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뮤지컬 '천변카바레'의 가수‘배호’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뮤지컬 '천변카바레'의 가수‘배호’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6.11.2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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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올해도 11월이 지나갑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11월에 요절한 가수가 떠오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당신을,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 배호(1942. 4. 24 ~ 1971. 11. 7)를 생각합니다. 

그래도 2016년은 다행이었습니다. 당신의 노래에 중심으로 해서 만든 뮤지컬 <천변카바레>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산아트센터 Space111(2010년), 강동아트센터(2012년)에서 이미 공연한 바 있습니다. 작품의 소재는 무척 끌리나 구성(내용)의 허술함도 분명했었습니다. 특히나 강동아트센터는 이 작품을 공연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극장이었죠.

‘카바레’라는 공간을 연상하면서, 무대 위의 배우와 관객이 이른바 ‘뽕삘’로 교감을 해야할 공연이었는데, 전혀 그렇지 못해서 무척 아쉬었습니다. 

이번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은, 배호의 노래를 매개로 해서, ‘그 시대’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데뷔곡으로 알려진 <두메산골>(1963)을 비롯해서, 당신의 노래 중에서 이른 바 ‘히트 송’이라할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는 그 시대를 기억하기에 충분한 노래였습니다. 

뮤지컬 <천변카바레>에선, 1960년대의 히트가요 <맨발의 청춘>(최희준 노래), <서울야곡>(현인 노래), <쥐구명에도 볕들날 있다> (김상국 노래), <키다리 미스터김>(이금희 노래), <노란샤스의 사나이> (한명숙 노래), <커피 한잔> (펄시스터즈, 장미화 노래), <젊은 초원> (남진 노래), <거짓말이야>(김추자 노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배호씨. 1960년대 당시 ‘남성의 심볼’은 어떠했을까요? 그 시대를 살았던 남성가수 혹은 남성배우의 아이콘은 무엇이었을까요? 지나고 보니, 그 시대의 남성상에는 늘 ‘순정과 박력’이 연결됩니다.

서로 상반된 것은 이 둘이 한 사람에게서 겹쳐질 때, 당시의 여성들은 매력을 느껴던 거죠. 한국영화에선 신성일이 그런 역할을 했다면, 가요에서 당신도 그런 역할을 담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노래 중에서, <내 몸에 손대지 마라>(김인배 작곡), <누가 울어>(나규호 작곡)가 특히 그렇습니다. 거기엔 ‘순정과 박력’이 있습니다. 

이번 <천변카바레>를 보면서, 배호라는 가수와 함께, 작곡가 ‘배상태’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배호라는 가수가 대중음악계의 불멸의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배상태의 ‘불멸의 명곡’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가수로서의 이미지의 구축에, 배상태의 노래(작곡)가 큰 역할을 해준 것이죠. 

이번 <천변카바레>에는 등장하지 않은 노래로, <울기는 왜 울어>, <울고 싶어> <이 순간이 지나면>이 그런 노래가 겹쳐집니다. 배호의 많은 노래들은, 당시 젊은 남성의 방황을 대변해줍니다. 카바레(서울)에서 만난 ‘에레나’와 고향(시골)에 두고 온 ‘순심’ 사이에 존재하는 ‘춘식’을 통해서 말이죠.

배호의 모든 노래는, 1960년대의 살아가는 남성의 방황, 즉 농촌과 도시의 어느 쪽에 확실하게 끌리지 못하는 젊은 남성의 불안감을 노래를 통해서 드러내 보이더군요. 

가수가 부른 노랫말이 그 가수의 삶과 죽음과 연결된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누구가가 하는 말이죠. 어쩌면 그런 얘기의 출발은 ‘배호’ 당신부터일지 모릅니다. <영시의 이별>. <마지막 잎새>, <굿바이>는 요절한 가수 당신의 더욱더 애틋하게 만들어줍니다. 

1971년 11월 7일, 당신은 우리 곁을 훌쩍 떠났습니다. 당신이 만들어낸 이런 ‘순정과 박력’은, 당신과 겹쳐지면서도 후세대로 이어지는 남진과 나훈아에게 전해져서, 또 다른 꽃을 피웠습니다.

남진은 순정을, 나훈아는 박력을! 그들은 배호에게서 계승해서, 이를 1970년대에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측면에서도 당신은 1960년대 대중음악을 1970년대의 변화되는 새로운 환경으로 연결해주는 다리역할을 해주었네요. 

뮤지컬 <천변카바레>는 잘 만든 작품입니다. 제작(우현정) - 연출(김서룡) - 작가(박현향)는 <천변살롱>도 만들었습니다. 아쉽게도 <천변살롱>은 1930년대를 입체적으로나 사실적으로 그려내지 못했지만, <천변카바레>는 배호라는 가수, 춘식이라는 시골청년, 찰스라는 카바레 종업원을 삼위일체(같은 배우가 열연)시키면서, 시대를 잘 그려냅니다. 

지난 공연에선 최민철배우가 이런 역할을 잘 해냈는데, 이번공연에선 고영빈배우와 최형석배우가 열연을 했습니다. 배우로서의 ‘고영빈’의 진가를 이번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노래도 수준급이고, 춤도 딱이더군요. 이른바 ‘뽕삘’이 충만한 배우로서, 이 작품을 잘 살려주었습니다. 최형석배우도 더욱 기대됩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뮤지컬배우로서 굳건히 자리매김되길 바랍니다. 

이 작품의 스텝 중에서 특히 이경화(안무감독)에게 크게 박수를 칩니다. 대한민국 뮤지컬에서, 이 분의 안무가 더욱 빛을 보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배호씨, 그런데 사실 천변카바레에서 당신은 ‘안개’와 같은 인물입니다. 어쩌면 당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미스터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의 삶을 어설프게 그려내거나 왜곡되는 만드는 것보다는, 이런 방식이 어쩌면 더 영원히 당신이 궁금하고 그리워하는 계기가 될지 모릅니다. 그래요,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불렀고,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을 부른 당신은, 우리에게 영원히 ‘인개’처럼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해마다 11월이면, <천변카바레>를 보게 되길 바랍니다. 한국대중음악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1960년대를 새롭게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카바레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쇼 뮤지컬’을 지향한 <천변카바레>가 해마다 조금씩 다르게 변화되고 업그레이드되면서. 늘 우리 곁에 있길 바랍니다. 배호라는 가수가, 이렇게 우리 곁에 해마다 찾아와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