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충현 한국장애인미술협회장 “예술활동으로 장애인들이 삶의 희망 찾기를 바란다”
[인터뷰] 김충현 한국장애인미술협회장 “예술활동으로 장애인들이 삶의 희망 찾기를 바란다”
  • 이은영 편집국장/박우진 기자
  • 승인 2016.12.3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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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힘들지만 다른 장애인들이 도움 받을 때 보람 느껴, 장애예술인 창작 공간 운영하고 싶다”

김충현 한국장애인미술협회장은 그 자신이 중도장애인으로 지금도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런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는 대전과 서울을 매일같이 KTX를 타고 주 5일을 꼬박 오르내린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여전히 많아 보였다. 인터뷰 약속이 있던 날 그는 대학로 혜화역에서 무려 1시간을 소모한 끝에 겨우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 노약자 전용 엘리베이터 고장과 장애인용 리프트 작동 또한 원활치 않아 인근 다른 역으로 갔지만 그 곳 또한 지상으로 올라오기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겨우 겨우 약속장소에 도착한 그는 상당히 지쳐 있었고, 장애인의 비애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음을 토로했다. 김 회장의 “장애인들의 활동에 제약이 많은 현실과 이에 대한 장애인 통행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이 깊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 김충현 한국장애인미술협회장

김회장은 한때 중견기업의 잘 나가는 간부로 현장을 누비다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 1년 반 가량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도 복직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되자 그는 한동안 술독에 빠져 인생을 자포자기했다. 주말이면 어린 자녀들과 단란하게 여행을 다니던 평범한 가정이 어느새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다 보니 김회장의 아내는 그의 역정을 받아내며 손발이 돼야했고, 사춘기를 맞은 자녀들은 어느 사이 아버지를 멀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예를 접하게 되면서 김회장은 제2의 인생을 맞는다. 산재를 입은 장애인들이 모여 취미로 시작한 서예 동호회 첫 전시가 성황을 이루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로 나서게 된다. 그 후에 정규 미술 대학원 석사를 취득했고, 현재는 박사까지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그의 아내와 함께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였다. 그의 아내도 노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불행을 보면서 상심했을 자녀들이 반듯하게 잘 자라준 것이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아들은 대전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뒤 대전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딸은 우석대학교 특수교육과를 졸업하고 특수교사로 근무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그는 장애인미술협회를 10년간 이끌면서 법인으로 전환시켰고, 최근 국제장애인미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크고 굵직한 일들을 만들어냈다. 장애인 미술인들의 권익과 활동의 장을 넓히기 위해 그는 지금도 가칭 ‘희망키움창작스튜디오’를 맘속에 그리면서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불편한 몸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끝으로 그는 오는 1월5일 대학로 이움센터에서 열리는 장애인 미술대전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제 1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을 개최하였다. 성과와 의의에 대해서 평가해 달라.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국제장애인미술대전을 개최했다는 점과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상금을 지급하는 장애인 미술대전이라는 점을 의의로 꼽고 싶다.

이번 국제장애인미술대전 이전에 2010년에 한ㆍ중 장애인미술교류전을 시작하다가 2011년에 한ㆍ중ㆍ일 장애인미술교류전으로 규모를 확대해 운영했다. 사실 작년 3월부터 국제장애인미술대전을 개최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문체부의 사업 지원 결정이 늦어져서 10월부터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본격적인 준비를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1000여점을 전시하기로 했으나 480여점 밖에 준비가 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마저도 2/3 정도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전시를 못하게 됐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0개국이 참가한 국제 규모의 미술대전을 개최한 것의 보람을 느끼고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장애인 미술대전 중 상금을 주는 국제적으로 유일한 대회라는 자부심이 있다.

올해 대상작이 눈에 띄긴 하더라. 장애인 미술 작가들 중 구족작가로 유명한 분도 있다.  어떤 장애를 가진 분들이 주로 참여하나.

협회에 속한 작가들의 구성 층이 지체, 자폐, 뇌병변, 청각 장애등 다양하다. 예전에는 청각장애가 많았으나 지금은 많지 않다. 올해 대상은 22살의 자폐 장애인으로 거의 10미터 크기의 작품을 제작했다. 작품도 좋았지만 대작을 그린 정성이 놀라웠다. 
 
국제장애인 미술대전의 심사 방식은 어떻게 되는가

점수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참가작 중 60%만을 1차에서 통과시킨다. 이후 통과한 작품들을 서예, 문인화, 공예 등 각 분야별로 나누어 한데 모아놓고 수상작을 결정한다.

1차는 참가자들의 장애를 고려해서 심사하지만 2차에서는 예술성을 주로 심사한다. 심사위원은 주로 협회 임원이나 선임 작가들이 대부분인데 심사를 하다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심사 기준의 차이가 크다. 장애인들은 장애를 많이 고려하지만 비장애인들은 예술성을 크게 고려하는 것 같다.  

상금이 걸린 대회이다 보니 더러 잡음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어떠한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심사를 하다 보니 서로 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로 인해 잡음이 빚어지기도 한다. 또한 작품이 실제 장애인의 작품인지 검증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논란이 되는 작품의 가치에 대해 인정하려 들지 않기도 한다. 

▲ 국제장애인 미술대전 수상자들과 협회 임원들

작품 검증을 위해 어떤 방법들을 사용하는가? 

굳이 검증을 하지 않더라도 참가자들의 활동 내역을 통해 대략적으로 작품에 대한 검증이 가능하긴 하다. 또한 검증을 요구했을 때 이를 거부하면 상금을 반납하게 하고 있다. 검증의 전문성을 위해 검증 심사위원과 실무 심사위원을 따로 배치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미술협회의 주요 사업들이 궁금하다

크게 5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이번에 처음 개최한 국제장애인미술대전,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대전, 장애인 창작 아트페어, 장애인미술강사 파견 사업, 장애인 희망 축제가 있다. 이들 행사들은 매년 개최되고 있고, 그 외에 부수적인 사업들도 펼치고 있다. 

올해 6월에 DDP에서 열린 장애인 창작 아트페어는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점이 달랐는가? 

올해로 장애인 창작 아트페어가 3회째를 맞는데 장소 대관, 개최 시기 등을 놓고 어려움이 많았다. 이전 아트페어는 사전에 선발한 장애인 작가 50명과 비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아트페어에서는 장애인 작가 65명에게 전시 부스를 줘서 직접 운영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작가들 스스로 부스를 잘 꾸려냈고, 그 덕분에 올해는 작품들이 잘 팔린 것 같다. 

많은 사업들을 펼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예산 마련이 중요할 텐데

국가 예산 지원, 기업들의 후원, 납부금을 통해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마련이 쉽지가 않다. 국가 예산은 정해진 것이 없긴 하지만 연간 5~7억 정도 지원 받는데 제약이 많아서 사용의 어려움이 많다.

기업 후원도 그나마 내가 기업체 간부 출신으로 경험이 있어서 받는 편이지 쉽지가 않다. 협회 회원들에게서 회비를 걷긴 하는데 560여명 정도의 회원들을 상대로 준회원 1만원, 정회원 3만원, 이사회 임원 5만원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절반도 걷지 못한다. 1년 통틀어 100여만원 정도 밖에 안 된다. 정 안되는 경우에 스스로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많이 못하지만 예전에는 산재 관련 강의로 돈을 마련하기도 했었다.  

▲ 서예를 접하면서 김충현 회장은 제2의 인생을 맞게 된다

중도장애인으로 서예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

처음 사고를 겪고 2년 동안 병원에서 있다가 퇴원을 했는데 많이 힘들었다. 그러던 중 TV에서 나보다 어린 구족 장애인 미술가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을 보면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당시에 산재 연금이 나와서 생활에 큰 부담은 없었기 때문에 소일거리 할 것을 찾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예전에 아버지께서 붓글씨를 잘 하셨는데 그 영향으로 1994년 6월에 산재장애인들과 함께 붓글씨 모임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서예를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오는 동안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다

서예 활동을 하던 초창기에 전공 분야가 아닌 일을 하다 보니 관계자들에게 무시를 받기도 했는데 그 점이 힘들었다. 그래서 이후 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조형미술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그리고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는 치료를 받고 복직하려고 했는데 1년 정도 병원 생활을 하다가 포기했다. 그 때도 많이 힘들었었다. 그래도 서예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전시회도 하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협회일 외에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것인가

일을 하다 보니 바빠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신경을 많이 못 쓰고 있다. 그리고 특히 아내가 몸 고생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다. 그런 아내에게 고맙다는 표현도 제대로 못한 것이 미안하다(김 회장은 이 대목에서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지면을 빌어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아내와 자녀들과의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 매주 주말마다 손녀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협회 일과 관련해서 향후 어떤 계획들을 갖고 있는가

장애인들을 위한 창작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2007년에 장애인들을 위한 창작공간으로 잠실종합운동장 내에 서울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를 설치해 직접 운영하다 애로사항이 많아서 서울시로 이관한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서 다시 잘 운영해보고 싶다. ‘장애인예술희망키움창작소’로 이름까지 생각해 놓고 있다.

그 외에도 장애인 예술단체 사무실, 전시장, 강당을 마련할 생각이다. 또한 국제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국제장애인미술대전을 준비하면서 해외 지인이나 네트워크 등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를 활용해 더 많은 국제 교류 사업을 하고 싶다. 국내외에 네트워크나 자료 등을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분들을 돕고 싶다.  

사무실 공간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비장애인들은 예술단체총연합회 건물이 있어 입주해 있다. 장애인 예술단체를 위한 공간은 없나

예전 한국문화예술인총연합회 건물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을 받아서 매입하여 건물을 갖고 있다. 1년에 운영비로 10억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보니 따로 운영하는 사무실 운영비도 만만치 않다. 이 문제 해결이 숙제이기도 하다.

사업 운영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예산을 마련하고 있는데, 정부의 예산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혹시 정부쪽에 바라는 점이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점은 없는가.

두 가지 문제를 들고 싶다. 장애인 관련 예산 지원이 특정 분야에 치우친 점과 사업 타당성에 맞지 않는 예산 배정이다. 예를 들면 장애인 체육 분야에는 몇 천억씩 예산이 배정되어 있는데 반해 예술 쪽은 많이 부족하다. 분야 별로 고르게 예산이 배정되었으면 좋겠다.    

▲ 장애인 서예대전에서 수상자들과 함께

협회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낸 일과 보람을 느낀 순간에 대해서 말해 달라. 

이번에 개최하게 된 국제장애인미술대전이나 장애인들을 위한 미술, 서예 교재, DVD 제작, 창작 스튜디오 운영, 장애인 미술강사 파견사업 등에서 보람을 느꼈다. 미술, 서예 교재나 DVD 개발은 호응이 좋고, 장애인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게 하는 것 같아 크게 보람을 느낀다. 현재도 새롭게 개발 중이며 내년 3월에 완성될 예정이다.

장애인 예술인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본인 스스로 노력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남이 해 주기를 바라고 남에게 의존하려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본인이 할 일을 본인이 찾아서 해야 한다. 스웨덴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는 장애인을 일반 사람과 똑같이 대우한다. 이러한 태도가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을 요구한다. 이런 태도는 지양하고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생의 좌우명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아버지께서 평소에 하셨던 말씀인데 ‘언필신 행필과(言必信 行必果, 말은 신의가 있어야 하고, 행동은 과감히 해야 한다)’,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 뜻을 세운 자는 반드시 성공한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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