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조계종, 무엇이 두려워 언론탄압 확대하나
[Culture Column] 조계종, 무엇이 두려워 언론탄압 확대하나
  • 이학종 미디어붓다 발행인
  • 승인 2016.10.2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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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의 ‘출입기자 등록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정안’을 보고
▲ 이학종 미디어붓다 발행인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생루(生漏)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와 여쭈었다.

“무슨 인연 때문에 중생들은 없어지고 사라지며 줄어들게 되는지요? 또한 무슨 인연 때문에 어제까지 있었던 성곽이 무너지고 사람이 살던 곳이 오늘은 빈터가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이 알고 싶은가? 그것은 다 사람의 소행이 법답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었던 성이 무너지고 오늘은 빈터가 되었다. 그것은 다 사람들이 간탐(慳貪)에 묶이고 애욕을 익혀 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람이 때를 맞추지 않고 비가 때를 맞추지 않아 심은 종자들이 자라지 못하여 흉년이 들고 죽은 사람이 길에 넘치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이 번성하지 못하게 된다.”
<중략>

부처님의 설명을 듣고 생루 바라문은 감격해서 이렇게 찬탄의 말씀을 올렸다.

“비법을 행함으로써 모든 재앙이 생긴다는 말씀은 매우 시원하고 즐겁고 유쾌합니다. 그것은 마치 곱추가 등을 펴고, 장님이 눈을 얻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보며, 눈 없는 이가 눈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저는 목숨을 다해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증일아함 26권 ‘등견품(等見品)’ 제10경    

범계 및 범계의혹으로 얼룩진 조계종이 스스로 쇠락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 불자의 수가 놀라울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통계가 교계에 회자되면서 쇠락의 징후들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이는 비법을 행함으로 초래되는 과보라고 할 것이다.

‘정화(淨化)’를 창종의 제1 명분으로 삼은 조계종에 어지간한 범계는 문제가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 지 오래다. 승려들의 범계의혹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은 시나브로 진부한 것으로, 별것 아닌 것을 트집 잡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범계 의혹을 받는 승려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증거를 요구한다. 물적 증거가 없으면 범계는 없는 것이 된다. ‘증거를 내 놓으라’는 행태는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나 접하곤 했던 범죄자가 검사을 향해 ‘증거가 있느냐? 증거를 가져와라’고 하는 태도를 연상시킨다. 설사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소란한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하며, 자신으로 인해 소란해질 소지가 있으면 손해를 보더라도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승가의 모습(물론 전체 승가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은 잘 찾아볼 수 없다. 

▲ 지난 4월 7일, 한전부지를 매입한 현대자동차 사옥 앞에서 대한불교조계종 한전부지 환수위원회가 행한 의식 제단에 놓여진 위패들.

불교는 지혜와 자비를 두 축으로 하는 종교이다. 지혜로워야 하고, 자비로워야 한다. 그런데 이 두 축이 흔들린다. 왜 흔들릴까. 경전은 법답게 살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쳐준다. 저명한 고승 탄허 스님은 세상을 운용하는 기준 가운데 법(Law)은 가장 나중에나 적용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하신 바 있다. 하물며 부처님의 진리(법, 담마)를 목숨을 바쳐 귀의해야 하는 불교계에서 걸핏하면 세속법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진 것은 참으로 볼썽사납다.  

법(담마)답지 않은 모습 가운데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최근 일어난 일 가운데, 대한불교조계종 한전부지 환수위원회가 현대자동차를 향해 했던 퍼포먼스는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 것이었다. ‘망(亡) 현대자동차’, ‘망 소나타’, ‘망 싼타페’ 등이라고 적힌 위패를 놓고 승려들이 나서서 의식을 행하는 모습은 ‘저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온 생명을 걸어 지혜를 구하고, 자비를 실천해야 할 불교계가 보기에도 섬뜩한 ‘저주’ 행위를 백주대낮에 했다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종교, 또는 종교인’임을 포기한 것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실제로 그 보도를 접하고 불자임을 감추기로 했다는 사람들(특히 지식인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들었다. 이 부분은 더 늦기 전에 조계종 차원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공개참회를 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를 저주나 하는 사이비 집단처럼 세간에 비치게 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죄악이요, 훼불행위가 아닌가. 

이런 행태를 오늘날 승가의 일원들이 스스럼없이 하게 된 것은 부끄러움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면 차마 이런 짓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이 현저하게 줄어든 배경에는 아픈 지적이나 비판을 외면해온 것이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명줄을 끊어버리겠다는 행보를 1년 가까이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은 정상적인 집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조계종 집행부는 아예 불교언론 전반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시도로밖에 볼 수 없는 규정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불교포커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조계종은 최근 이른바 ‘대한불교조계종 출입기자 등록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정안’을 준비 중이다. 해종언론 지정만으로는 성이 덜 찬 모양이다.  

그 주된 내용은 출입기자 등록 제도를 만들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만든 잣대에 근거해서 출입기자를 관리하겠다는 것을 뼈대로 한다. 한 마디로 비판의 입을 틀어막고 자유로운 취재를 막겠다는 취지다. 그들이 어떤 명분을 들더라도 이런 시도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총무원장의 임기를 1년 정도 남긴 조계종 집행부가 기존의 언론탄압에 더해 이토록 광범위하고 치밀하게 언론을 조직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려고 하는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무엇이 이토록 치졸한 행보를 서슴없이 하게 만드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런 법답지 못한 행보들이 조계종은 물론 불교 전반을 쇠락의 길로, 패망의 길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낙엽을 지게하는 가을바람이 오늘 따라 유난히 스산하다. 

*이 칼럼은 인터넷미디어 ‘미디어붓다’에도 같이 실렸음을 밝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