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2016 홈리스 추모문화제”
빗속,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2016 홈리스 추모문화제”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6.12.22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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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 함께 살아갈 권리 외치며 팥죽 나눔행사 진행

지난 21일 서울역광장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쓸쓸한 삶과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2016년 홈리스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시민분향소가 마련되어 서울역광장을 오가는 시민들도 분향과 헌화를 하는 추모제로 진행됐다.

▲ 홈리스 추모제 위패와 헌화할 국화꽃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죽음에 이른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을 사회에 알리고, 다함께 추모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홈리스의 복지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 홈리스 추모제 제사상

우리나라에서는 IMF 경제위기 이후, 한,두사람이 서울역에서 노숙 하면서 홈리스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거시설 없이 주로 길거리나 일시적인 보호시설, 공공의 장소 등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사회의 멸시를 받아왔다.

▲ 한 노숙인이 절을 한후, 친구이름을 부르며 울부짖고 있다.

이들 노숙자들은 소득의 양극화와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구조로 인해 점점 거리로 나와 홈리스를 자청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이들의 끈끈하게 맺어진 인간관계는 어떤 동지애보다 진하다.

▲ 한 노숙인이 비를 맞으며 앉아있다.

이날 다함께 즐기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나눔행사로는, 노숙탈출, 가능하다고!!! 윷놀이, 변호사들이 진행하는 홈리스 법률상담, 홈리스 사진관을 운영했다. 이들은 참여하면서 서로 즐거워하고, 진지하게 법률상담을 받고,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듬어 사진을 찍는등 서로를 위해주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 쪽방촌사람들과 노숙인들이 펼치는 윷놀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할 무렵에는 동지팥죽 나눔 행사에 많은 쪽방촌과 노숙인들이 참여했다. 동지팥죽을 한그릇씩 나눠먹는 것을 통해, 암울한 현실 속에 시린 겨울을 살아갈 이들과 따뜻한 음식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홈리스 벌률상담은 명의도용 피해등 무료상담으로 진행.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가 세차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상호씨의 공연,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에서 나온 이현의씨가 추모사를, 희망공간 거리의 아빠들합창단의 공연, 이정훈씨의 연대발언을 이어 의료, 주거, 노동, 추모에 대한 투쟁발언, 민중가수 박준의 공연으로 빗속에서 진행된 “2016 홈리스 추모문화제”를 끝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 홈리스 사진관에서는 찍는사람에게는 즉석에서 사진을 빼주었다.

서울역은 서울의 관문이다. 1900년 경성역으로 시작해 5년후에는 남대문역으로 변경되었다가 1946년 광복 1주년을 맞아 서울역이라 부르게 되어 하루평균 9만여명이 이용한다. 서울역은 현재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건축물 중 가장 뛰어난 외관을 갖고 있는 사적지다.

▲ 동짓날 팥죽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먹었다.

108년의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서울역광장에서 “빈곤과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다 함께 살아갈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43개의 단체가 홈리스 추모제를 개최했다. 올겨울 들어 동자동 쪽방에서만 24명이 사망했다. 이날 서울역광장 ‘2016 홈리스 추모제’에 차려진 무연고자도 40여명인데 영정사진 없이, 형체 없는 얼굴이 대신하고 있었다.

▲ 자본주의의 위상아래 진행된 홈리스의 추모제

이날 홈리스 추모제는 돌아가신 홈리스들의 넋을 추모하는 것을 넘어, 홈리스의 복지지원체계문제, 홈리스의 사회적 죽음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여 이와 같은 현실을 개선하고자 동짓날 따뜻한 동지팥죽을 나누는 행사였다.

▲ 촛불로 하트를 만들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실 이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거리에 있는 사람은 쪽방 촌으로 들어가길 원하고, 쪽방에 사는 사람은 월세 방이라도 얻어 나가고 싶어 하지만,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쪽방이나 거리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무관심과 편견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이들 또한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인식변화가 절실하다고 본다.

▲ 안상호씨가 빗속에서 노래 하는 모습

도시빈민들의 터전인 동자동에만 1400여명이 살고 있어 서울지역에서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다. 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서울역 맞은편 빌딩 사이로 쪽방 촌이 곳곳에 있는데도, 자본주의가 블라인드로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 외국인이 노숙인의 손을 잡아주며 얘기중 ...

2016 홈리스 추모제를 지켜보면서 홈리스의 죽음이 개별적인 죽음이 아닌 우리가 방치한 죽음이란 생각을 했다. 그들도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 때문에 빈소를 빌리지 못한 채 무연고사망자로 방치될 수밖에 없다. 홈리스의 평균수명이 48세에 불과하지만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세다. 이들을 비교하면 홈리스의 죽음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빗속에서 홈리스 추모제에 참여한 시민

사회적 제도에서 배재된 채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에 홈리스의 죽음은 자연사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내쫒기지 않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내몰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의지를 보인 이들은 “홈리스는 살아있다. 괄시받지 않는 한해가 되고, 새해에는 노숙인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