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모든 것은 대가를 치른다- 파리의 불꽃(The flames of paris)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모든 것은 대가를 치른다- 파리의 불꽃(The flames of paris)
  •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한국예술교육학회장
  • 승인 2016.11.2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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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등장하여 근엄하게 계단을 내려오고 신하들은 정중하면서도 우아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더할 나위 없이 호화롭고 장중한 의식이다. 이어서 루이16세가 무대 가운데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조금 전의 위엄은 간 데 없고 우스꽝스러운 자세와 움직임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뒤를 이어 신하들도 왕과 똑같은 자세와 움직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복사한 듯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춤을 춘다.

▲파리의 불꽃.루이16세 역(게나디 야닌),마리 앙트와네트 역(류드밀라 세메냐카),사진 엘레나 훼티소바

모든 것이 획일화되고 복종하는 권력의 속성을 단숨에 보여주는 이 장면을 발레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신음하는 민중의 고달픈 삶과 대비되는 귀족들의 질펀한 향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나면 왜 그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파리의 불꽃>은 프랑스 시민혁명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단순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춤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시대를 만들어낸 많은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이며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소치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던 재작년 겨울 모스크바에서 볼쇼이발레단의 <파리의 불꽃> 전막을 봤다.  보고 싶었던 이반 바실리에프와 나탈리야 오시포바가 주연이 아닌 점이 아쉬웠지만 (유명 무용인들은 소치에 차출되었기에) 좀처럼 보기 힘든 대작을 본다는 기대와 흥분으로 막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했다. 무용수로부터 차근차근 정도를 밟아 올라간 러시아인 안무가 알렉세이 라트만스키의 무대는 언제나 기대 이상이었다.

<파리의 불꽃>은 1932년 11월 7일 프랑스 파리가 아닌 구 소련 레닌그라드 키로프극장에서 바실리 바이노넨 안무에 의해 초연되었다. 당시 소련에서 러시아 10월 혁명은 프랑스 시민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일어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초연을 한 이듬해인 1933년 볼쇼이 발레단에서 상연되었을 때에는 유명한 발레리나 마리나 세묘노바가 평민을 사랑했다가 비극을 맞는 귀족의 딸로 출연한 기록이 있다. 이 작품은 한 동안 잊혀졌다가 2008년에야 다시 개정안무를 통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파리의 불꽃. 잔느 역(나탈리아 오시포바),필립 역(이반 바실리에프)사진Elena Fetisova (1)

무대가 열리면 앙시엥 레짐(구 제도)에 저항하는 시민군과 왕의 군대가 대치하는 18세기 후반의 파리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제롬과 쟌느 남매가 주인공인 <파리의 불꽃>을 얼마 전 무용감상론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DVD로 다시 보았다.

융합전공과목이라 무용전공은 물론 예술경영, 미디어영상연기, 실용음악, 메이크업디자인 전공 학생들도 함께였다. 학생들의 반응은 “뮤지컬 같아요” “레미제라블 보는 것 같은데 더 감동적이에요” “발레인데 구두를 신고 나오기도 하네요?”“발레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등이었다. <파리의 불꽃>은 발레에 대한 편견, 고정관념을 뛰어넘었다.

<파리의 불꽃>은 발레가 사회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언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되며 발전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엄혹한 시기에 발레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만둬야 할까? 사회에 더욱 필요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발레 <파리의 불꽃>을 당시에 접했더라면 발레를 한다는 자부심을 가슴 깊이 지니고 더욱 매진할 수 있었을 것도 같다.

엔도 슈샤쿠(1923-1996)의 인생론에서 “사랑의 제1원칙은 버리지 않는 것”이라 했다. 인생이 마냥 유쾌하고 즐거운 것이라면 인생에는 굳이 사랑이 필요 없다. 인생이 고달프고 추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인생에 대한 사랑이라고 그는 말한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발레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추구한 결과 지금 한국의 발레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을 쳐도 예술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