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각가 김영원“모든 것은 자기 내면에서 찾을 것, 그것이 곧 미래로 가는 길”
[인터뷰] 조각가 김영원“모든 것은 자기 내면에서 찾을 것, 그것이 곧 미래로 가는 길”
  • 이은영 기자/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11.0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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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야기'를 매치시키면 생명이 넘치는 공간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을 했다"

동대문에 위치한 DDP 앞에 최근 커다란 조각물이 전시되었다. 앞과 뒤, 좌와 우가 모두 틔여진 남자의 몸이 새겨진 조각물. 이 조각물이 세워지면서 DDP는 예술의 공간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줬다. DDP에서 ‘미래로’를 선보인 김영원 조각가의 작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로 이름을 남기고 있는 김영원. 그러나 그에게 찬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격랑의 시대 속에서 그의 작품은 ‘저항’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비판에 시달렸고 그가 추구한 ‘선(禪)’은 ‘사이비, 무당’이라는 편견 속에 관객들과 소통하지 못했다. 여기에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둘러싸고 일어난 비난은 평생을 조각에 매진했던 그를 분노하게 만들기도 했다.

‘양심에 따라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하는 것이 저항’이라는 생각으로 지금도 관객들과의 소통을 추구하고 있는 조각가 김영원. DDP가 시장이 아닌 ‘힐링 공간’이 되기를, 나아가 우리나라가 문화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조각가의 열정과 마음이 지금 우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 김영원 조각가

현재 DDP에서 ‘나-미래로’展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의 의미를 짚어달라. 

처음 DDP에서 제안을 받았을 때 '공간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수시로 DDP를 왔다갔다하며 공간을 알아갔다. 그리고 느낀 것은 이곳이 건물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조각이라는 것이었다.

DDP를 만든 자하 하디드에 대해 공부하면서 어떤 것을 모티브로 했는지 알아보니 이 건물 자체를 환유(換喩)의 풍경으로 만들었더라. 환유란 철학적으로 보면 기표(껍데기), 즉 형식이라는 건데 물방울이라는 단초를 가지고 유기적인 형태의 모든 것을 총집합시킨 것이라고 봤다.

달리 이야기하면 형태, 물질적 공간이다. 물질적 공간 속에 어떻게 접근해야하는가? 바로 ‘인간의 이야기’를 매치시키면 생명이 넘치는 공간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막상 하겠다고 하니 공간 안으로 들어오면 내 조각품이 하디드의 조각품 속에서 하나의 장식, 부속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들었다. 어떻게 극복할까? ‘작품이 커야겠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시켜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한 환경 장식이 아닌 이상 조각 작품의 독립성이 있잖나. 그와 건물이 가진 예술성이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하며 많은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의미라 봤다. 

어디에 놓아야하나? 이것도 고민이었다. 하중이 안 맞고 가설무대 만들고 푸드트럭 놓는다는 곳에 부딪히고... 이것저것 다 빼니 공간이 없었다. 내가 실패하면 DDP에서 다시는 예술 작품이 전시되지 않고 그렇게 되면 그곳은 디자인 공간이 될 뿐 예술 공간이 되지 못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건물을 배경으로 하자’ 그래서 도로변에 조각을 설치했다. 꼭 안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안에 들어왔으면 정말 종속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물 앞에 설치하니 건물이 배경이 되면서 조각이 부각됐다. 

반응은 정말 좋았다. 직원들은 당연히 좋아했고 조각가들도 앞에 있는 작품들은 놔두고 가라고 할 정도다. 나쁜 댓글이 하나도 안 나왔으니 성공한 게 맞다(웃음).

이번 전시 제목이 ‘미래로’다

‘로’는 ‘길 로(路)’ 다. 즉 미래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다. DDP가 미래를 상징하고 그 미래로 가는 길에 조각물을 설치했다. 미래로 들어가는 길을 만들어 그 공간에 인간의 온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DDP를 보면 경계가 없다. 모든 층이 다 지상이고 구조가 들어가면 나오고 나오면 들어가는 길이 이어진다. 천장과 벽의 구분도 모호하다. 아마도 ‘순환’을 바탕으로 불교와 도교적 기반을 깔고 DDP를 만든 것 같다. 철저한 동양적 세계관임이 간파됐다.

내 작품은 어느 방향에서 보든 보는 면이 정면이다. 방향성이 없다. 아예 경계를 허물었다. 좌우 개념도 앞뒤 개념도 없앴다. 미래로는 내 속에 내가 들어가는 길이다. 무수한 길이 있지만 참다운 길은 내 속의 길을 찾아가라는 의미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에서 찾으라. 그것이 미래로 가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 DDP 앞에 전시된 조각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영원 조각가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조각선, 드로잉선이다. 사실 10여년을 해 온 것인데 관객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요즘하고 있는 일이다. 여기서 선이란 禪.마음을 가다듬는다는 것이다.

마음을 집중하면 몸의 움직임이 생긴다. 이는 몸이 마음에 순응하는 것이다. 한두시간 그렇게 몸을 내맡기면 손이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는데 그것이 작품이 된다. 그 흔적을 만들려면 내 의식이 개입되지 말아야한다. 우주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내 속에 잠재된 것이 이를 통해 손끝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수행하면서 이것이 작품이 된다고 보고 있다.

상파울로 비엔날레 당시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들었고 브라질 방송 뉴스와 인터뷰를 했었다. 그랬더니 브라질 대사가 직접 나오고 교민들이 나를 보기 위해 쏟아져나왔다. 매일 한국 이야기 나오면 안 좋은 이야기만 나오는데 한국 작가가 비엔날레에서 브라질 방송과 인터뷰했으니 모두 기뻐한 것이다. 그날 대사가 큰 식당을 임대해 교민들 점심을 다 사줄 정도였다(웃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마치 사이비종교, 무당처럼 생각하더라. 선(禪)이라고 하니까 이상한 쪽으로 생각하고 친하던 이들도 작품을 보지 않고 그러다 보니 작품전도 안 되더라. 소통을 해야하는 사람인데 막혀있으니 참 답답했다. 그래서 선의 세계를 조각적인 형식으로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 바로 앞뒤 좌우 개념없는 조각이다. 사통팔달이 그래서 나왔다.  

한 작품을 보면 자기를 바라보지만 정작 내가 누군지를 모르고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봐도 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앞에 무엇인가가 나를 항상 가리고 있다. 내 욕망이다. 정말 사랑하고 대화하고 싶은 이를 욕망의 대상으로 보니 정작 내가 없는 것이다. 나 자신도 내 자식을 사람으로 봐야하는데 대상으로만 보니 좋은 점을 못 보는 일이 많다.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만드셨는데 굉장히 애로사항이 많았다

세종대왕 동상을 만들 당시 공모에서 나와 관계가 있는 이들이 없었다. 당시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오전 수업 끝나면 해질 때까지 광화문 공간을 거닐었다. 공간을  숙지 못하고 이해 못하면 포기하려했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할 수 있도록 보행 위주의 공간을 만들기로 하고 그 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보니 공간에 대한 개념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이는 아예 성을 쌓았다. 그럼 사람이 어떻게 건너나? 날아가란 이야기인가? 또 어떤 이는 사람들이 다니기 어려운 길을 만들어냈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 없이 만든 것이다. 어떻게 하다보니 내 안이 선택됐는데 아마도 그건 개념을 잘 잡은 것을 인정해서 주신 것이라본다.

하지만 떨어진 이들이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이들과 관계있는 이들이 개입하면서 세종대왕상 만들기가 힘이 들었다. 세 번이나 감사가 나왔고 언론에서도 ‘친일파가 그린 존영을 본떴다’ 등을 내놓으며 공개도 하기 전에 비난부터 했다. 공개된 직후에는 한동안 잠잠했는데 서울시장 선거 이야기가 나오면서 다시 비난이 시작됐다.

언론에서 비난한 것은 딱 두 가지다. ‘왜 이렇게 크냐?’, ‘왜 금색으로 만들었나?’ 결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동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청동이지 왜 금색이냐? 제발 좀 알고 글을 쓰라’고 혼을 낸 기억이 있다.  

▲ 김영원 조각가는 DDP를 배경으로 한 조각을 만들어냈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인데

대통령 동상은 청남대에서 열 분의  대통령 동상을 모두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제작을 각각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어떤 대통령은 잘 만들었는데 어떤 대통령은 잘 못 만들고 개인 성향에 따라 작품이 달라질 거라 걱정했나본지 한 작가에게 다 요청하더라(웃음). 전직 대통령 동상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박정희 정권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며 돌을 던졌고 민청학련 사건이 나던 무렵 군대에 끌려갔다. 그 때 군대에서 보초를 서며 혼자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당시 나라에서 ‘합리적인 생활’을 캠페인으로 내걸었다. 이상했다. 국민이 합리적이 되면 대통령이 죽을텐데 ‘합리적인 생활’을 강조하는 게 말이 되나?

그렇게 나가다보니 그간의 상황이 이해가 가더라. 경부고속도로나 중화학공업 육성 같은 것은 국민들이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나라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할 일이었다. 그 당시는 국민의 의사만으로는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나. 의견이 달라도 이 점은 생각해봤으면 한다.

추상미술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주의로 돌아선 이유가 있는지? 

추상미술 작품으로 상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맞다. 그런데 시국이 어지럽다보니 내 주위에서는 예술이 무기가 되어야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결국 나는 ‘예술은 호랑이같은 기질이 있는 사람이 해야한다’고 말했다. 집단으로 싸우는 것이 싫었다. 예술은 호랑이처럼 혼자하는 것이지 집단으로 하는 것이 무슨 예술인가? 

이렇게 말하면 내가 민중미술이나 저항미술에 반대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의 저항 방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대놓고 일률적으로 저항을 외치기보다는 내 양심에 비춰서 ‘내가 생각하는대로’ 만드는 것이 예술이고 예술로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민중미술계가 따돌리고 추상파는 모더니스트라고 따돌렸다.

결국 혼자 버텨야했다. 그렇게 사실주의로 돌아서다가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내 활동이 출구없는 작품 활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간의 작품을 부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탈출을 결심하고 모든 것을 해체하려던 시점에서 만난 것이 바로 선이었다. 그때부터 선을 탐구한 것이 오늘까지 온 것이다. 

▲ DDP에 전시된 김영원 조각가의 작품

DDP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DDP가 예술 공간으로 변해가길 바라는 마음이 클 것 같다

원래 동대문이 하나의 시장이었잖나.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곳이 시장이다. 바로 그 공간에 하디드가 힐링의 공간을 만들었다고 본다. 지친 이들이 와서 마음을 비우고 쉴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곳마저 시장과 똑같아지고 있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건 셈이 됐다.

나는 요즘 우리나라가 문화가 없는 나라가 되고 있다는 것에 절망하고 있다. 해외 전람회를 보며 부러운 것은 시민들이 문화에 대한 엄청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인이라면 엄청나게 대접하고 도록을 가지고 와서 직접 사인을 받는데 한국에는 그런 게 없다.

문화 행사를 하면 작가는 찬밥이고 정치인들이 중심이 된다.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이렇게 없는데 무슨 문화시대가 오고 문화융성이 되겠는가? 정부가 문화융성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기뻐했지만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를 위해서는 초등학생부터 공부보다는 미술이나 음악 등 문화 활동을 더 늘리고 주말을 문화 활용의 시간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고등학생도 문화를 접할 시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 TV도 황금시간대에 문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문화를 부각시켰으면 한다. 매일 자정 넘어 새벽에나 방송을 편성하니 누가 그 프로를 보겠나?

선생의 작품에는 ‘인체’가 주요 소재이다. 인체가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면?

인체는 뼈와 근육으로 음계처럼 긴장과 이완을 한다. 그 모습을 내 작품에 기록하는 것이다. 남자의 누드가 주로 나오는데 선정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긴장과 이완을 보여주는 매개체다.

끝으로 젊은 작가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자신을 믿고 자기 일을 가라. 왕도는 없다. 

 

[김영원 조각가 프로필]

홍익대학교대 환경미술연구소 소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

홍익대학교 환경조각연구센터 소장

홍익대학교 대학원 조소 석사

제7회 문신 미술상 대상

2002 제16회 김세중조각상

동아미술제 미술상

 

사진:조문호 기자/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