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의 비평의 窓]독일 베를린필홀 입성한 경기도립국악단의 쾌거
[탁계석의 비평의 窓]독일 베를린필홀 입성한 경기도립국악단의 쾌거
  • 탁계석 음악평론가
  • 승인 2016.12.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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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글로벌 시장 개척의 가능성 확인, 서양인들도 신명나게 즐겨

지난 9일 저녁 '클래식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베를린필하모니캄머홀의 환한 조명아래 경기도립국악단이 섰다. 이 홀이 생기고 첫 손님을 맞은 한국의 국악 관계자들의 모습에는 설레임이 넘쳐났다.

객석에는 한복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그 중에는 독일인도 있는 듯했다. 이처럼 국악단의 베를린 입성은 여러 시각에서 상징성과 의미를 함축한 기념비적인 연주회였다.

▲ 제 1회 박영희국제 작곡상 수상자

이 공연은 재독 작곡가인 박영희 작곡가의 이름을 내건 제 1회 박영희 작곡상을 기념하며 베를린한국문화원이 주최한 공연으로 이곳 대사를 비롯해 문화원장, 박영희 작곡가, 심사를 맡았던 이건용 교수, 경기도문화재단 대표 등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가야금 소리나 판소리 경기민요를 부르는 창에 까지 소리가 명확하게 잘 들리는 이상적인 음향 공간의 울림이 집중력을 배가시켰다.  난생 처음 듣는 이들에게 국악은 호기심 그 자체였지 않을까 싶다. 작곡상을 탄 이예진의 관현악곡 ‘기우제’ 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독일인도 있었다. 콜롬비아 수상자는 클라리넷과 가야금 이중주를 썼다.

최상화 지휘자는 한복을 입고 등장했는데 관현악이 흘러나오던 전통의 공간을 국악의 공간으로 바꾸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 지휘자는 차분하면서 안정적으로 무대를 이끌어 갔고 한복과 갓으로 한국적인 캐릭터를 강하게 남겼다.  사물놀이의 경우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넘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관객들은 일단 신명을 느끼며 환호했다.

박영희 작곡가는 “서양 오케스트라처럼 우리 국악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오늘이 그 출발이란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우리 국악이 세계의 음악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레퍼토리를 추가할 수 있기 위해 많은 시도를 통해 발전해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경기도립국악단

지난 달 경기도립국악단은 지휘자 페렌츠 가보(Ferenc Gabor)와 함께 ‘페르귄트’ 조곡 연주를 시도했고  2년여 동안 추진한 ‘치세지음’ 프로젝트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마냥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라는 국수주의적인 애국심 발화가 아니라 국악 현대화를 위해 필요한 충분조건들을 충족하기 위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었기 때문에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단원들의 이해와 자발성을 끌어내기 위해 현대 교칙본을 만드는 등 깊이 있는 접근으로 그동안 말로만 무성했던 논쟁들을 불식시키는 해법을 제시한 것도 성과라 하겠다.

‘전통’ 그대로의 것을 보존하고 알리는 것 못지않게 현대 감각과 글로벌 시장에 적응력을 키우는 경쟁력과 상품성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기에 경기 국악의 행보는 그저 한 단체의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베를린과 스톡홀롬의 공연을 통해 단원들이 자긍심이 한층 높아진 만큼 치세지음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베를린필캄머홀에서 보았듯이 극장 음향의 중요성이 국악의 현대화에 중요한 관건이란 점에서 경기도 내에도 전용극장이 마련되길 바라고 전국의 국악단들이 공동으로 국악현대화에 소통하는 워크샵을 개최하면 좋을 것 같다.

이울러 국악을 배우고 싶은 해외의 요구와 실제 작곡을 하고 있는 해외 작곡가들에게도 적극 문호를 개방해 우리 음악에 관심을 늘려갔으면 한다. 이번에 베를린 한국문화원이 박영희 작곡상을 제정하고, 행사를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것 역시 해외문화원의 존재 의미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향후 방향성을 보여 준 것으로 보인다.

그간 우리는 오랜 서양음악의 수입 구조하에 서양음악과 국악은 반목하거나 남의 동네로 여겨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국악도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받고 당당히 표현될 수 있는 시대로 변하고 있음은 우리가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보다 국악과 양악이 서로를 존중하며 보탬이 될 있는 조화와 상생을 모색해야 할 타이밍이다. 이럴 때 만이 우리의 찬연한 전통의 가치가 빛날 것이고 문화영토 확장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보다 우수한 작품을 만들고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구촌에서 하나뿐인 우리의 메뉴를 개발해 한계에 빠진 서구문화에 오리엔탈 미학이 추가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최상화 지휘자의 예술적 리더십에 경기문화재단의 추임새 지원이 일궈낸 국악의 신명이 꺼지지 않고 더욱 정교하고 멋진 현대 예술음악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