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별곡 8백리, 강원도 고성
관동별곡 8백리, 강원도 고성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8.2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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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비극이 남긴, 때 묻지 않은 자연에서 노닐다

벌써 8월이 지나가고 9월의 문턱에 들어서려 한다. 한 해의 2/3가 지나가버린 이 시점에 새해의 다짐은 온대 간대 없고 야속한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간다. 헤이해진 마음 다 잡기 위해 사람들은 흔히 ‘여행’이란 걸 떠난다.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다.

▲ 건봉사

하지만 굳이 돈 들여 멀리 갈 필요 없다. 지난 올해를 돌아보고 남은 올해를 다시 계획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면 서울에서 3시간 만에 갈 수 있고, 서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탁 트인 바다를 달리며 천혜의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이끌려 모든 고민과 번뇌는 내려놓게 되는 곳.

강원도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동해의 긴 해안선을 타고가면 남과 북이 맞닿아 있는 남한의 최북단, 바로 ‘강원도 고성’이다.

동해안 일출의 절경으로 꼽히는 청간정, 천학정을 시작으로 송림과 해당화가 어우러진 철새도래지 화진포와 잘 정돈된 산책로와 오토캠핑장이 있어 자연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송지호, 31명의 스님이 등공하셨다는 전국 4대 사찰 중 하나인 건봉사, 금강산이 지척에 보이는 통일전망대까지... 한 번 가면 돌아오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관동팔경 가운데 제1경인 고성의 ‘청간정’은 동해안 일출의 최고 명소로 손꼽힌다. 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팔작지붕의 아담한 누정에 올라서면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끝없이 펼쳐지는 동해의 맑고 푸른 바다가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을 전한다. 뭉게구름처럼 일다 안개처럼 사라지는 파도소리만 듣다보면 어둠이 짙게 깔린 고요하게 잠든 수평선을 조용하게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일출의 장엄함에 숙연해진다.

▲ 천학정 일출

청간정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천학정’ 또한 아름다운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교암리 마을 앞에 100년 이상이 된 소나무가 우거진 조그마한 산 속에 천혜의 비경을 숨기고 있다.

동해바다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의 천학정에서 바로 본 동해는 남쪽으로 청간정과 백도를 마주보고 북으로는 능파대가 펼쳐져, 대자연이 선사하는 드넓은 동해의 풍요로움에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천학정의 아름다운 비경을 뒤로하고 7번 국도를 타고 위쪽으로 내달리면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송지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둘레 6.5km, 수심이 5m에 달하는 자연호수로 죽도와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고, 깨끗한 백사장과 청명하고 맑은 물과 얕은 수심으로 화진포와 함께 해변의 최적지로 손꼽힌다.

바다와 호수가 만나는 동해안의 몇 안 되는 석호로, 도미·전어·잉어 등의 민물고기가 많아 낚시꾼들의 명소이며, 백조(천연기념물 201)의 도래지이기도 하다. 더불어 잘 정돈된 산책로와 오토캠핑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단체 캠핑도 가능하며, 주변에는 해양심층수연구단지와 철새관망타워, 그리고 자연생태학습관이 있다.

▲ 송지호
송지호 뒤편, 오봉산 아래에 있는 전국 제1호 전통건조물보존지구인 ‘고성왕곡마을’도 한 번 가볼만하다. 현재 오봉1리로 불리는 이 마을은 오봉산의 5개의 봉우리로 인해 한국전쟁 중에도 폭격을 한 번도 당하지 않아 19세기 전후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 21동이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다.

100년 된 가옥들은 옛 부유층의 북방식 ㄱ자형 겹집구조(양통집-추위를 이기기 위한 구조)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됐다. 집마다 굴뚝 위에 항아리를 얹어 놓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마을에서는 민박도 가능하며, 매월 10월 중순에는 민속체험행사도 열린다.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붙여진 ‘화진포 호’는 동해안 최북단 해변으로 기암괴석이 신비의 극치를 이루고 광활한 호수 주변으로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수려한 자연풍광을 자랑한다. 둘레 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 위로 수천마리의 철새와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가 하늘과 바다를 가로지르며 자유롭게 날개 짓하고 물 위에서는 귀여운 청둥오리 가족들이 한가로이 나들이를 즐긴다.

수만 년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화진포 해변은 드라마 ‘가을동화’의 마지막 장면의 배경이 되기도 했으며, 주변경관이 빼어나 근대 정치가들의 ‘별장’이 많다. 이승만 초대대통령 별장 및 화진포기념관, 이기붕 부통령 별장, 김일성 별장이라 불리는 화진포 성 등은 현재 근대 정치사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화진포
또한 화진포 일대에는 청동기에서 철기시대에 이르는 선사유적과 고인돌을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동해안 최초, 최대 규모의 ‘화진포 해양박물관’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바다와 잘 어울리는 하얀 선박 모형 건물 안에 세계 희귀종을 포함한 1500여종 4만여 점이 전시된 패류전시관, 상어와 대형 가오리 등 300여 마리의 어류들의 움직임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180도 해저터널 등은 어른들의 시선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화진포와 송지호 외에도 동해안 56km를 따라 삼포, 봉수대, 백도, 죽도 등 26여 개의 해변이 즐비해, 곳곳에서 윈드서핑, 파도타기,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수상 레포츠와 바다낚시 등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특히 암반지대가 풍부하고 물이 깨끗해 다양한 어류를 볼 수 있으며, 비치다이빙, 보드다이빙, 방파제다이빙 등이 가능한 수중지형으로 국내 다이버들에게도 소문난 곳이다.

화진포 인근에는 있는 명태의 황금어장인 ‘거진항’은 고성의 대표적인 항포구들 가운데 가장 크고 볼거리가 많다. 천혜의 어항으로 불리며 명태 뿐 아니라 고성만의 별미음식이 다양하며, 매년 2월 ‘고성명태와 겨울 바다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새벽녘 거진항에 가면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고 방금 건져 올린 싱싱한 생선들이 입맛을 자극한다. 하지만 해질 무렵 항구는 조심해야 한다. 멀리 노을이 비치는 수평선 가까이 떠있는 배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마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거진항에서 살짝 7번 국도를 벗어나면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 남쪽 끝자락에 ‘건봉사’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 법흥왕(520년)때 지어져 설악산 신흥사, 백담사 등 9개 말사(末事)를 거느렸던 전국 4대 사찰 중 하나로, 건봉사가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 건봉사
전 세계에 단 2개뿐이라는 부처님의 진신사리 하나를 모시고 있으며, 신라 원성왕 3년(787년) 31명의 스님들이 만일(27년 5개월)의 정진으로 육신이 살아있는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올라 부처님의 연화세계인 극락세계로 올라갔다는 등공대가 있어 유명하다.

더불어 무지개 모양의 능파교(산영교-보물 제1336호)를 건너면 양쪽에는 십바라밀(열반을 위한 10단계 수행)을 형상화한 상징기호가 5개씩 새겨진 돌기둥이 맞이하며, 1920년 지어져 6.25의 피해를 유일하게 면한 불이문(不二門-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로 다르지 않음.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이 옛 건봉사터(강원도 기념물 제51호)에 남아 천년이 넘는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한 건봉사 초입에는 조선시대 석조 다리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석교 육송정 홍교(보물 제1337호)도 만날 수 있다. 이곳 건봉사에서는 템플스테이도 가능하다. 다양한 테마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매월 2·4주마다 운영되는 ‘민통선으로의 여행’ 템플스테이는 고성 건봉사만의 이색 체험이다.

예불, 등공대 참배, 발우공방 등으로 구성한 ‘건봉사로의 여행’과 부처님 사리친견, 포행, 명상 등을 통해 숨 가쁘게 살아온 고달픈 인생을 잠시 쉬어가도 좋을 것 같다. 바쁜 도심 생활을 떠나 경건한 마음으로 모든 번뇌와 망상을 내려놓고, 나를 버리고 욕심을 비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강원도 고성까지 와서 금강산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DMZ 내에 있어 몇 가지 절차가 필요하긴 하지만 2004년 12월 개통된 동해선 남북연결 도로로 ‘금강산 육로관광’이 가능하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고성과 북고성으로 갈라져있는 고성의 남쪽에는 세계적인 명산 금강산과 동해안 일대의 감호, 구선봉, 삼일포, 해금강이 있다.

▲ 금강산
그 가운데 금강산 육로관광은 금강산 관광의 출발점으로 외금강 휴양소 일대의 온정리와 해금강만 할 수 있다. 만물의 형상을 한 기암괴석이 물 위에 늘어서 있어 붙여진 해금강의 해금강문에서 입석까지 관광할 수 있어 배를 타고 물밑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한 바다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계획 없이 갑자기 온 여행이라 육로관광이 어렵다면 DMZ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m 고지 위의 ‘통일전망대’에 올라 금강산의 구선봉과 해금강줄기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래자. 맑은 날에는 신선대, 옥녀봉, 채하봉, 일출봉, 집선봉 등 금강산의 천하 절경을 볼 수도 있다.

통일전망대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DMZ 박물관’(12면 기사 참고)도 빼놓을 수 없다. 해방정국 동서로 나뉘어 전쟁의 기운이 감지되던 당시의 상황부터 6.25 전쟁 발발의 모습들까지 ‘인간, 자연, 역사, 문화, 평화, DMZ의 모든 것’을 주제로, 갖가지 사진자료와 영상자료, 유물들이 통로를 따라 전시돼, 50여 년 전 대한민국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전쟁이후 민간인 출입 통제로 자연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인류이 소중한 유산으로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으로서의 가치를 담고 있다. DMZ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야말로 남한의 최북단은 ‘6.25 전쟁체험전시관’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에서는 북녘이 보이지 않는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병기 전시실, 유골 및 유품, 전쟁 당시 작전회의, 군사 대치 상황 등 현장을 재현해놓은 모형이 있는 전투체험관, 군대의 과거와 오늘의 내무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 병영 체험실, 전쟁 당시 한국군과 북한군의 상황과 전투력을 비교해볼 수 있는 무기들 등 6.25 전쟁 당시 시련의 역사와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을 아프게 한다. 매점에서는 북한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을 전시·판매하고 있어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