 메시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new world order에 대한 안무가의 가치평가도 애매하지만 이 연설문이 4반세기가 지난 지금 시대에 시사해주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 역시 불확실하다. 두 번 째로 춤과 음악을 통한 미학성의 결여를 지적하고 싶다.

3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가 유니섹스 의상과 동작으로 출연한다. 무용수들의 동작은 거칠고 음악은 아예 없거나 미약하다. 세 번째 문제는 작품과 공연장의 부조화다. 공사현장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분진을 내뿜는 것이 불가피했다면 밀폐된 지하 소극장무대를 피했어야하는 것이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였을 것이다.               

앞 작품이 남성적이라면 ’조용한 수다‘는 꽤 여성적인 작품이다. 홍승연 이나령 정한별 김양희 등 4명의 여자무용수가 출연한다.

작품의 전편에 걸쳐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Choral)'이 낮게 깔리며 서정성을 들어낸다. 음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데 바탕에 깔리는 장중한 클래식 선율과는 달리 여인들의 표정은 코믹하고 춤사위는 경쾌하다.

영화에서 보았음직한 처녀들의 수다를 떠올리는 장면들이 계속된다. 따돌림도 있고 배신이 있으면 화해도 있다. 앞에선 웃는 표정이지만 등 뒤엔 비수를 숨기고 기회가 온다면 동료의 등에 칼을 꼽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요즘 시대의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갑 질’의 단면들을 풍자하는 것으로도 읽혀진다.

나는 지금 ‘을’이기에 ‘갑질’의 희생자임이 분명하지만 돌아서면 나 또한 ‘갑’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세상의 모순을 여성들의 수다에 비유한 것일까. 모두가 다 가해자이고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특정한 누구를 비난할 일도 아닐 것이다. 세상을 보는 이경은의 시각이 독특하게 느껴진 작품이다.   

대학무용교육의 정상화가 해묵은 숙제로 남아 있는 한국 무용계에 ‘서울탄츠스테이션’과 같이 체계적인 무용가교육을 담당해줄 민간전문기관에 대한 요구는 점증할 것이다. 교육기능과 함께 창작기능을 겸비한 선례를 벨기에의  P.A.R.T.S(Performing Arts Research and Training Studio)에서 찾을 수 있다.

작년 5월 로사스무용단과 함께 방한하여 인상적인 공연을 보여주었던 안느 테레사(Anne Teresa De Keersmaeker)가 1995년 설립한 단체다. STS가 P.A.R.T.S와 같이 고급무용교육기관으로 존속하면서 이제 창립된 ‘컬처컬러무용단’을 통해 창작기능도 실험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다만 안느 테레사의 꿈이 음악과 일치된 무용을 만들자는 것이었음도 기억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