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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Coulmn] 음악과 시
2016년 10월 14일 (금) 19:00:10 정현구 국제문화개발연구원 부원장/ 코리아 네오 심포 sctoday@naver.com
   
▲ 정현구 국제문화개발연구원 부원장/ 코리아 네오 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모든 언어는 음악적이다. 시어(詩語)뿐만 아니라 산문의 언어도 음악적인 것이다. 이 정의는 반대로 음악은 언어의 요소와 같은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구(句)와 호흡의 개념은 음악과 언어에 동일하게 작용한다. 

이와 같은 공통점은 멜로디의 경우, 멜로디에 사용되고 있는 말이 거의 언제나 시의 언어이거나 모든 형식의 담화 중에서 가장 음악성이 풍부한 언어이다. “음악의 길과 시의 길은 교차한다.”라는 폴 발레리의 말처럼 시는 산문(散文) 이상으로 음악적이다. 그것은 시(詩)의 운(韻)을 강조하는 특성에 의해서이며, 시구의 윤곽과 전체 구성을 지배하고 있는 ‘해조(諧調)’의 절대적인 힘에 의해서이다.

시인의 테크닉과 작곡가의 테크닉 사이에는 일종의 인력(引力)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괴테와 베토벤을 대표적인 두 가지 예로 들 수 있다.

괴테는 음악 속에 ‘모든 시가 거기에서 생겨나고 그리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참다운 요소’를 인정하고 있었으며, 베토벤은 <작품 115>의 서곡 첫머리에 ‘C 장조로 만들어진(gedichtet) 대서곡’이라고 썼는데, 여기에서 독일어 dichten 이라는 동사는 시를 만드는 것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문명이 상당히 진보될 때까지 시를 만드는 인간은 동시에 노래의 작곡가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 켈트족의 음유시인 남프랑스의 음유시인은 자기들이 만든 시의 문구를 노래했다. 프랑스에서 시인과 음악가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된 것은 17세기가 되어서였다. 한편 리트에 대해서 말한다면, 리트는 음악으로서의 생명 외에도 독일의 시의 한 분야를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두 예술의 연관은 매우 확실하다. 

어떤 시가가 작곡의 대상이 될 때, 또는 시가 ‘멜로디’로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시는 음악에 문학적인 의미를 부여해 주고, 음악은 시에 분위기를 곁들여 준다. 그러나 음표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가사가 만들어내는 음악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 괴테의 시에 대해서 필리프 슈피타(독일의 음악사가, 1841-1894)는 “그러한 시는 작곡하기에 너무나 음악적이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극히 일반적인 시구(詩句)가 황홀한 선율을 만들어내게도 한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Die Winterreise>가 그런 예일 것이다. 

작곡가의 표현이 시인의 음악을 투과시켜 보이거나 또는 강조하거나 하기 위해서는, 시구(詩句)의 호흡에 따르고 그 율동을 지키고 그 억양에서 착상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센박은 악센트가 있는 음절에, 여린박은 악센트가 없는 음절에, 긴 음표는 가사의 악센트와 일치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음악적 운율법의 고전적인 기법이다. 목소리의 특징에 따라서 시구의 분절, 구두점, 분리가 느껴지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운(韻)은 일종의 ‘음악적 운율’을 구성하는 고른 선율에 의해서 확실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각 절이 같은 가사의 구절에 맞추어 노래되는 경우, 운율법은 필연적인데 민요에서는 노래와 가사의 일치는 물론 약간 엉성하지만 여하튼 자연발생적이며 생동감이 있다. 민요에서는 시 전체다 일률적이고, 복잡한 음악형식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사와 노래의 일치는 편안하게 되어 있다. 

우리 가곡을 비롯한 노래들이 감상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들려오지 않는 것은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고 작곡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언어의 고찰, 특히 시어에 대한 음운적 사고를 지니지 않고 그저 자신의 감으로만 작곡에 임하고 작품을 대중에 들이미는 관행이 이제는 제고되어야 한다. 우리의 노래가 더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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