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옥상 화백 "시대가 탄압한다고 주눅들면 예술가가 아니다"
[인터뷰] 임옥상 화백 "시대가 탄압한다고 주눅들면 예술가가 아니다"
  • 이은영 기자/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11.2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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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작가의 삶과 유리되지 말아야, 이웃에 봉사하며 에너지를 얻어라"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정부는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낸 예술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술인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각종 지원을 막는 등 불이익을 주려했다. 그 블랙리스트는 조윤선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보도되면서 우려했지만 설마했던 박근혜 정부의 '문화탄압'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예술인들은 분노했지만 그 분노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우리는 청와대가 인정한 예술인'이라며 당당히 싸울 것을 다짐했고 '왜 나는 블랙리스트에 없어? 난 예술인이 아닌가'라며 동참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의 이런 결심은 마침내 '역대 최대'인 7천449명의 문화예술인이 참여한 시국선언으로 이어졌고 지난 12일 130만명이 모인 촛불집회의 시발점이 되었다.

▲ '민중미술 1세대'로 불리는 임옥상 화백

'민중미술 1세대'로 불리고 있는 화가 임옥상. 군사 독재 시절 그림에 빨간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북한 찬양'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그는 지금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분노를 그는 검은 망토를 입은 퍼포먼스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기타 문제의 정치인들을 묻은 무덤을 그리는 작업으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에는 분노와 더불어 시대를 극복하겠다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 

관념에 빠지기보다는 거리에 나가서 이웃과 함께 하고, 멀리 떠나기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봉사를 할 것을 권한다는 임옥상 화백. 현실의 참담함에 분노하면서도 그 분노를 자유롭게 우아한 예술로 표현하고 있는 임옥상 화백을 만나보았다.


지난달 18일 '블랙리스트 예술행동'부터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검은 망토를 입고 얼굴을 가린 상태로 광화문광장에 나타났는데

블랙리스트라고 하면 아무래도 몸을 숨겨야하지 않나. 역설적으로 숨기면서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옷을 맞추는데 주목도 받고 그렇게 망토를 쓰고 나타나니 좋더라. 사실 어느 나라, 어느 정보기관이나 원래 성향 파악을 하기 마련인데 이처럼 야만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좋은 방향을 가지고 정보를 갖는 것과 우리나라처럼 시대의 바로미터인 예술가의 씨를 말리고 도태를 시키려는 방향으로 만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번 블랙리스트의 상위 랭커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차원적 방식으로 문화예술인들을 대하는 것에 정말 화가 났다. 나야 이미 박정희 정권부터 쭉 역대 정권에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관리는 계속 했을 것이다. 다만 그 시대는 나쁘게 활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예술가는 시대의 바로미터다. 시대가 탄압한다고 주눅이 든다면 절대 예술가가 아니다. 이는 행동을 해야한다 안해야한다는 문제를 넘어선 것이다. 나설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최순실,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땅에 묻은 무덤을 청와대 앞에 세우는 그림을 그렸다

1차적으로는 박근혜 최순실 등을 묻은 무덤을 그린 것이고 청와대로 상징되는 권력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을 한 것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붉은 색이 가진 힘과 열정을 동시에 표현하고 싶었다. '황토'라는 것은 우리에겐 큰 의미가 있다. 반항과 저항, 상처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열정, 피도 있고 땅이 가지는 에너지와 힘을 나타내고 있다. 색깔을 통해 생명력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여주고픈 의도가 있었다.

▲ 인터뷰에 응하는 임옥상 화백

굉장히 무덤을 정성스럽게 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변 동료분들이 '박근혜 무덤에 뭘 그리 정성을 들여'라고 말하는데도 꿋꿋이 그리셨는데(웃음)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

그림에 몰두할 때는 분노나 그런 것은 없었고 어떻게 해야만 그림이 완성될 지에만 집중하게 된다. 체조 선수들이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하잖나.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림의 완성에만 집중할 뿐이다.

'민중미술 1세대'라는 별칭을 얻었고 지금도 민중미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민중미술을 계속 추구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예술은 작가의 삶과 유리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나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나'가 있다고 보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한 번밖에 못사는 인생인데 살고픈대로 살아야하는 게 아니냐라는 생각으로 바뀔 수 있다. 그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거세게 반발한 게 지금까지의 나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를 보면 다른 나라와 달리 정치가 너무 인간을 억눌렀다. 지금도 유신 시대를 떠올리면 소스라치게 이상한 반응이 일어나는데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고 내가 이렇게 무기력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제 대학시절을 관통했다.

졸업을 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리려면 제대로 그리고 아니면 포기하자'고 다짐했다. 예술가로 살면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삶에 꺾여서 살겠느냐. 예술을 위해서라도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의 괴로움과 힘듦을 예술을 통해 대변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했다. 그것이 자유 의지였다. 

민중미술을 해오면서 대표적인 상업화랑인 가나화랑의 전속화가가 됐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민중미술과 상업화랑의 만남이어서 주위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때문에 일부 동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돈에 결국 굴복했다고 생각했겠지. 가나와 전속을 맺을 때는 계약을 한 것에 방점을 찍지 말고 학교를 벗어나 예술적 꿈을 이룰 방법이 무엇인제에 방점을 찍었다. 학교는 학사 일정 등이 있어 제약이 많았다. 그림에만 전념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이 때문에 나이가 든 작가일수록 포기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가나를 선택한 것은 그림을 제일 잘 그릴 환경과 여건을 선택해야한다는 절체절명의 선택이었다. 때문에 비난이 나오더라도 활동하면서 이후의 삶이 그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기를 바라고 제 나름대로는 원칙을 세워서 했다고 본다. 물론 평가는 후대 작가들의 몫이지만 말이다.

사실 계약을 했지만 전속작가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첫 개인전이 열렸을 때는 많은 분들이 작품을 사러왔는데 이후 그림을 바꾸니 사람이 오지 않았다. 그 후에도 그림을 산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웃음).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들은 다 팔렸는데 말이다. 내가 전에 그린 그림과 다르게 그린 것을 보니 사람들이 내가 그린 것을 모르고 그냥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내가 그럴려고 학교를 그만뒀나'라고 생각하며 또다시 다른 그림을 그렸다.

사는 사람은 한 작가가 먼저 그린 작품이 그 다음 작품과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그 표현은 작가의 아이콘이 된다. 미술은 결국 자기 그림을 자기가 카피하는 것이다. 그게 참 심했다. 자기 선행 논문 그대로 고쳐썼다고 표절 시비에 걸린 총리 후보자도 있었는데(웃음)...

난 그것을 거부한 사람이다. 왜 자기 그림을 그대로 그리는 건 괜찮고 자기 논문을 고쳐 쓰는 건 표절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안 한다. 상업에 들어갔다고 그것만 탓할 것이 아니라 상업 공간에서 얼마나 자신의 작품에 충실했느냐를 평가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 지난 4일 열린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임옥상 화백

민중미술이 지나치게 '이념'에 치우쳤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아마도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삶과 분리되고 사회와도 분리된 채, 그저 아무 관계없이 이념만 따라갔다면 그런 이야기가 가능하지만 그 밀착도가 충분하다면 '이념적'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다. 그렇게 안 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나는 예술가는 저자 거리에서 시작해야한다고 말한다. 내 주변 이웃들이 내 그림에서 아무것도 못 느끼고 감동을 못 느꼈다면 실패한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작가는 결국 관념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자기 그림에 삶을 맞추는, 이런 작품은 관심도 끌고 팔릴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겠다면서 그를 토대로 하는 작품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다.

나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시대가 바뀌고 사람의 요구가 바뀌고 나를 감동시키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새롭고 자유롭게 그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참고하고 싶지 않다. '이념의 작가' 라는 말 싫다. 차라리 현장의 작가, 시대의 작가, 널뛰는 작가(웃음) 이런 말이 좋다. 새롭게 나를 확장시키고 내 자신을 새로운 실험과 도전에 몰아넣으려 항상 노력했다. 

최근 민중미술이 상업갤러리에서도 많이 전시되고 있다

일단 이명박근혜 시절 동안 가위눌려왔잖나. 일반인들은 못느낄 정도로 문화예술계에 대한 압박이 심했다. 더 살기 어려워지고 삶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박해를 받았다. 공연계는 더 크게 영향을 받았고 시련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문화예술 쪽에서 사람들의 숨통을 여는 요소가 있지 않나. 일상 속에서 쳇바퀴돌듯 돌아가지만 우리가 하고자하는 말을 대신하고 풀어주고 있구나라는 사회적 측면이 우선 이유라고 본다.

그리고 국제미술의 시선으로 보면 일종의 신상품이다. 최근 중국이 새로운 블루칩이 됐는데 중국 민중미술의 경우 국가의 통제력이 엄청 강해 우리 식의 저항을 할 수가 없기에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게 됐고 화교들의 돈이 집중적으로 흘러가면서 알려졌다.

우리 민중미술은 중국과 다른 면모가 있고 심지어 우리의 전통 미술에 가까운 단색화와도 차이가 있다. 사실 서양에서는 민중미술이 더 먼저 알려졌다. 단색화에 익숙해있던 이들이 '아, 한국에는 민중미술이 있었지'라는 것을 알고 단색화에 맞선 미술에 국제적인 관심이 더 몰린 것이다. 단색화는 뿌리가 추상화에 있다보니 서양인들도 쉽게 보고 이해하지만 민중미술은 거칠고 억세면서 역사를 알아야 진위를 알 수 있기에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사실 한국 민중미술은 서양인들이 이해할 시간도 필요하지만 개런티가 부족하다는 측면도 있다. 그림을 샀다가는 갑자기 세무조사를 당하고 찍히지 않을지하는 걱정이 이유인 것 같다. 민중미술이 뜬다고는 하지만 큰손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주춤한 부분도 있다. 이번 게이트 때문에 어떻게 될 지는 아직 모르겠다.

공공미술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제가 기획하고 만들어서 공공미술의 개념을 세워나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법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제한도 없고 해봐야 의미도 없다. 물론 그렇게 안하는 건 아니지만 사회적 요구가 있거나 빈 구석이 보이면 '이런게 있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한다.  현재 사회에 맞는 미학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닌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으로서의 미술이 공공미술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제안한다.

시국이 참 어수선하다. 이럴 때 예술가는 어떻게 움직여야할까?

예술의 존재 이유는 '잉여'다. 사회에서 경제 활동 후 남는 돈이 있을 때 그 돈으로 그들이 못하는 일을 해달라는 것이 예술이다.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 예술이다. 잉여를 받으면 당연히 사회에 갚는 것이 윤리상으로 맞다. 그렇다면 소속된 사회, 지역에서 뭔가 예술가로서 기여를 해야한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가족, 이웃, 집단에 대한 예술적인 뭔가를 보여야한다. 그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후배들을 만나면 '봉사할 생각 있느냐'라는 말부터 시작한다. 봉사를 손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결코 무상으로 주는 것이 아니다. 해보면 되돌아오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일단 봉사를 하면 최소한 굶지 않는다. 그동안 소외됐던 사람들이 '젊은 사람이 참 대단해'라며 칭찬을 하고 등을 두들겨주며 격려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힘이 나겠나. 이런 에너지를 모으는 이가 예술가다. 에너지를 스스로 모으지 못하고 동력으로 못쓰는 이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예술가라는 이들이 자꾸 꼭대기만 바라보니 일이 안 되는 것이다. 난 저변을 보고 자기를 다져야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괜히 '세계 동향' 운운하며 돌아다니지 말고 내 주위의 이웃들과 어울리며 봉사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찾는 게 더 빠르다. 사실은 봉사라기보다는 그들에게 배우고 그들 속에서 꿈을 키우는 것이다.

▲ 작업 중인 임옥상 화백

지금 미술계가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다. 민미협 회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최근 한국미협이 미협 자체만을 위한 이익단체로 전락한다는 성토가 있고, 너무 뒤숭숭하다

뭐든지 과유불급이다. 이익단체가 되면 안된다. 물론 예술가의 힘을 만들려면 집단이 필요하고 집단이 의기투합해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숫자가 많은데 왜 우리를 우십게 여기냐라고 나온다면 그것은 집단 이기주의이며 사회악이다. 

오래된 집단일수록 그 집단을 장악한 이들이 다수에게 횡포를 부리는데 이를 경계해야한다. 정예유착이 문제다. 이는 유신 시대부터 이어진 것이다.

몇 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실망스러운 일이 있었잖나. 작가들의 작품이 내려지는 일이 벌어졌는데 미협이나 여러 곳에서는 왜 서울대가 독점하느냐만 이슈로 부각시켰다. 작가들의 그림이 부당하게 내려진 것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단체에 속한 이들이 성토대회라고 한 것도 독점 문제만 말했을 뿐이다. 이건 미친 거다. 숟가락 얹기에만 골몰한다.

한국미협이 다른 모습을 보여야하는데 이미 공공연하게 회장이 되려면 얼마를 써야하고 그 돈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한다는 것이 다 나오고 있다. 그게 무슨 예술협회인가? 넘지 말아야하는 선이 분명히 있다. 그것을 어떻게 정하느냐. 개인의 소양과 자기성찰, 반성이 계속되어야한다. 그런데 그것을 안하고 넘어가는 이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소위 '문화예술 권력'의 갑질 또한 비판의 대상이다. 몇몇 예술인들의 성추행 사건도 나오고 있고

창피하다. 정말 그 말밖에 안 나온다. 우리들을 보면 '이 정도 권력이 있으면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지'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작은 권력을 가지고 돈이니 성추행이니 이상한걸 요구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나. 사회 자체가 이미 썩을대로 썩었다. 문화예술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문화예술계가 더 비판을 받는 것은 '너희들마저...'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깨끗하다고 믿었던 곳에서, 존경받고 어느정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그런 짓을 하니 그 실망감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지. 그것은 비난이 아닌 경종의 메시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도 반성을 한다. 제대로 나를 지키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어느날 갑작스럽게 생각이 변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모습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어차피 사회가 바뀌어야하는데 뭔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려는 기운이 만들어져야한다. 스스로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작가 스스로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스스로 가지고 결단해야한다. 작가는 윤리를 잊으면 안된다. 자기 스스로 지킬 인간적 도리를 하는 것이 윤리 의식이다.

지금 시국에 대해 한 마디 해 달라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야한다. 벌써 물러나야했다. 또 행동하지 않고 게산만 하는, 정치를 모르는 정치꾼도 같이 물러나라. 광장에 나오고 광장에 못나온다면 몸을 싣는 태도라도 보여야한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행동하라. 예술과 사회는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다 통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아직은 모르지.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웃음). 다만 삶과 유리된 작업은 안 된다, 이것이 예술적으로 성공적인 것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대중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가져야한다. 힘든 부분이지만 그러면서 예술이 되니까. 자기 예술에 치이지 말고 행동하는 예술이 되라. 행동하게 될 경우 내 예술이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나는 행동하는 쪽을 선택한다. 나는 사회 속 한 인간으로 떳떳하게 살고 싶다. 

사회에 대한 기여, 참여를 위해서라면 설치도 좋고, 퍼포먼스도 좋고, 그림도 좋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유스럽게 표현하고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참, 올 겨울 내내 그릴 대작을 준비하고 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마 내년 봄이면 제2의 <게르니카>가 나올 것이다. 기대해 보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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