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SIDance 2016'에서 본 김윤수 * 이경은 * 조슈아 비미쉬의 춤
[이근수의 무용평론] 'SIDance 2016'에서 본 김윤수 * 이경은 * 조슈아 비미쉬의 춤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6.10.2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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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이종호)가 주최하는 SIDance의 시작은 1990년대 말로 돌아간다. IMF금융위기로 한국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 이 때 탄생한 세계무용축제가 살아남아 올해로 19회 째를 맞았으니 기적같은 일이다.

프렐조카주 발레단과 마지막 단계에서 불발되었지만 카롤린 칼송을 초청하기로 한 올해는 특히 기억할만한 행사였다. 17개국 42개 무용단이 참가한 가운데 나는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공연한 <후즈 넥스트 IV>(10,7) 세 작품을 의미 있게 보았다.   

김윤수 무용단의 ‘네 명의 무용수를 위한 거문고 산조’ 는 무술도복을 연상시키는 검정색 옷을 단단하게 차려입은 두 쌍의 남녀가 무대 가운데로 걸어 나옴으로써 시작된다. 무대 바닥에 비스듬히 누운 여인들을 지키고 선 남성들(권교혁, 송우람)이 여인의 손을 잡아 일으킬 때 신쾌동 류 거문고 산조가락이 힘 있게 울려 나온다.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그들의 몸은 악기가 되고 선율이 된다. 제비가 물을 차고 날아오르듯 날렵하면서도 힘 찬 춤사위다. 두 쌍의 남녀가 좌우로 늘어서 동일한 움직임을 만들어 간다. 남자가 뒤에서고 여자는 앞에 앉은 모양으로 양 팔을 크게 펴서 상하로 움직이며 부채 살처럼 펴지는 손가락을 마주 잡아 기하학적인 도형을 만들었다가 풀기를 반복한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듯,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춤사위에 여인들(김혜지, 박소영)의 표정엔 자신감과 기품이 있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 여인들이 자리에 눕고 남성들이 옆을 지키고선 장면으로 음악과 춤이 동시에 끝난다. 현대 춤을 품은 한국춤사위와 거문고 선율이 하나 되어 4인무의 극치를 보여준 20분간의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경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동아무용콩쿠르와 국립무용단을 거친 김윤수의 춤을 처음 본 것은 ‘걷는 새-살아남은 자의 슬픔’(1997)이었다. 그 후속작으로 보여준 안덕기 최진욱과의 남성 3인무 ‘뫼비우스의 띠’(1999)를 본 후 나는 이러한 리뷰를 썼다. 

“뫼비우스의 띠에서 김윤수는 한국 춤사위의 고유성을 인도와 중국 춤의 손동작과 팔 동작, 그리고 무용을 보고 처음으로 그를 울게 했다는 일본 부토 춤의 움직임을 절묘하게 결합하면서 동양적 보편성을 창조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누가 이들을 춤추게 하는가, 253쪽)”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2013~5)을 거치는 동안 전통적인 설화를 소재로 한 무용극형식에 구속되었던 그의 춤 세계가 이제 닫혀있던 창문을 열고 거침없이 날아오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네 명의 무용수를 위한 거문고 산조>는 40대 중반에 접어든 그의 새로운 비상을 보여준 예고편일 것이다. 

'조슈아 비미쉬'(Joshua Beamish/MOVE:THE COMPANY)를 작년 8월 뉴욕의 조이스 시어터에서 처음 만났다. 이 극장에서 2주간에 걸쳐 열린 발레페스티벌의 개막공연으로 보여준 작품 4개를 통해서였다. 현대의 가장 혁신적인 컨템퍼러리안무가로 손꼽히는 촉망받는 캐나다 출신 안무가 겸 무용가인 그가 무용제 개막을 알리는 첫 순서로 무대에 선 것이 인상적이었다.

올해 SIDance 에 초청된 작품은 <콘체르토 Concerto>다. 2015년 7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초연된 15분 솔로작품이다. 작달막한 키에 단단한 체구를 가진 그의 몸매는 여전히 짜임새가 있다. 벗은 상체의 단단한 근육과 검은 타이즈차림으로 바흐음악의 경쾌한 선율에 맞춰 종행무진 무대를 누비는 춤이 변화무쌍하다. 유연한 상체와 자유로운 양팔의 움직임을 통해 술 취한 듯 흐느적거리기도 하고 민첩한 남성춤사위 가운데 여성적인 수줍음을 유려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비미쉬 춤의 특징을 잘 드러내주는 ‘PIERCED’와 시적서정이 넘치는 ‘STAY’, 풀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튀어 오르듯 경쾌한 음악과 군무진의 자유로운 춤사위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무용은 음악이다’란 명제를 새삼 떠오르게 했던 ‘SURFACE  PROPERTIES’ 등 조이스극장에서 보여주었던 작품들이 모두 초청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이경은의 <마음도깨비>는 비미쉬의 매혹적인 남성 솔로에 필적하기 위해 무대에 올려진 듯한 여성 솔로 작이다. 가슴 띠를 두르고 짧은 검정색 바지 차림의 이경은이 30분 무대를 홀로 장악한다. 물결치듯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변화무쌍한 여인의 심상을 도깨비에 비유한 시적이면서도 산문적인 작품이다.

세상의 처음처럼 고요한 적막가운데 여성적인 춤이 부드럽게 시작되지만 세상의 풍파가 고요함만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시가 산문이 되고 그녀의 춤은 커다란 원을 그리고 회전을 거듭하면서 절망적인 분위기를 헤쳐 나가듯 치열한 남성 춤으로 진화한다. 이경은의 에너지와 중성적인 춤 캐릭터를 확인할 수 있는 야심찬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