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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의 무용평론] 11월의 작품들 ‘춤의 연대기’ ‘귀신고래’ ’비밀의 정원‘
2016년 12월 30일 (금) 12:23:59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sctoday@hanmail.net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국립발레단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로부터 시작해서 윤수미의 ‘귀신고래’에 이르기까지 11월 한 달에만 12편의 무용공연을 보았다.

파사무용단(황미숙)의 ‘버려야할 것 들’외에는 모두 국내초연작이고 외국 작품(필립 드쿠플레, ‘CONTACT’)도 포함되어 있다. 기대를 품고 보았던 ‘춤의 연대기’, ‘귀신고래’, ‘비밀의 정원’ 에서는 기대와 실망이 교차되었다.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춤의 연대기’(11.25~26)는 박순호 안무에 국립국악원연주단의 음악이 함께한 ‘조절하다’와 안애순 안무와 국악원무용단의 춤으로 짜여진 ‘강가앙수울래애’로 구성되었다.  현대무용안무가가 전통 국악기나 전통춤꾼들을 기본요소로 활용하여 전통예술의 현대적 변용을 그려본다는 것이 기획의도였다.

박순호에게 활은 자신의 취미일 뿐 아니라 오랜 작품의 소재다. 활을 만드는 장인, 활의 구조, 활을 다루는 정신과 활쏘기의 실제 등이 그에겐 모두 작품의 소재가 된다.

정철민, 정재우, 류지수 등 3명의 무용수가 한 개의 활을 놓고 경쟁하고 협력하고 공명하는 가운데 사람과 활, 사람과 사람의 관계들이 맺어지고 조절된다. 피리, 대금, 퍼커션으로 활쏘기의 긴장을 유지하고 거문고, 아쟁, 가야금 등 현의 튕김과 팽팽히 잡아당긴 활시위의 현을 대비시킨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중요무형문화재(8호)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 민속춤 ‘강강술래’를 현대적 안무로 해석한 것이 ‘강가앙수울래애’다. 국악원 무용단원 20명이 출연하고 김기영의 무용음악을 사용했다. 밝은 달빛 아래 편안한 흰옷으로 통일된 무용수들의 춤사위에선 전통무용의 흔적을 느낄 수 없다.

움직임은 간결하고 현대적이다. 무리가 큰 원을 그리며 천천히 회전하는 움직임이 반복되는 강강술래의 기본 형태에서 출발하지만 개인의 움직임은 다양하고 단순한 회전 대신 중심으로 모아졌다가 주위로 분산되는 변형된 동작을 되풀이 한다.

되풀이라는 면에서 전통을 따르고 시간 구사와 공간 활용이란 면에서 차별화를 시도한 안무는 신선했다. 국립무용단이 안성수나 정구호를 초청하여 만든 ‘단’, ‘묵향’, ‘토너먼트’ 등의 전례에 비추어 굳이 이러한 작업에 ‘기억의 역사’니 ‘춤의 연대기’란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윤수미무용단의 ‘귀신고래’(11.29~30, 대학로 예술대극장)는 2016년 창작산실우수신작으로 선정된 60분 작품이다. 남도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에 대한 설화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부드럽게 깔리는 음악(양용준)과 상상의 세계에서 헤엄치는 고래를 형상화한 무대미술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무대를 둘러싼 3면벽을 입체적으로 사용하고 바다 속 물고기들의 유영을 배경으로 처리한 영상(황정남, 장재호)은 인상적인 요소였다. 무대 앞 쪽에 푸른빛이 반짝이는 바다가 홈처럼 길게 파여 있다. 검은 옷의 여인이 한 발짝씩 물속에 발을 담그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전승되어오는 설화로부터 현실에 대한 비판까지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지만 작품이 주는 신선함은 여기까지다. 중반이후 긴장감은 갑자기 떨어지고 경연참가작 들에서 흔히 보이는 상투적인 군무가 후반부를 채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곤 화려한 무대요소들을 살려주지 못한 드라마터지가 아쉽게 느껴진 작품이었다.

장은정무용단의 ‘비밀의 정원’은 서울무용제 경연대상부문에 출품된 8개 공연 중에서 안무상(장은정), 남자주연상(최진한), 음악상(조민수)을 수상했다. 소공자, 소공녀로 잘 알려진 영국작가 프란시스 버넷의 동화가 원작이다.

천정에서 비눗방울을 닮은 투명한 공들이 쏟아져 내려 무대를 가득 채운다. 널려진 공들은 춤의 재료이기도 하고 무용수들이 헤쳐 나갈 걸림돌이기도 하다. 붉은 색과 푸른색으로 차례로 바뀌는 커다란 사각형 스크린이 장면의 전환을 암시한다.

녹색, 황색, 청색, 백색, 보라색 등 각색으로 조명된 10개의 물체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정원에 무수히 피어난 형형색색의 꽃들일 것이다. 옷 속에 품은 공들로 몸통이 한껏 부풀려진 무용수들이 무대에 쓰러진 후 움직임과 소리는 함께 정지한다. 누웠던 자리에서 하나 둘 씩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감춰졌던 비밀스런 화원이 소생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을 짓누르는 사회통제와 환경오염, 기계문명의 폐해들에 대한 해법을 마법적 동화에서 찾는다는 기획의도와 달리 상징성도 신비함도 발견할 수 없는 평범한 무대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팸플릿의 기록과 실제 무대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세 작품의 공통점이다. 표현의 충실성이 미흡하다 할까. 이러한 괴리는 안무가와 제작진의 소통부재 혹은 안무와 연출의 미숙함이 원인일 것이다. 현학적 해설의 남발이나 기획의도의 과대포장으로 관객들은 오히려 혼란스럽고 작품가치는 훼손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 인식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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