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시] 씻김굿/이행자
[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시] 씻김굿/이행자
  • 공광규 시인
  • 승인 2016.11.2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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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김굿
               이행자(1942~)


날마다 흔들어 헹구면서도
못다 헹군 죄 많아
저리 아름다운 월미도 일몰 앞에서도
죄를 씻는다 

그해 오월!
유인물 한 장 
복사해 돌리지도 못하고
숨어서 시랍시고 끼적거린 그 치욕
1970년 11월 13일!
노동의 불꽃으로 부활한 
전태일을 핑계 삼아 
시인이 된 부끄러움 

천지신명이시여!
내 영혼의 거멀못을
어찌 씻김 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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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광규 시인 /1986년 등단. 시집 <담장을 허물다> 등 다수 시집 출간. 2009년 윤동주문학상, 2011년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등.

거멀못은 그릇이나 나무가 터지거나 벌어진 것을 말한다. 화자는 무슨 원죄가 있어서 월미도 일몰 앞에서 죄를 씻는다고 한다.

원죄라는 것은 다름 아닌 1980년 5월 광주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났었는데, 거기에 직접 참여를 하지 못한 것은 물론 유인물 한 장 돌리지 못하고 숨어서 시를 쓴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노동열사 전태일을 핑계 삼아 시인이 된 부끄러움이다.

결국 화자는 천지신명께 이런 원죄를 고백한다. 자기 죄를 덥거나 모르면서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다. 청와대와 국회가 가장 심하다. 양심 없는 사회에 이런 시인이 있어서 다행이다. (공광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