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려는 중재자' 훈데르트바서를 만나다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려는 중재자' 훈데르트바서를 만나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12.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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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전시, 그림과 건축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운 삶'

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려는 중재자, 직선을 경멸하고 곡선을 사랑한 예술가. 훈데르트바서(1928~2000)를 압축해서 설명하라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끊임없이 모색하며 작품 활동을 해 온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이 지난 14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그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잃었고 유태인인 어머니와 외가 친척들은 나치의 유태인 말살 정책으로 모두 희생됐다. 잔인한 세상을 경험한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직선을 '경멸'했다고 한다.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훈데르트바서에게는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 훈데르트바서 <아라비안 여인>

이번에 전시된 그의 회화들과 건축 모형, 그리고 사진들은 바로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훈데르트바서의 마음을 가감없이 전하고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마치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때로는 대놓고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하고 때로는 마치 숨은 그림찾기처럼 사람의 얼굴로 착각하는 표현을 보게 된다. 그가 그리고자 하는 세상에는 어떤 모습이던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다.

▲ 훈데르트바서 <야간 기차>

그는 결코 세상을 홀로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 사람과 배경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평화로운 삶이라는 것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려는 중재자'라는 별명을 가진 이유는 그가 내놓은 건축물 모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만든 아파트 모형은 그저 높게, 획일화된 모양으로 똑같이 짓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마치 언덕처럼 만들어진 아파트의 모형,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아파트 옥상은 말 그대로 언덕길이다. 나무와 풀이 있는 언덕길말이다.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어진다. 이런 곳을 보고도 '땅값' 생각하는 속물적인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 나선형의 아파트 모형
▲ 관광 명소가 된 쓰레기 소각장의 모형

쓰레기 소각장은 훌륭한 관광 명소가 됐다. 혐오 시설을 작가는 밝은 색체의 건물로 리모델링한다. 이곳이 쓰레기 소각장이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엄연히 이곳의 이름은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이다. 소각장이 아름다운 관광 명소가 된 것이다.

길거리에서 서슴지 않고 작업을 하고, 빈 병으로 집을 장식한 훈데르트바서의 사진을 보면 예술가의 느낌보다는 조금 별난(?) 할아버지의 느낌이 더 든다.  그는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 빈 병으로 집을 장식한 훈데르트바서

그렇기에 그는 마음껏 고정관념을 벗어나 다양한 모양의 작품을 내놓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작가인 클림트나 에곤 쉴레와는 또다른 느낌의 작품, 얼핏 괴상해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더 친근해지고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훈데르트바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저눈 부엽토가 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관 없이 나체로 마오 테이어 로아의 제 땅에 제가 직접 심은 밤나무 아래 묻히고 싶습니다"라며 죽어서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남고 싶어했던 훈데르트바서. 자유로운 한 영혼이 전하는 자연과의 대화. 훈데르트바서의 이번 전시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그림에서 오히려 작가의 천진난만함을 느끼게 하는 즐거운 선물이다. 

▲ 직접 만들어 사용한 부엽토 변기

추신 : 훈데르트바서가 직접 만들어 사용한 환경친화적 '부엽토 변기'가 전시장에 있다. '그분'이 혹시 이 변기를 좋아하실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