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월호 참사, 1000일의 시간이 지난 지금...
[칼럼] 세월호 참사, 1000일의 시간이 지난 지금...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01.09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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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는 핸드폰에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본다는 살아남은 자의 눈물

그 어떤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을, 우리 국민들은 아프지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며, 2017년 1월 9일이면 1000일이 된다.

거대한 배가 바다에 기울어져있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른 봄이라서 물이 차가울텐데 어쩌나, 안절부절 왔다갔다, 제발 해경이, 119구조대가, 해군이, 그 누구라도 저 아이들을 구해주길 애타게 바라면서 카메라가방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면서 내 시간도 멈추어버렸다.

▲ 세월호참사 1000일을 광장바닥에 썼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보면서 마음 편하게 차 한잔을 마시고 돌아섰을 때 기사는 조금씩 바뀌었다. 숫자가 달라지고, 긴 슬픔의 시간이 지나고, 300여명이라는 사람이 바다에 수장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신문과 방송에서 떠들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전 10시 30분을 가리키는 시계가 그대로 내 앞에 멈추어 있었다.

그후 일상적인 삶이 정지되고, 깊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그 현장에 서있고 싶어 카메라가방을 챙겨 팽목항으로 갔었다. 하루에 네 번씩 물 흐름의 전복이 일어나 거세고, 뒤틀리고, 음모가 일어난다는 진도의 바다가 단순치 않다는 걸 장터에서 들은바 있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이를 보고 싶었다.

▲ 세월호 7시간 이제는 밝히라는 메세지

거친 물살 위에서 죽음의 색깔을 삶의 무늬로 변환시키듯, 바람만이 넘실거리며 아주 조용히 나풀거리는 노란 리본을 마주대하면서 대처의 시간과 나를 없애고, 오로지 죽음 속에서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다보았었다.

울부짖는 유가족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부끄러워 그곳에 걸어놓은 수많은 마음에 내 마음을 보태며 뒤돌아섰던 기억이 광화문광장에서 되살아났다.

▲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04명을 기리는 구명조끼와 국화꽃

그런데 지금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의혹의 핵심에 있는 정치인, 의료진, 정부관계자들은 그 7시간이 기억이 나지 않고, 기록이 없다며 잡아떼고 있다. 그러나 자식을 둔 사람들은 그날 그 시간을 떠올리면 온몸이 아프다고 했다. 그들보다 어른인게 부끄럽고, 무거운 책임감에 가슴 아프다.

그로부터 998일이 지나고, 지난 7일 11차 촛불집회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전면에 나서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오라’고 외쳤다. 1000일동안 살아남은 죄책감에 시달려왔던 당시 생존자들이 광장무대에 올라와 ‘많은 시민들게 감사 드린다’는 인사말로 말문을 열었다.

▲ 미수습자 얼굴위에 촛불을 밝힌 시민들

먼저 간 친구들에게 “우리는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께”라는 말을 남기면서 지금도 답이 없는 줄 알면서도 카톡에 문자를 남기고, 전화를 걸어본다며 눈시울을 붉히고 "저희는 구조된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으면 구하러 온다고 해서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며 지금 여기 나와 유가족을 뵙는 것이 아직까지 힘들다고 생존자들은 말했다.

▲ 광화문광장에 '뜨거울때 꽃이핀다'는 노란장미가 다타버린 연탄재에 꽃혀있다

또한 그들은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규명에 대해 알고 싶을 뿐, 대통령이 7시간동안 제대로 보고받고, 가만히 있지 말고, 당장 나오라는 말만 해줬더라면 그 많은 친구들을 잃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살아남은 자로써 용기를 내서 그때 상황을 얘기하지도 못하고 비난받을까봐 두려워서 그들은 숨어있기만 했다는 것이다.

▲ 결코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는다는 공연예술가 이해진(32세)씨

이날 광장무대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올라와 눈물을 흘리며 생존자 한명씩을 껴안았다. 지켜보던 시민들도 다함께 울었다. 아직도 바다 속에는 미수습자 9명이 남아있다며 소등행사를 진행했으며, 가수 이상은씨의 노래로 잠시 위안을 받기도 했다.

▲ 시민들이 세월호참사를 기리며 노란리본을 촛불로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무렵, 팽목항 근처장터에서 김씨 할매가 했던 말을 광장에 서서 다시 마음으로 읽는다.

“시방 진도가 초상집이여. 장이 쪼까 휑하지라? 젊은 여자들은 모다 팽목항으로 봉사 갔어. 첨엔 장바닥에 퍼져 앉아 ‘아까운 새끼들 어짜 쓰까’ 함서 막 울고 그랬제. 어쩌겄는가. 이렇게 꼼지락거리면서 이겨내야제. 슬픔이 이 늙은이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참에 배웠당께.”

▲ 구명조끼와 희생자이름과 국화꽃이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우리 다함께’ 슬픔을 이겨내고 실천하고 행동하는 우리국민들의 힘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