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 국정농단 사태와 유희(儒戲)
[김승국의 국악담론] 국정농단 사태와 유희(儒戲)
  • 김승국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 승인 2017.01.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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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蔣生)과 공길(孔吉)이 사대부들 앞에서 해학적으로 쏟아내는 풍자와 독설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왕의 남자>가 스토리를 조선 조로 설정하고는 있지만 우리가 속 시원하게 공감했던 것은 장생과 공길이 쏟아내는 풍자와 해학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대로 부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우 감우성이 역을 맡은 장생과 배우 이준길이 역을 맡은 공길은 실존 인물일까? 한마디로 답하면 '그렇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 1569~1618)은 자신이 지은 「장생전(蔣生傳)」에서 장생을 우희(優戱)에 뛰어난 재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우희(優戱)란 요즘의 코미디와 같은 것으로서 판소리, 가면극(탈춤), 재담, 만담 등에 영향을 끼쳤다. 허균은 장생이 행한 우희(優戱)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장생은 기축년(1589년)에 서울에서 거지로 돌아다녔다. 그의 내력을 물으니, 부친은 밀양좌수였고 그때 그를 낳은 지 3년 만에 모친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  (장생은) 그는 우스운 이야기를 잘 했으며, 노래를 잘 불러 사람을 감동시켰다. …… 그는 입을 찌푸리며 호각, 퉁소, 피리, 비파, 기러기, 고니, 두루미, 따오기, 까치, 학 따위의 소리를 짓되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웠으며, 밤이면 닭 울음,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면 이웃집 개와 닭이 모두 따라서 우짖었다'.

또한 <왕의 남자>에서 이준기가 역을 맡은 공길도 실존인물로서 『연산군일기』 11년(1505) 12월 29일 조에 공길의 우희에 대하여 다음과 기록하고 있다. 

'..... 이보다 앞서 공길(孔吉)이라는 우인(優人)이 『논어』를 외우면서 말하기를,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아들이 아들다워야 합니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설사 쌀이 있은들 내가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임금은 말이 공경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형장을 치고 먼 지방으로 귀양을 보냈다'
  
우희(優戲)의 일종으로서 선비를 풍자하고 유가(儒家), 유학경전(儒學經典)을 희롱하는 내용으로 행하는 연희를 유희(儒戱)라고 한다. 유희는 문희연(聞喜宴)에서 반드시 연행되던 연희로서 오늘날 연행되고 있는 ‘판소리’와 가면극인 ‘산대놀이(탈춤)’, ‘줄타기’, 인형극인 ‘박첨지놀음’, ‘재담소리’ 등의 핵심 요소로서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숙종조 실학자인 이익(李瀷, 1681~1763)은 자신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 기예문(技藝門) 이유위희(以儒爲戱) 조’에서 당시의 지도층이었던 사대부 유학자들의 위선과 부정부패에 대하여 다음과 탄식하고 있다. 

'창우(倡優: 광대)들의 연희에는 반드시 유희(儒戱)라는 것이 들어 있다. 다 떨어진 옷과 찢어진 갓을 쓰고 꾸며낸 이야기와 억지웃음으로 온갖 추태를 연출하여 축하연의 즐거움으로 삼는다. 대저 요새 벼슬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유(儒)로써 이름을 삼으면서도, 천한 사람들로부터 이렇게까지 모욕을 당하니, 저 배우들은 책망할 것도 없으려니와, 요즘 사대부들이 태연히 수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 괴이할 뿐이다'.

오늘날 온 나라를 들끓게 하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청문회에 증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지도층 인사들의 거짓 증언과 국정농단 및 비리 의혹을 바라보며 분노감을 넘어 절망감마저 느낀다.

아마도 300년 전 실학자 이익(李瀷)이 당시 벼슬아치들의 인면수심의 부패상을 바라보며 탄식하였던 심정이나, 요즘 국정농단 사태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지도층들의 추잡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의 심정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