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은 예술인 생존 조건, 진지하게 고민해야”
“작업실은 예술인 생존 조건, 진지하게 고민해야”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11.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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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 “복지의 문제이자 의지의 문제”

제8회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 '최소한의 창작조건, 예술가의 작업실'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시청 신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최근 예술계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었던 '젠트리피케이션'과 '예술인 복지'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지속 가능한 창작환경 조성을 위한 예술인 지원의 정책적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 지난 23일 열린 제8회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

특히 그간 '예술인 복지'에 대한 논의는 이어져왔지만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한 논의는 이번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많은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았고 이를 반영하듯 이날 대회의실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과 예술 전공 학생들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먼저 영국의 부동산 개발 디렉터인 데이빗 팬톤은 전문 부동산업체 및 자선 주택 조합으로 '작업실 제공의 개척자'로 불리는 Acme가 정립된 과정을 통해 영국 런던의 사례를 소개했다. 팬톤은 "서울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영국은 이미 몇십년 전에 겪었다. 부지 가격이 늘어나면서 예술가들이 더 저렴한 곳으로 밀려간 것은 영국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1994년 국가 운영 복지기금이 생기고, 이 기금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예술분야가 이용이 가능한 조건으로 Acme가 전통적인 단기 부동산 관리 모델을 활용해 수백 명의 예술가들에게 주거 및 작업 공간을 제공해 성공적으로 운영했지만 임대료 유지 및 현금 보유 문제 등이 있어 예술가의 장기적인 안정을 보장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1996년부터 예술위원회 보조금으로 건물 매입 및 전환, 개발자가 된 예술가들의 교차 보조, 정책과 연관된 파트너쉽 획득 등이 이루어지는 등 '전환기'가 왔다는 점을 들면서 "사회와 문화, 기업이 각각 'Win Win Win' 으로 창의작인 협업관계를 구축하고 자선 기관 및 정부 기관으로부터 획득한 자금을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인프라에 사용하는 '문화적 토지신탁(Cultural Land Trust)'이 제안되고 있다"고 밝혔다.

▲ 영국의 사례를 발표하는 데이빗 팬톤 디렉터

전 시카고 문화부 도시문화기획과 프로그램 매니저인 바바라 코에넨은 "젠트리피케이션이 몇십년간 반복되던 중 1999년 리처드 달레이 당시 시장이 문화 담당관에게 '예술가들의 주거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예술가들에게 저렴한 공간을 제공하는 전략에 대한 연구 및 개발을 16년동안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시카고는 2003년 '시각 예술가를 위한 전략' 보고서를 통해 예술가들을 위한 중앙 정보 공급소 구축,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 지원 프로그램 활성화, 시 예술가 위원회 창립, 국내외에서 '시카고 기반 예술가'를 추진하고 전국적, 국제적인 홍보 등을 권고했다고 코에넨은 말했다.

코에넨은 예술가들이 주도한 'ACME 프로젝트'와 시가 주도한 '스위칭 스테이션 아티스트 로프트', 그리고 두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시와 예술가, 개발업체가 협력해 예술가들의 생활 및 작업 공간 90곳과 작업 공간 50곳을 추가로 만들었다고 밝힌 뒤 "예술인들에게 생선을 주기보다는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매년 '시카고 하우징 엑스포' 등 프로그램을 만들어 DIY(Do It Yourself! 스스로 하기)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르본대학 언론정보학과에서 출강 중인 박지은 박물관학 박사는 프랑스의 사례를 소개했다. 박 박사는 "프랑스의 경우 조형예술가는 타 분야 예술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어 조형예술가들의 사회복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예술가의 집' 협회와 '작가사회보장경영협회'이며 여기에 소속되어 있고 프랑스에 합법적으로 기본거주지를 두고 있으며, 전문적 예술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조형예술가라면 사회주택신청 등록을 하고 아틀리에를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박사는 “파리의 아틀리에 숫자가 1,500~1,600개인데 신청 및 대기자가 천여 명이 넘는 수요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의 할당 리듬으로 보면 평균 34년을 기다려야 파리에서 아틀리에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아틀리에 정책이 주거 공간에 관련된 부분이다보니 모든 운영이 문화정책분야가 아닌 거주정책분야로 넘어가 원활한 관리가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아틀리에 건축이 주로 저렴한 월세 거주 공간인 'HLM'과 연관되어 있고 이 곳의 입주 조건이 ‘소득수준의 상한선’이다보니 “공간을 잡으려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오히려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야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이 때문에 예술 활동보다는 소득 수준이 더 중요한 요소로 간주될 수 있다”고 박 박사는 밝혔다.

▲ 망원동 '레인보우큐브'의 김성근 대표

박 박사는 “예술가들이 공공 아틀리에 지원을 기다리기보다 자체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룹이나 협회를 조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면서 “파리 시와 일드프랑스 지방의 지원으로 대안적 공공 아틀리에 형태인 ‘아틀리에 엉 꼬맹’이라는 공간이 생겼다. 공공시설 운영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하나의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밝혔다,

김경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 교수는 “예술인들은 기본적으로 개별 작업을 선호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 집적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이벤트에 대한 정보와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하기에 예술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거처를 두고 싶다는 것”이라면서 “한 권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면 해당 권역의 공간적 범역이 넓어지고 새로운 예술인 창작공간 클러스타가 출현한다”고 밝혔다.

그는 “외국처럼 예술인들의 수요를 보다 잘 파악할 수 있는 민간조직의 예술인 창작공간 개발 및 운영 활성화 정책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 민간에 인센티브나 건설비용 일부 보조(금융지원) 등의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다"면서 ”이는 복지의 문제이자 의지의 문제이지만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토론회에서는 망원동 공동작업실 ‘레인보우큐브’의 김성근 대표와 문래동 독립 미술 공간인 ‘공간 사일삼’ 운영자인 미술작가 김꽃이 참석해 공간 운영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김 대표는 작업실이 합정동에서 망원동으로 옮겨진 과정과 과거 창고 용도의 건물을 샀다가 단열이 안 돼 겨울에 물이 언 이야기 등을 전하면서 “2017년 2월부터 건물주 사정으로 임시로 작업실 공간을 비워야한다. 아직은 건물주와 관계가 원만해 다시 그 곳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속 유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작업실은 최소화의 생존 조건”이라고 말했다.

김꽃 작가는 “결국 착한 건물주를 만나야하고 건물주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개인이 노력해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우리는 문제의식과 대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많은 고민을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토론회 참여자들. 왼쪽부터 김꽃 작가, 김성근 대표, 김경민 교수, 사회를 맡은 이동연 교수, 박지은 박사, 미국의 바바라 코에넨, 영국의 데이빗 팬톤

이어 진행된 상호 토론에서 한 방청객은 “자신은 아내와 아이가 있다. 예술가의 작업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은 보이지만 그 가족들의 삶도 생각해야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데이빗 팬톤은 “좋은 지적”이라면서 자신들도 예술가들의 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김꽃 작가는 “지역이 예술인과 함께 성장한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냥 예술인과 있는 것이다. 예술과 지역은 상생하기 어렵다”면서 “부동산 제도의 문제 등 각종 제도적인 문제를 고민해야할 것이다”라면서 지역이 경제 논리만이 아닌 진정한 상생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