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곤 투모로우’ 이지나 연출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곤 투모로우’ 이지나 연출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6.10.2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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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대한민국 뮤지컬도, ‘혁명’을 얘기하더군요. 뮤지컬 곤 투모로우(Gone Tomorrow)가 그랬습니다. ‘뮤지컬에서 시대와 인물을 이렇게 깊이 다룰 수 있구나!’. 이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습니다. 

오태석의 희곡 ‘도라지’를 기반으로 해서, 당신은 뮤지컬 ‘곤 투모로우’의 대본을 쓰고 연출을 했습니다. 오태석의 희곡이 뮤지컬이 되었을 때, 다르고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발상에 박수를 보냅니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뮤지컬이 소재를 넓혀가며 팬층을 확산하는데 주춧돌의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모든 걸 다 떠나서 참 재밌습니다. ‘남녀가 연애하는 장면이 안 나와도 재밌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가, 금세 이렇게 바뀌었죠. ‘남녀가 연애하는 장면, 안 나와서 재밌구나!’ 그래요, 대한민국 뮤지컬은 지금까지 ‘연애’ 과잉이었는지 모릅니다. 남녀든, 남남이든, 꼭 두 사람의 로맨스를 집어넣었습니다. 반면,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죠. 뮤지컬이 등장하는 세 명의 캐릭터(김옥균, 홍종우, 고종)에 깊이 집중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영화같은’ 뮤지컬이었습니다. 성공한 한 편의 한국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장면구성도 그렇고, 배우연기마저 그랬습니다. 슬로우모션 (Slow Motion)과 플래시백(Flashback)을 매우 잘 사용하더군요. 영화처럼 말입니다. 르와르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뮤지컬 관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지나 연출작의 매력이나 강점은 무엇일까요? 나는, 배우의 ‘움직임’을 첫 손으로 꼽습니다. 뮤지컬 ‘서편제’를 통해서, 이런 특성이 잘 드러났습니다. 떠돌이 유랑예인(소리꾼)들이 길을 걷는 모습을, 뮤지컬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아주 잘 그려냈습니다.

‘곤 투모로우’에서도 그랬습니다. 특히 1막의 경우, 무대전환과 영상변화를 통해서, 결코 뮤지컬 만들어내지 쉽지않은 장면을 잘 그려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좀 정신 사납다는 얘기도 하더군요. 나는 다릅니다. 1막의 내용을 전달해주기에 아주 좋은 방식이었습니다.  앙상블의 군무(群舞)와 세 배우의 동선(動線)이 돋보였습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에 의해서 이루어진 갑신정변과 그 삼일천하를 무대를 통해서 긴박함있게 그려냈습니다. 내용상, 역사적 상황을 전제로 해서 장소의 이동이 많을 수 밖에 없죠. 당신은 무대라는 한정된 장소에서도, 여러 장치를 잘 이용해서 공간을 아주 잘 활용했습니다. 

이번 뮤지컬에는 좋은 배우, 좋은 스텝들이 더욱 작품을 빛냈습니다. 홍종우 역할을 맡은 김무열배우가 좋은 배우란 걸 일찍기 알았지만, 특히 이 작품에선 더욱 더 그렇더군요. 행복, 혁명, 동지, 이 세 단어가 홍종우라는 인물과 김무열이라는 배우에게 겹쳐집니다. 개인적으로 잘 사는 삶과 시대가 원하는 삶 사이에서, 김무열은 매우 홍종우라는 인물을 잘 그려냈습니다. 이렇게 뮤지컬 속 남자주인공의 연기와 노래를 보고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이완총리 역할에 맡은 김법래 배우를, 모든 사람이 다 칭찬을 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죠. 대한민국의 뮤지컬 무대에 이런 ‘씬 스틸러’ 배우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배우 ‘임 별’의 발견이었습니다. 처음에 그 독특한 음색으로 인해서 착각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결국 ‘김법래인 듯 김법래 아닌’ 임별의 연기에 푹 빠질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해서, 임별 배우에게 많은 러브콜이 쇄도하지 않을까 싶네요. 대한민국 뮤지컬에서도 이렇게 나쁜 남자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있네요.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해서 창작한 작품이지만, 마치 오늘날의 우리에게 질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라는 기울어가고, 군주는 이미 힘을 잃었고, 권력자들은 부패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죠.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국민으로서 잘 사는 길은 무엇인가?’를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김옥균과 홍종우를 통해서, 관객은 저마다 해답을 찾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 뮤지컬을 돋보이는데, 음악이 좋은 역할을 했습니다. 뮤지컬 속에. 춤곡이 나옵니다. 탱고와 왈츠, 그리고 우리 민요 ‘도라지’ 같은 노랩니다. 일반적으로 뮤지컬에서 춤곡을 ‘분위기를 띠우는데’ 적절하게 사용하지만, 이 뮤지컬은 다르죠. 이런 흥겨운 춤곡 안에 비애를 잘 녹아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음악을 만든 최종윤(작곡가)과 김성수(편곡, 음악수퍼바이저)와 관련된 음악적 얘기는 훗날에 더 깊이 있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저예산’ ‘대극장’ ‘창작뮤지컬’입니다. 이게 대한민국 뮤지컬의 하나의 좋은 돌파구가 되리라 믿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뮤지컬은 저예산 소극장뮤지컬과 고예산 대극장뮤지컬로 양분되었다고 할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예산을 가능한 적게 들어가면서 대극장 무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관객층을 확산할 수 있는 작품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역할을 당신이 해줬습니다.  

대한민국 뮤지컬이야말로. 지금 ‘혁명’을 필요로 하는 시기인지 모릅니다.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뮤지컬을 만들어야 합니다. 뮤지컬이라면 무조건 예산을 많이 투자를 하고, 티켓 값이 비싸다는 풍토를 없어야 합니다. 물량공세를 하는 라이센스뮤지컬 속에서, 한국적인 제작 상황에 적절한 작품이 나와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뮤지컬계야말로, 김옥균과 같은 개혁적 인물이 필요합니다.  

저예산으로 만든, 고품격의 창짝뮤지컬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오태석의 또 다른 작품인 소리극 ‘아리랑’(2013)도, 당신에 의해 뮤지컬로 재탄생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정래의 대하소설로 만든 뮤지컬 ‘아리랑’(고선웅 연출, 2015)도 있고, 당신도 또한 ‘아리랑-경성26년’(2013)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겐 이것과 또 다른 ‘아리랑’ 관련 뮤지컬 작품이 필요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도라지’라는 노래가 작품에서 돋보였듯이, ‘아리랑’을 돋보이게 하는 뮤지컬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이번 작품처럼 오태석 희곡의 강점을,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젊은 세대와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희망합니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 2016. 9. 13~ 11. 6. 광림아트센터 BBCH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